내생애 두번째 7살..(3부)

할머니.. 내가 멸치 잡아왔어요

by 정예윤


인간이란 참 신기한 생명체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힘에 벅차면
결국엔 나가떨어져야하는데
그와는 반대로 어느순간 익숙해지고
그때부터는 그렇게 힘에 부치던 일들은
더이상 벅찬일이 아닌게 되어버린다



할머니.. 내가 멸치 잡아왔어요



할머니도 내가 여간 말썽꾸러기가 아님을
눈치채셨는지 일하러 나갈때마다
꼬박꼬박 잊지않고 일거리를 주셨다



내 기억속 할머니 집뒤의 샘물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매일같이 샘에서 물을 길어 물동이에 채우고
그 피곤함에 오후 내내 잠에 곯아떨어졌던 나는
그것도 매일 반복이 되다보니 이력이 났는지
이젠 그 큰 물동이를 다 채우고도 쌩쌩했다

마당도 쓸고 한칸짜리 방을 걸레로 닦아도
오후 반나절은 그대로 였다


시계는 없었지만 내나름의 시계가 있었다


마을앞 작은 길로 버스가 지나가면
점심때가 된거였고 조금 더 지나면
학교에 갔던 동네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온다

티비에서 익숙하게 보았던 장면처럼
시골아이와 도시소녀는 생김새부터가 달랐다


손등엔 묵은때가 앉아 시꺼맸고
누런 코딱지를 붙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댕기는 아이들이었다

뭐가 재밌는지 지들끼리 우르르 몰려다니고
별것도 없어보이는데 지들끼리 깔깔거리고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씨커멓고 지저분한
동네아이들을 경멸했고 그 아이들은 그런 나를
동물원 원숭이 보듯이 한번씩 쳐다만 볼뿐
어떤 누구도 나에게 손을 내밀지는 않았다


할머니가 시킨 일을 다해놓고 마당에서
혼자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즈음
나는 다시 할머니 몰래 논둑으로 나갔고
그래도 이전처럼 논둑에 발자국을 내며
애써 만든 논둑을 망가트리지는 않았다

봄이 오고 논둑 주변으로 물이 고인 곳엔
개구리가 낳아놓은 알들이 부화를 시작했고
이내 시커먼 올챙이가 바글바글해졌다




개구리는 알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나는
올챙이를 실제로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바글바글 올챙이를 보고
그게 왜 멸치라고 생각을 했을까..


올챙이를 보는 순간 내 머리속에는
저 올챙이를 잡아야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정지(부엌)로 달려가서 소쿠리를 들고나와
보는족족 다 건져올렸다

너무 짜릿해서 어찌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던지..

샘터로 들고가서 깨끗하게 몇번을 씻고
벽에 걸린 큰 대나무 채반을 까치발로 통통 뛰어
끌어내린후 깨끗하게 씻은 올챙이를 채반위에
하나하나 쫄로리 널었다

엄마가 간장에 졸여줬던 멸치는
내기억에 분명 검정색이었고..
올챙이는 봄볕에 마르면서 멸치와 비슷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잘 말랐나 안말랐나 확인해본다고
올챙이 꼬리 몇개는 내가 잘라서 먹어봤다

개울 건너 기와집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기와집 굴뚝시계는 할머니가 곧 오신다는 얘기다


할머니에게 멸치를 보여줄 생각에
나는 신작로까지 나가서 할머니가 오기를
기다렸고

저멀리 할머니의 회색 저고리가 보이자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와 멸치가 가득 담긴 채반을 들고

할머니가 오고있는 신작로로 달려나갔다


할머니..할머니.. 내가 멸치 잡아왔어요
(그 뒷 이야기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고대도(섬)'에서의 코난놀이는

내나이 7살때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것 같다
뭔소리린지 궁금하시면 담번에 한번 또 연재를..



그날이후 나는 삼십대 중반이 될때까지
멸치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멸치만 보면 꼬물꼬물대던 올챙이가 떠올라
속에서 뭔가가 느글느글..

지금은 멸치를 먹지만 아주 즐겨먹지는 않는다

이자리를 빌어 내 철없던 시절
올챙이에게 저지른 만행을 사죄하고
올챙이들의 명복을 빈다고하면..

아.... 미안타







산골에도 봄이 왔다



무리지어 돌아댕기는 동네아이들속에
내가 들어가기까지는 꽤 오랜시간이 걸렸다

내가 먼저 손을 내민게 아니였고 그렇다고
그들이 먼저 내손을 잡은것도 아니였다


그들과 함께 어울려 놀기 시작했던
여름 초입무렵엔 어느새 나도 그들처럼
까매지기 시작했고 생김새도 비슷해져갔다


내 긴머리를 감기고 말리고 빗질하는게
영 번거로웠던 할머니는 어느날 내목에
보자기 한장을 걸치더니 아주 깡총한
단발머리 소녀를 만들어놓으셨다

그당시 울 할머니가 깎아준 머리랑 아주 비슷한 캐릭터


할머니가 일다니시는 동안 나는
할머니가 내주시는 일거리를 빈틈없이 해치웠고
시키지 않은 일도 찾아내서 해놓는
어른스러운 7살이 되어가고 있었다


산골마을에도 완연한 봄이 찾아왔다
할머니는 더이상 남의 집일을 나가시지 않았다
그런데도 하루도 쉬지않고 또 나가셨고
돌아올땐 온갖 산나물을 머리에 이고 지고
나타나셨다


자루를 풀어헤치면 도대체 본적없는
제각각의 나물들이 지천으로 쏟아졌다
생김새도 제각각.. 향도 제각각.. 맛도 제각각

산에서 돌아온 할머니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가마솥에 물을 끓이고 나물들을 삶아서 널고..

이 모든 일이 끝이나야 비로소 저녁한술을
뜰수 있었기때문에 배가 고팠던 나는 부지런히
할머니를 도울수밖에 없었다


봄이되고 할머니가 산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저녁시간이 늦어졌고 7살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영민(?)했던 나는 할머니 어깨너머로
들여다본걸 기억하고 그 어린 나이에
할머니 오실 즈음에 아궁이에 불을 지펴
가마솥에 물을 끓여놓았다

할머니는 내심 놀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지마란 말을 아니 하셨다

그날부터 아궁이 담당도 내가 되었다
내나이 7살이었다



이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4부를 향해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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