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의 이야기

여덟 번째 이야기

남편과 나는 특수교육대학원을 다닐 때 친구의 소개로 만났다.

신혼 초에 많이 싸운다는데 우리는 기억에 남는 싸움이 없을 정도로

무난하게 살았다.

그런데 장애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 사이에도 틈이 생기고 멀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혼자 멀어졌는지...

나 혼자 힘들다는 생각에 남편을 공격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남편이 미워지고 싫어지기까지 했다.


아이를 혼내는 말투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

아이랑 지하철을 타고 들어올 때의 짜증

그 모든 것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이해는 무슨... 눈을 보기도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아이가 학교를 가면 유아특수 기간제교사 자리를 알아보았다.

대구, 부산, 울산... 최대한 멀리 가서 일자리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리를 알아보고 부산, 울산에 있는 부동산에 전화를 해 보며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새롭게 아이와 시작해보고 싶었다.

갑자기 뭔지 모를 의지가 활활 타 올랐던 거 같았다.

새로운 곳에서의 시작! 생각만 해도 벅찼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희 여행 가. 엄마가 애들 봐줄게"

뭐지? 갑자기? 의아했다.

"아니 갑자기 무슨 여행? 안 가도 돼"

"아니야 너희 남편한테 알아보라고 했어. 그냥 다녀와"


지금 이 상황에 여행? 그것도 남편이랑 둘이서?


그렇게 우리는 아이 둘을 엄마에게 두고 홍콩 마카오를 갔다.

신기했다.

엄마 아빠가 아닌 어린 시절 연인이 된 거 같았다.

남편이 나를 위해 커피를 사 오고, 먹고 싶은 것이 없냐고 묻고

춥지 않냐며 담요를 덮어주었다.

'원래 이런 사람이었었나?' 싶을 정도로 다정했다.

나를 보고 웃고 손을 잡고 면세점을 다니며 "필요한 거 사! 많이 사"라고 말하고

"너를 만나서 행복해. 행운이야"라고 말하며 조금은 낯설게 조금은 꿈꾸는 것만 같은 3박 4일을 보냈다.


남편과 첫째 아이 이야기도 했다.

남편이 말했다.

"받아들여야지. 힘내자. 너는 엄마 나는 아빠니까...."

라고 말하며 아이가 특수교육대상자 선정을 받고 부쩍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그래서 여행을 온 거라고 했다.


"너니까 아이가 성장하는 거야. 너를 만난 건 아이도 행운이고 나도 행운이야"

"너라서 우리 아이가 온 거야. 꼭 웃을 날 올 거야"

"또 아프면 안 되잖아. 이제 우리 같이 울고 같이 웃자"


비현실적이었다.

내 남편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라고? 뭐지? 싶었다.


마지막날 홍콩에서 강을 바라보며 앉았다.

남편이 그랬다.

"우리 현실로 돌아가면 넌 또 힘들고 난 또 바쁘겠지. 그래도 내가 널 사랑하고 우리 가족을

지키고 싶어 하는 거 잊지 마. 나도 아빠잖아. 내가 잘 몰라서 그래. 처음이라서...."


'혹시 이 사람이 내가 준비하고 있는 걸 아는 걸까?' 싶었다.


나중에 한 5년쯤 후 남편이랑 홍콩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오빠 그때 왜 갑자기 홍콩을 가자고 한 거야?"

"어~ 그거 장모님이 전화가 오셔서 외국여행 가라고.... 아무래도 네가 불안하다고...

전화도 안 하시던 분이 이틀에 한번 전화해서 예약했냐고 그러셨어...."


그랬구나...

우리 엄마가 알았구나.


그렇게 또 한 고비를 넘겼다.


나중에 아이가 11살이 되었을 때 회사에서 1년 남짓 근무를 했었다.

그때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전화 받는 소리, 기침하는 소리, 모두에게 보이는 컴퓨터 화면, 누군가는 빠르게

누군하는 느리게 돌아가는 그 세상이 너무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오고 가는 감정 안에서 눈치를 보며

'내 남편은 이런 생활을 매일 하는구나. 힘들다는 말 없이.. 그만두고 싶다는 말도 없이...'

눈물이 났다.

어쩌면 나는 아이만 보며 남편을 미워했는데... 남편은 견뎠던 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월급날이 되면 메시지를 보낸다.

"남편 한 달 수고 많았어요. 고마워요"라고

그리고 그날은 다른 날 보다 신경 써서 저녁을 준비한다.

남편의 조용한 견딤이 마음 아프게 다가오기 시작하니 너무 안쓰러웠다.

우리는 어쩌면 같이 견디며 각자의 자리에 있었는데 난 원망할 상대가 필요했었나 보다.


엄마의 딸을 생각하는 그 마음과 남편의 묵묵함이 참 감사하게 생각되기 시작했다.

고비의 순간은 나 혼자 넘어가는 것이 아님을 절실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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