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이야기
유치원에서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등원을 하고 나도 우리 반 아이를 데리고 일반학급으로 통합활동을 하기 위해 갔다.
한 여자 아이가 책상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 밖에 뭐가 보여?"
우리 반 아이의 손을 잡고 말을 걸며 다가가고 있는데...
책상 위로 눈물이 뚝! 떨어졌다.
"무슨 속상한 일 있어?"
"너무 힘들어요"
만 5세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아이의 동생이 우리 반에 있다 보니
누나인 그 아이에게 한번 더 말을 걸고, 한번 더 웃어주며 서로 공감대가 있는 그런 사이였다.
아이가 안겨 한 참을 우는데...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다는 말이 딱 맞았다.
"많이 힘들구나. 선생님이 들어줄게. 다 들어줄게. 뭐든 다 말해"
아이는 가끔 우리 반으로 찾아오기도 하고 가끔은 그반 아이의 통합활동에 들어갔을 때
함께 종이접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책도 보며 서로를 위로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그 작은 손으로 동생의 손을 잡고
그 작은 입으로 동생에게 같은 말을 하고 또 하고....
그 작은 발로 뛰어가는 동생을 잡는 그 생활이 너무도 눈에 선했다.
"선생님 계속 그래요? 초등학생이 되어도?"
"너의 생각은 어때?"
"안 변하죠? 어른이 되어도 똑같은 거예요? 휴~"
아이가 느끼는 미래가 반복될 것만 같은 삶이 얼마나 두려운지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말하는 "그건 네가 하는 일이 아이야. 엄마 아빠가 할 일이야"
"너는 네가 하고 싶은 거 해"와 같이 하는 말들은
어쩌면 그 아이에게 뜬구름 인지도 모른다.
동생이 함께 유치원 공간에 있고 집에서도 떨어질 수 없으며...
내가 동생을 내 눈에서 멀리 보낼 수 없는 기질과 성격을 가졌는데
교과서 같은 말들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넌 소중한 아이야. 선생님한테도 너무 소중한 걸. 선생님이 정말 좋아하는 아이야"
그 정도의 말을 하며 응원해 주는 것 말고는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아이가 하루는 그랬다.
"선생님은 왜 특수교사를 선택했어요?"
"그게 궁금해? 왜 궁금해졌어?"
"너무 힘든데.... 궁금해서요"
"그래서 이렇게 예쁜 널 만났잖아. 동생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친해졌잖아"
그리고 난 이 일이 참 좋다고 말했다. 우리 아이들의 선생님이라서
힘들다고 생각 안 하고 함께라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고...
한 어머니와 상담을 했다.
초등학생 형제가 있는데 동생이 우리 반이었다.
그래서 상담을 하며 물었다.
"어머니 00이 형은 동생을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선생님 이번에 저의 가족 모두 종합심리검사를 받았거든요. 큰 아이가 소아 우울증으로 나왔어요"
"그럼 치료를 받고 있을까요?"
"상담치료받아요"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장애가 있는 아이가 가족으로 있으면 다른 가족들의 삶도 어렵고 힘들어진다는 것을...
그런데 그 누구보다 어린 언니, 오빠, 동생은 그 무게를 표현하지 못해서 우리가 모를 뿐..
어쩌면 어른의 무게보다 무겁고 힘들다는 것을 의식 속에서는 모두 알지만
우리는 모두 잊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도 두 아이가 있다.
첫째 아이가 장애가 있고 둘째 아이가 비장애 아이이다.
우리 둘째는 어릴 때 친구 생일 초대를 받아도 엄마가 함께 가야 하는 상황에서는 모두 빠져야 했고,
놀이터에서 놀다가도 눈치가 보이면 놀고 싶어 하는 둘째 아이의 의견은 무시된 채
집으로 들어와야 했다.
먹고 싶은 건 모두 첫째 아이의 의견이 먼저였고...
어디를 가든 첫째 아이가 갈 수 있는 곳, 사람들의 눈길을 덜 받는 곳, 아이가 어디를 뛰어나가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곳 모두 첫째 아이가 우선이었다.
그러면서 괌으로 가는 비행기에서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견뎠고
엄마가 첫째 아이의 일로 다른 사람에게 머리를 숙여 사과하면 그 옆에서 안절부절못했으며...
초등학교 3년을 함께 다니며 형의 존재를 의식하고 견뎌야 했다.
그 여자 아이와 안고 함께 울던 날
집으로 돌아와 현관에 벗어져 있는 둘째 아이의 운동화를 보았다.
내가 두 아이의 엄마라고 말은 하면서 우리 둘째 아이의 삶을 깊이 있게 생각하고
고민한 적이 있었던가?.....
현관에 서서 한 참을 울었다.
내 아이의 삶이 나랑 함께였지만 혼자 견뎠을 그 수많은 일들이
마음 안에 잊히지 않는 그 많은 어두운 감정이.....
너무도 아프게 다가왔다.
내가 지금 이렇게 교사로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첫째 아이가 스스로 자신을 챙겨가며 살 수 있는 것도
남편과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들이
어쩌면 우리 둘째 아이의 희생 위에 놓인 것들은 아닐까 싶어 더 눈물이 났던 거 같다.
사춘기 아이가 된 둘째 아이의 방문을 열었다.
"왜요?"
"고마워"
"네"
꼭 엄마의 마음을 안다는 듯 대답했다.
늘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자랐을 아이
부모의 눈길은 형에게 양보해야 했을 아이
지금도 형의 미래를 함께 짊어진다고 느낄 아이
엄마 아빠 다음으로 형의 보호자가 된 아이
부모가 시작한 그 아이의 인생이 참 아리게 다가오는 날이었다.
터울이 한 두 살 나는 아이들은 형제자매라는 이름으로 유치원에서 함께 생활한다.
사이가 좋아 보이는 아이들, 맞지 않아서 서로 쳐다보지도 않는 아이들
서로의 감정을 표현하며 유치원이라는 사회에서 살아간다.
장애가 있는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 형제자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보호자가 된다.
동생이 소리를 지르며 유치원 복도를 뛰면 가장 먼저 나와 보는 아이
오빠가 울면서 소리를 지르면 갑자기 위축되는 아이
통합활동을 계획하며 동화를 제작한다.
그 동화에서 우리 반 아이들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 여자아이 반이 통합활동을 위해 우리 반에 온 날이었다.
동화 속 내용으로 "누나 고마워"라는 대사가 동생의 목소리로 나오자
나랑 눈이 마주쳤고 고개를 숙이고 소리 없이 울었다.
아이들과 누나 동생의 이야기를 나눈 후 준비된 활동들의 공간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동생은 어린 반이라서 그날은 같은 반 장애유아와 함께 통합활동을 하는데
같은 반 장애유아에게 가서 말했다.
"고마워"
동생한테 대답하는 것 같았다.
아이가 졸업하는 날 나에게 다가와 안겼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 최고예요. 우리 동생 잘 부탁해요"라고
그 말이 훈장을 받은 것처럼 기뻤다.
아이의 인정을 받은 것 같아 감사했다.
마음이 참 고운 그 아이는 자라나며 가끔은 서럽게, 억울하게 그러다 가끔은 감사함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잘 받아들여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크게 가지며 살아가길 바라고 또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