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이야기
사람은 누구나 커다란 돌멩이를 가슴에 안고 산다는 말이 있다.
참 아이러니 한건 누구나라는 그 단어 나만이 아니라는 그 말이 위로가 되고 안심이 된다.
유치원과 학교에서 보면 틱을 하는 아이들은 자주 볼 수 있다.
눈을 깜박이는 아이, 고개를 까닥하는 아이, 목에서 소리를 내는 아이, 코를 훌쩍이는 아이 여러 형태의 틱을 보게 된다.
저 가족들은 어떻게 할까? 아직도 틱을 하는 아이들을 보게 되면 가슴이 먹먹하다.
틱은 마음의 스트레스라고 하는 글을 본 기억이 있다.
우리 아이들도 마음속에 돌멩이가 있는 걸까?
괌 여행에서 돌아와
바로 다음날 소아정신과를 갔다.
음성틱과 근육틱이 동시에 나오기도 했고 이젠 약이라도 먹여야 할 것만 같았다.
일 년을 지속적으로 근육틱이나 음성틱을 하면 뚜렛으로 보고 그때 약을 먹으면 된다.
근육틱을 하다 몇 달 하지 않고 음성틱을 하다 몇 달 소거되고 하면 지켜보면서 결정하자.
음성틱과 근육틱이 동시에 나오면 약을 먹으면 된다 등
병원마다 말도 다르고 진단도 달라 망설였지만 이젠 먹으면서 다스려야 할 것 같았다.
병원에 들어서자 아이의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검사를 하고 약을 받고 병원에서 진행되는 놀이치료를 했다.
물론 그동안 모래치료도 하고 놀이치료며 운동치료, 음악치료 등을 했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하는 놀이치료를 보며 난 늘 의문이 들었다.
밖에서 들어보면 저 작은 방에서 아이가 엎드려 지하철을 가지고 놀이를 하다가 나오는데.....
과연 치료가 되는 걸까?
우리 아이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산을 오르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아이인데
저 작은 방안의 시간이 괜찮은 걸까?
"뭐 했어?"
"지하철이요"
"재밌었어?"
"네"
약은 매일 자기 전에 먹었다.
그런데 그 작은 알약 반알이 아이를 신기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움직이던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고
학교를 다녀와서도 누워만 있고 일주일에 한 번 병원에 가는 날에도 차에서 누워 일어나질 못했다.
눈도 흐릿하게 뜨고 모든 것이 귀찮다는 듯 누워만 있었다.
'이게 맞는 건가?' 의문이 지속되고
틱이 나오는 시간이며 상황들을 보아도 병원에 들어서는 그 순간이 제일 심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그렇게까지 방해가 되진 않는다고 했다.
국어 수학 시간은 특수학급에 있으니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익숙하고 반복되는 생활에 안정감이 있는지도......
3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매일 약을 먹이며 밥도 못 먹고 움직이지도 않는 내 아이를 이대로 갈 것인가.
다른 길을 찾아볼 것인가.....
2평이 될까 싶은 장난감이 가득한 작은 치료실 방에 들어가는 내 아이의 뒷모습에 어느 날 이건 아니지 않을까 싶었다. 내 아이의 기질과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이나 한의사 선생님들은 말한다.
약을 꼭 먹여야 하고 침으로도 치료가 가능하며 심신의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음식을 조절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 틱을 가진 사람은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일반인들도 반복적으로 또는 긴장되는 상황에서 눈을 깜박이는 사람, 목에서 소리를 내는 사람,
고개를 흔드는 사람 등 여러 사람들이 있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 자주 만난다. 틱을 가진 사람을....
특수교육을 전공한 동기들도 말한다.
"우리 남편도 긴장하면 소리 내"
"우리 아이도 눈 깜빡이는데..... 연예인이나 스포츠 인들도 있잖아"
여러 병원을 다니면서 물어보았다.
의사 선생님이나 간호사 선생님들께... 그리고 틱이 있는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들에게
"약을 먹으면 정말 틱이 사라지나요? 아니면 좋아지는 걸 보셨을까요?"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이 틱을 사라지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저 보조제일뿐 치료제가 되는 건 아니라고....
꼭 우울증이 있는 환자가 약을 꾸준히 먹어도 우울하고 자살을 생각하는 것처럼
꼭 그런 것 같다고 한 의사 선생님이 이야기했다.
열심히 알아보았으니 결단을 내려야 했다.
'대안학교를 가든 시골의 작은 학교를 가자'라는 마음으로 병원을 다니지 않기 시작했다.
아이와 매주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며
"시끄러워. 너 왜 그렇게 소리를 내니?"
라고 말하는 어른이 있으면 옆에서 아이의 귀에 대고 말했다.
"저는 틱 장애가 있어요. 죄송합니다"
그 말을 하는 나도 아이도 불편함을 넘어 부끄럽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고, 미묘한 감정이 생겼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기차, 지하철, 버스를 타려면 솔직히 말하고 사과하는 방법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놀이치료 하는 날 치료 말고 그냥 지하철이랑 버스 탈까?"
"네 네"라고 좋아서 웃던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참 열심히 다녔다.
KTX며 버스, 지하철, 무궁화호, 새마을호... 어디든 지하철. 버스가 개통하면 꼭 첫날 가서 타고
지하철 10개가 넘는 노선을 모두 갈아타며 다니고 강릉에 가서 바다열차도 타고..
기관실도 들어가 보고..... 기차 박물관을 다니며 그렇게 열심히 보고 다녔다.
우리나라에 교통수단이 이렇게 많다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아이의 틱이 우리 가족을 불편하게 하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익숙해지기도 하고
또 조금씩 좋아지는 아이의 모습에 안심이 되기도 했다.
나의 결정으로 죄책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냥 좋았다.
그리고 사실 약을 끊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하루는 내가 아이의 약을 먹어보았다.
누워만 있는 아이의 상태를 알아야만 했다.
일반인이 먹는 것이 아니라 해도 알고 싶었다.
몸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반 알씩 이틀을 먹고 '치료제가 될 순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머리가 무겁고 힘이 빠져... 움직이는 것이 의지로는 힘들다고 해야 할까?
무기력해졌다.
무기력 그 상황이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적응하면 된다고 했지만 아이를 지켜보며 '작은 시골에 가서 살면 되지'라고
실천의 의지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약 없이 살아가는 여러 가지 대안을 수없이 되뇌었다.
물론 너무 오래전 일이고 그땐 아이의 모습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아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행복해지자라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지금 내 아이는 혼자 KTX를 타고 다니며 여기저기 여행을 다닌다.
새벽 4시 30분에 집을 나서 부산, 울산, 제주도까지 다녀온다.
음성틱도 긴장하면 나오고 불안도가 높아지면 들리지만... 걱정했던 만큼은 아니다.
일상생활도 잘하고 친구들과 어린이 영화도 보고 어린이 뮤지컬도 보는 걸 보면 일상생활에 큰 무리는 없다.
어쩌면 그때 그 수 많았던 경험이 지금 내 아이를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함께 한다는 말이 있듯
내 아이는 버스, 지하철, KTX의 사람들이 함께 키워준 것이 아닐까 싶다.
학교를 다니다 주말에 지도를 보며 계획을 하고 집을 나서는 아이의 모습에 감사하게도 행복함이 보인다.
아이의 치료를 결정하는 순간 가장 중요했던 아이의 행복이 길을 나서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느껴진다.
감사하게도...... 내 아이가 행복하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