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자라는 텃밭 이야기

열두 번째 이야기

발령을 받았다.

신도시의 신설 유치원이다.

모든 것이 깨끗해서 좋았고 모든 것이 처음이라 불안했다.

학기가 시작하면서 장애이해교육과 통합활동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

1년을 계획하면서 내가 가장 시간과 마음을 쓰며 준비하는 것이

장애이해교육과 일반유아와 장애유아가 함께하는 통합활동이다.


이기적이지만 천천히 가는 우리 아이들의 길 옆에서 일반아이들이 함께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그러다 보면 서로를 이해하고 우리 아이들도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는다.

함께 즐거운 경험을 하고 함께 놀이하는 통합활동에서 서로에게 의미가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그 시간들이 마음에 차곡차곡 담겼으면..... 하는 바램을 담아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3월이 되면 장애인 선생님이 해 주시는 장애예방교육을 하고

우리 아이들의 행동 특성과 어려움, 좋아하는 것, 강점 등을 영상으로 만들어

장애이해교육을 실시한다.

청각장애, 자폐성 장애에 대한 교육 등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게 참여를 통해 활동한다.

장애이해교육을 하면서 우리가 함께 놀이하는 통합교육을 계획한다.


통합활동을 계획하며 가장 먼저 시작한 건 텃밭 활동이었다.

3월부터 7월까지 하는 장기프로젝트 활동으로 하면 좋을 것 같았다.

물론 동화놀이도 하고 감각놀이도 하고 요리활동 등 다양한 놀이를 준비해서 하지만

텃밭 활동은 준비하고 계획하면서 왠지 모를 마음속 설렘이 일었다.


"왜 그렇게 힘든데 텃밭까지 해?"라고 동료 교사가 물으니

"이거라도 안 하면 못 살 것 같아서요"라고 답한 어떤 특수학급 선생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 말이 새삼 가슴저리게 와 닿는다.


나는 농부의 딸이다.

우리 부모님은 자식들은 절대 농부나 농부의 아내라는 이름으로 살지 않길 바랐다고 했다.

새벽 4시면 일어나 동이 트기도 전에 밭으로 향하는 아빠

매일 점심, 새참을 해서 밭으로 나르는 엄마

아마 당신들의 삶이 고달파 자식들에게는 그 자리에서 살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 부모님의 바람대로 도시에 자리를 잡았고 남편도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땅이 주는 기대.. 흙냄새의 편안함

연두 초록의 자람이 주는 행복함이 날 살게 했다.

우리 특수학급의 아이들은 천천히 자란다.

천천히 자라는 아이들.....

매일 인사하기를 하고 눈을 보고 말하기, 신발을 바르게 신고 벗기, 바른 자세로 앉기와 화장실 사용하기,

손 씻기를 하루 일과 안에서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특수교사인 나는 스스로 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매일매일을 아이의 옆에서 말로 손으로 눈으로 반복한다.


사실 반복은 어떤 날은 지치게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할 것만 같은 불안함을 가진다.

그 일을 매번 반복하며 '내가 이 일을 지치지 않고 웃으면서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러다 아이들과 함께 하며 웃을 수 있는 활동의 하나로 텃밭 활동을 한 것이다.


땅을 일구고 아이들과 함께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키우면

우리의 사랑을 받고 무럭무럭 자라는 텃밭 식물들

그 모습에 위로를 받았다.

그 특수학급 선새님도 우리 엄마 아빠도 식물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어떤 날은 위로를 받았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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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학교 텃밭으로 나간다.

애플수박, 애호박, 가지, 방울토마토, 참외, 호박, 고구마, 감자 등 순정리를 한다.

잘 자라도록 어미손 아들손 손자손을 보며 구분해서 따 주어야 한다.

검색을 하고 영상을 보며 하나하나 알아간다.

물도 주어야 하고.. 수정이 되지 않을 수 있으니 수정도 직접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과 할 수 있는 활동을 계획한다.

자라는 순서를 동화책을 보며 알아가고, 우리가 해야 할 일 들을 계획하고, 날짜를 세어가며 수확하는 과정에

참여하면서 아이들의 웃음소리에서 성취감도 느끼고 행복함을 느낀다.


그 텃밭의 식물들은 잘 자라는 말을 잘 듣는 아이들 같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정성을 주며 자람을 배우는 배움터가 된다.

우리 아이들도 텃밭의 식물들도 자란다.

속도는 다르지만 그 다른 자람이.. 자라나는 그 힘이 날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도 웃으며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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