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어 임용고시를 보았다.

열한 번째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에서 말했듯 나는 마흔이 넘어 임용고시를 보았다.

아이들이 컸고 첫째 아이도 반복의 힘인지 스스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이젠 내 일을 하고 싶었다.

회사도 1년 좀 넘게 다니고 방과 후 교사로 리코더도 지도했다.

그러면서 특수교육은 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어느 순간 용기가 생겼다.

하고 싶어졌던것 같다.

참을성도 생겼고 이젠 특수교사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기간제교사 생활을 했다.


교육청도 근무하고 특수학교에서도 근무를 했는데 .....

특수학교에서의 생활이 참 좋았다.

그 학교는 언덕이 높고, 나무가 크고, 하늘이 유독 가깝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1시간 40분을 가야 하는 곳이었지만

신기하게도 그 길이 하루도 힘들다거나 가기 싫었다는 기억이 없다.


매일 아침 뛰어서 4호선으로 갈아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며 출근하는 그 생활이 마냥 좋았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특수교사로 사는 것이 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이제 나이도 있고 언제까지 기간제교사로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전 해에 시험을 한 번 보긴 했지만 꼭 임용고시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사실 없었고

집안에 부모님도 아프시고....

다들 그 나이에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라는 의문에서도

'그래 내 나이에 무슨 임용이야'라는 핑계도 있었다.

또 출퇴근도 만만치 않아 손을 놓고 있다가 7월 어느 날 갑자기 이건 아닌데 싶었다.

전 해에 조금 해 놓은 부분이 있어서 인지 용기가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면 전날 한 내용 녹음본을 들으며 따라 했다.

샤워를 하며 외우고 또 외웠다.

출근길에는 장애 영역을 하나씩 녹음해서 듣고 입으로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인생에서 참으로 열심히 살았던 몇 달이다.


그래서 4시 30분에 퇴근을 하고 김밥을 먹으며 6시 도서관에 도착했다.

10시가 되면 집에 와서 12시까지 공부를 하고 맥주를 한잔 한 후 잠이 들었다.


아침에 샤워기의 물을 보며 '지금 내가 뭐 하는 거지?'라며 울고,

얼굴을 닦다가 수건을 잡고 울었다.

공부를 하다가, 어느날은 울다가, 어느날은 열심히 하는 내 자신이 조금은 기특하다가 그렇게 11월이 되었다.

이 나이에 여기까지 온 것도 장하다 싶었다.


그렇게 시험을 보았다.

정답을 알 수 없는 시험이다 보니 결과가 나오기까지 맘 편히 학교만 다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수험생들은 시도 교육청 정책을 분석하고 2차 면접, 수업시연 모두 연습하는데

난 그냥 1차 시험을 본 것에 만족하고 편하게 지냈던 것 같다.


1차 시험 발표가 나던 날

순회교육을 하고 학교에 들어와 점심을 먹었다.

발표는 10시였지만 기대를 안 했던 건지 아니면 확인이 두려웠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시간까지 결과를 모른채 시간이 흘렀다.


1시가 조금 넘었을 때 친한 선생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선생님 저는 안 됐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되었어요?"

그래 확인은 해야지....

교무실에 앉아 누군가 지나가지 않을 때 창을 열었다.


합격

뭐지? 다시 닫았다 열었더니 합격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어쩌지? 난 2차 준비를 아무것도 안 했는데~~~'

정말 그 순간 너무도 난감했다.

여러 선생님들에게서 도움을 받았다.

'내가 특수교사가 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라고 느끼며 행복하게 2차 준비를 했다.


임용고시 2차 시험을 보면서 인생을 하나 배웠다.

선생님들은 늘 우리 옆에서 만나고 또 자주 볼 수 있는 존재이다 보니

이런 과정을 거쳐 힘들게 되는 건 줄 몰랐다.

공립교사가 되는 길..

글로 보는 세상과 내가 겪는 세상은 참으로 달랐다.


면접 순서를 정하고 아무것도 없는 책상 위에서 내 순서가 오길 기다리며

텅 빈 칠판과 내 앞쪽 사람들의 뒷모습만 보았다.

그래도 몇 번 해 본 선생님들은 신발도 갈아신고 엎드려 잠을 청하기도 했지만

난 생전 처음이라 그냥 앞만 보고 내 순서를 기다렸다.


7번

그래도 면접은 그나마 빠르게 진행이 되다보니 내 순서도 금방 되었다.

그런데 많이 떨려서 인지...

즉답 문제를 다들 "잠시 생각한 후 답변드리겠습니다"라고 한다고 알고 있는데...

문제를 읽고 바로 답하기 시작했다.

꼭 정적은 견딜 수 없는 사람처럼 쉽없이 말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자 '아~ 진짜 망했다' 싶었다.


주차장에서 가디리던 남편과 집에 가는 중에 남편이 말했다.

"교복하러 바로 가자"

"교복?"

"어 둘째 중학교 교복 맞춰야지"

정말 화가 머리 끝까지 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내 머리에서 김이 모락 모락 나는 것만 같았다.

"나 내일 수업시연 있는거 몰라? 어제 잠도 한 숨 못자고 ..... 면접도 망쳤는데...

뭘 하러 가자고? 나 시험도 안 끝났는데?"


남편은 "둘이 다녀올께. 뭐 사올까? 죽 사올까?"

내 인생이 걸린 시험이라는 생각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남편이 나중에 "아주 건드리기만 해봐 그러는 거 같더라"라고 말했다.


2차 발표가 있던 날

남편에게는 3일 날 발표를 4일 발표라고 말하고 학교 출근을 했다.

10시 발표인데 난 행정실에서 아이들 표창장에 직인을 찍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10시 15분

천천히 3층 교실로 올라갔다.

교무실 내 자리에서는 도저히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창을 열어 확인창이 뜨자 머리가 멍했다.

'내가 정말 된 거야? 공립교사가?'


여러 번 확인을 하고 엄마랑 남편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리고

3층에서 계단을 내려오는데 선생님들의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어디 있는데? "

"된 거야? 안 된 거야? 위에 있는거 같은데 내가 올라가 볼까?"

"우리 여기서 기다리면 부담되나? 어쩌지?"

1층 계단 아래에서 들리는 우리 학교 선생님들의 소리였다.


2층에서 코너를 돌기전

"저 기다려요?"

"네 선생님" 여러 명의 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저 됐어요"

선생님들의 두 손을 모은 모습과 소리를 지르며 안아주던 그 장면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나 보다도 다들 어리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던 것도 아닌데.......

그저 1년 함께 있었던 동료 교사의 일을 이렇게까지 좋아하고 축하해 줄 수 있을까? 싶었다.

참으로 감사한 나의 마지막 기간제교사의 하루였다.


지금도 늘 생각난다.

큰 소나무가 우뚝 서있고 그곳에는 새 집과 날아다니는 새들이 있었다.

학교 버스가 들어오면 선생님들이 모두 나가 아이들을 맞이하고

우는 소리, 던지는 소리가 항상 들리고...

급식실에서는 매일 식판이 3개쯤 던져지는 곳이었지만

선생님들의 아이를 바라보던 그 눈, 아이들을 맞이하던 그 미소,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는 그 자세

참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 곳이었다.


나도 아이들에게 저런 모습으로 다가가고 웃어야지

다짐하며 나의 공립에서의 교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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