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 가족여행과 음성틱

아홉 번째 이야기

우리 반 아이와 여행에 대한 동화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통합학급(일반유아와 장애유아가 함께 구성된 학급)에서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통합학급에서 조용한 공간을 찾아 먼저 이야기를 했다.

“(책에서 비행기 그림을 가리키며)이게 뭐예요?”

“비행기”

“맞아요. 비행기예요. 비행기 타 봤어요?”

“응”

“비행기 타고 어디 갔어요?”

“오사카”

“오사카 갔구나! 오사카에서 어디 갔어요?”

“유니버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유니버설 사진과 오사카 사진들을 뽑아서 보았다.


통합학급에서 활동을 하기 전 담임 선생님과 활동에 대한 내용, 과정 등에 대해 미리 협의를 한다.

그러면 나는 통합활동을 할 때나 아니면 특수학급에서 개별화교육을 할 때 우리 반 아이도 발표에 참여하기 위해 시각적 자료를 보여주며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 번 연습한다.


그리고 상황을 일반학급 선생님과 공유하여 아이가 발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여행~

그 단어가 나올 때마다 잊지 못하는 여행이 있다.

괌~~ 내 아이들과 함께 했던 첫 해외여행

그 여행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첫째 아이가 3학년 10살이 되고 4월 어느 날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처음 괌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있다고 느꼈고 아이도 편안해 보여

“엄마 괌은 멀어요?”

“비행기 안 떨어져요?”

“무섭지 않아요?” 수많은 질문들이 매일매일 이어졌지만

나는 그냥 매번 반복되는 질문을 하는 아이라 ‘아이고, 또 시작이네’라고만 생각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 준비를 했다.


어쩌면 암시와 예측이 되었을 시간들을 묵인하며 그렇게 여행 가는 날이 되었다.

공항에 차를 주차하고 짐을 내리면서 분주한데 이상하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뭐지?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 우리뿐인데’

첫째 아이의 음성 틱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가끔 근육틱인 눈을 깜박인다거나 어깨를 움직이는 행동이 나왔다 멈췄다를 반복했었다.


목으로 소리를 내는 경우도 가끔 있어 병원에서도 지켜보기로 했었는데,

갑자기 예고 없이 시작된 음성틱은 느끼는 강도가 너무도 달랐다.

한 옥타브 위의 높은 솔 같은... 정말 새소리가 나는 것처럼 높고 날카로운 소리라서

엄마인 내가 아무리 아이를 이해하는 입장으로 듣는다고 해도 귀를 너무도 자극하는 소리였다.


지금 생각해도 처음 아이의 음성 틱을 듣고는 빨개지는 내 얼굴과 심장이 조여 오고 두근거림이 목을 타고

올라와 겨우 숨만 쉬는 것 같은... 그 모습이 그대로 그려진다.

지옥의 시간을 알리는 것만 같았다.

그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렇게 새벽 5시에 도착한 공항은 공항버스에서부터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쉬는 시간이 없는 울림으로 공항으로 가는 공항버스,

공항에서의 우리 걸음걸음을 따라 지나쳐가는 모두의 귀를 자극하고 있었다.

“왜 그래? 갑자기?”

“몰라요. 계속 나와요” 아이도 안절부절못하고 산만하게 왔다 갔다 하며 불안해 보였다.


돌이켜 보니 그때 내 아이는 불안했고 두려웠고 겁이 났던 것인데...

난 나의 시간들이 더 무섭다는 듯이...

‘내 인생에 왜 이런 일이’라며 누구보다 더 서러운 듯 나 자신이 겪어낼 현실만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벗어나고 싶어 했던 거 같다.


게임기를 쥐어주고 핸드폰을 쥐어주고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그렇게 구석에 앉아 사투를 벌이는 아들이 안쓰럽다가....

또 저 아들을 내가 언제까지 참으면서 키울 수 있을까? 라며 미래를 걱정하다가....

도대체 매번 시험대에 올라야 하는 이유는 뭘까? 왜 나만....

남편은 왜 저리도 무심하게 핸드폰 만을 보고 있을까?

그렇게 수천수만 가지의 생각을 하며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안해하고 강박증이 있어 걱정이 되었지만 괜찮을 거라 믿고 10살이 되어서야 비행기를 태우는 건데...

지금도 어리고 힘든 걸까? 새롭다는 것은.......


아직 준비가 안 된 아이를 데리고 온 건가?

“우리 집에 갈까? 이렇게 어떻게 4시간 30분을 가지? 나 너무 무서운데”

남편도 어리둥절해하면서 소리에 짜증이 나서인지 아이가 조절하면 될 것을 왜 저러냐며... 짜증 섞인 말들을 쏟아냈다. 아마 그때 남편도 당황했을 것이다.

예상되지 않는 일들 앞에 우리는 모두 표현이 달랐을 뿐 두려움이 가득했던 거 같다.

엄마인 나는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남편이 참으로 야속했다.


나중에 “그때 난 죽을 거 같았는데 자기는 어쩜 그리도 태평할 수가 있었어?”라고 물으니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다고 했다.

정말 무섭다는 말이 적당한 표현일까?

아이의 소리 하나하나에 내 귀는 다른 소리는 듣지 못하는 것처럼 그 소리만을 쫒으며 비행기라는 두려움의 공간으로 서서히 들어섰다.


괜찮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안고 비행기를 타면서 조금은 어수선하고 소음의 공간이었던 그곳이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아 조용해졌다. 숨이 딱 멈추는 것 같았다.

아이의 틱 소리는 그 조용해야 할 곳에서 들리는 들리지 말아야 할 소리로 울리고 있었다.


그때는 ‘내 심장 소리가 더 큰 소리일까? 내 아이의 소리가 더 큰 소리일까?’ 내 안의 소리와 아이의 소리가 부딪치며 갈등의 시간들이 콩닥콩닥 빨라졌다.

내 심장을 터트려 버릴 것 같은 시간은 참으로 느리고도 느리게 흘러갔다.

가기는 하는 건지 시계를 보고 또 보며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앞에 앉은 모녀 여행객이 뒤를 힐끔거리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애를 조용히 시켜야지. 뭐 하는 거야?”

“잠을 못 자겠어”

“짜증 나 “

남편은 건너편에서 피곤한지 눈을 감고 있었고, 그 건너편에 있는 아이들과 나는 전쟁터에 버려진 사병들 같았다. 작은 아이는 신경을 안 쓰는 것처럼 나에게 기대어 있었으나, 지금 생각하면 시끄럽고 두렵고 불안하고 힘들었으리라.


내 심장이 너무 쿵쿵거려 알지 못했지만 작은 아이가 나중에 시간이 흘러 말했다.

“엄마 내 심장이 쿵쿵거렸어요. 휴~ 진짜 빨리 뛰었어요.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그랬구나. 너도 그랬구나! 엄마는 그저 엄마 심장만을 부여잡고 있었구나...’ 그 순간 가장 힘들었을

작은 아이의 마음보다도 엄마인 나는 나만을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랬다.

그때 나는 나의 설움이 너무 컸던 거 같다.

다른 사람들의 그 수많은 눈초리, 수군거리면서 무슨 말이든 할 것만 같은 분위기에서 오는 두려움,

벗어날 수 없는 하늘 위.

점점 집중되는 공간과 무서운 눈들에 둘러싸여

‘이곳에서 비행기가 추락했으면 좋겠다. 아이와 나만 저 바다에 빠져 사라지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무사하면 참 좋을 텐데.......’

‘비행기 비상문이 갑자기 열렸으면 좋겠다. 그럼 내가 아이를 안고 떨어지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4시간을 더 갈 수 있을까?’

‘소리가 낮아지긴 할까?’

‘나 그냥 사라질 수는 없을까?’

‘저 사람들이 나 보고 화를 내면 뭐라고 하지?’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면 이해해 줄까?’

‘신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 날 데려가면 좋을 텐데.....'


무서웠다. 두렵고 죽을 것만 같았다.

지금도 가장 힘든 시간을 이야기하라면 그 괌으로 가는 비행기 4시간 30분이 나에게 있어 가장 힘든 시간이라고 회상이 된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면 지금도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가슴이 두근두근거릴 정도인걸 보면 힘들긴 힘든 시간이었구나 싶다.

그렇게 그 공간 안에서 예상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앞의 모녀 중 딸이 뒤를 보면서

“좀 조용히 시켜요.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아요?”

나는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처럼 머리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저희 아이가 틱 장애예요. 비행기를 처음 타서..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실 사과하고 고개 숙이는 건 언제나 준비하고 있는 사람처럼....


왈칵 눈물이 났다. 남편은 나중에 비행기에서 내려서

“아니 거기서 왜 울어?”라고 했지만 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서러웠다.

내가 왜 이렇게 머리를 숙이고 미안하다고 해야 할까?

수 천 번, 수 만 번을 말해도 해결되지 않는 이 시간들이 참으로 야속했다.

앞으로 나의 시간들도 너무도 아득했다.

비행기가 추락할 것도 아니고 비상구가 열릴 것도 아니며 결국 ‘이 하늘 위에서 견뎌라’라는 그 상황이 너무도 끔찍했다.


아이는 게임기를 손에 들고 손으로 코를 만져가며 입으로 낸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도 높은 그 소리를 4시간 30분 동안 쉬지 않고 내고 있었다. 그렇게 가시방석이란 말로도 어려울 듯한 시간이 흘러 비행기가 착륙을 했다. 작은 아이가 나를 보며 말했다.

“엄마, 우리 힘들었죠? 진짜 힘들었죠?”

7살 아이가 작은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


아무도 그런 말을 해 주지 않는데 꼭 싸움터의 동료처럼

“엄마, 울지 마요. 다 왔으니까”

정말 다 왔다. 그 갇힌 비행기가 땅으로 내렸다.

난 괌이란 곳이 좋았다고 회상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지쳐서 내렸다.

내리면서 앞에 앉아 있던 분들과 뒤쪽에 앉았던 분들을 보며

“죄송합니다. 너무 시끄러우셨죠? 저희 아이가 틱 장애예요”라고 말했다.


뒤쪽 아이를 데리고 탄 부부는

“아니에요. 괜찮았어요”라고 했고, 앞의 그 모녀분은 “몰랐어요 괜찮아요”라고 했다.

그리고 “애가 아픈데 왜 데리고 와요?”라는 사람도 있었다.


맞다...... 애가 아픈데 왜 데리고 왔을까? 뭘 위해서....

내 아이의 경험? 아니면 우리 가족의 추억?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자책을 하고 고개를 숙이며 그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4시간 30분이 흘러 수많은 소리와 내 눈물과 불안을 놓고 비행기를 빠져나왔다.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듯 비행기에서 나와 우리는 택시를 타고 숙소로 들어갔다.


4박을 하는 동안 우리 첫째 아이는 어디에 있든지 알 수 있었다.

내 귀는 내 아이의 소리를 찾아다녔고, 물소리 사람들의 소리 사이로 내 아이의 새소리가 울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누구도 내 아이의 소리를 듣고는 있었지만, 시끄럽다거나 그만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물소리도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도 자연에서 주는 그 평온함도 모두 함께 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돌아오는 전날 마지막 식사를 하고 공연을 보는데 첫째 아이가

“엄마 나 힘들어요”라고 말했다.

남편이 아이를 방에 데려다주고 게임기를 준 후 핸드폰을 가지려 잠깐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왔다.

그런데 아이가 울면서 우리가 있는 곳으로 뛰어와서는

“왜 이렇게 늦게 와요. 나 혼자 두고 간 줄 알았잖아요”

그 말에 눈물이 왈칵 났다.

“왜 우리가 너를 두고 가겠어. 우리 아들인데”라며 남편이 아이를 안았고 아이는 눈물을 닦으면서

“버리고 간 줄 알았잖아요”라고 했다.


“무서웠어? 엄마 아빠가 어디를 가? 네가 방에 있는데 방에 가려고 했지.

너 두고 아무 데도 안 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우리 아들인데..”

우리 아이는 이 모든 상황들이 너무도 불안했던 것이다.

본인이 틱을 하고 내가 사람들에게 죄송하다고 하고 고개 숙이면서 나의 표정이 시무룩해지고 우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의 마음은 나보다도 더 불안해졌었던 거다.

엉엉 우는 아이를 보니 미안해졌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아이가 옆에 없는 그 10분이 그나마 편한 시간이었다.

내 귀가 아이의 소리를 쫓아다니지 않아도 되고, 작은 아이와 공연 이야기를 하면서 음식을 먹고

‘여행이다. 정말 내가 여행을 왔구나!’라고 느낀 그 10분! 나에게 10분도 사치구나 싶었다.

우리는 넷이서 방으로 돌아와 함께 있었다.


첫째 아이는 몸이 좋지 않아서 일찍 잠이 들었고 남편과 칵테일이라도 마시자고 약속했지만

몸이 좋지 않은 첫째 아이가 혹시라도 깨면 안 될 것 같았다.

아파서 자는 아이를 보는데 미안했다.

엄마를 보면서 더 불안했을 내 아들에게 너무도 미안했다.


나에게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아마 난 그냥 겪어온 그대로를 했을 거 같다. 우리 아이는 모든 것을 겪고 경험해야만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 아이였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래야 나와 우리 가족이 겪었던 그 많은 일들이 의미가 있다.라고 생각될 거 같아서........


아이는 하루하루 힘이 빠지더니 결국 돌아오는 마지막 날 입안이 헐고 몸살이 났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4일을 보냈고 눈치를 보며 엄마 아빠의 불안을 받으며 견뎠으니 아마도 어쩌면 당연히 병이 났어야 했었는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기력이 없어 창가에 이마를 대고 밖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키우면서 낮잠을 자는 모습은 아기였을 때를 빼고는 없는데 이상했다.

갈 때도 올 때도 같은 사람들이 비행기를 탔는데 다들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신기했다.

그렇게 심하게 비행기 안을 소음으로 가득 채우던 내 아이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입안이 헐고 미열이 나면서 힘이 없이 축 늘어져 창밖만을 보는 내 아이의 모습만 남았다.

"엄마 나 힘들었어요"라고 이야기하는 아이의 힘없는 메아리가 내 마음을 두드리고 박히며 안쓰러운 4시간 30분을 조용히 또 고요히 돌아왔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작은 아이와 괌 이야기도 나누고 남편과 면세점 책자도 보면서 다른 가족여행처럼

그렇게 평온하게 사소한 행복을 느끼면서 돌아왔다.

내 아이가 아픈데... 난 묘하게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죄책감이 들 만큼......

어쩌면 내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이 아픔으로 나오는 것인데..

난 수없이 속으로 ‘아프다, 싫다, 죽고 싶다. 미치겠다’를 외칠 때 내 아이는 무슨 말을 했을까?’ 참으로 서툰 엄마였다.

아이가 그렇게 병이 날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내 상황을 원망하고 짜증 내고 괴로워했다니......


인생은 자기 설움에 운다더니 어쩌면 그 말이 딱 맞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흘러 아이에게 물었다.

"우리 괌 여행은 어땠어?"

"재밌었어요. 또 가고 싶어요"

기억은 다르게 남는다 더니 참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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