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따뜻함 대신 사명을 품었다
서른여섯의 봄, 나는 연애 대신 사업계획서를 품었다.
그 시절, 사랑을 하던 사람은 내게 말했다.
“나는 네가 좋아. 그런데 너는 늘 먼 곳만 바라보잖아.”
그 말이 틀렸다는 걸 나는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실망을 주는 것뿐이었다.
"나도 실은 그녀를 사랑했다...... 그것도 가장"
자연스레 멀어진 그녀를 가슴에 묻고 새벽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두 번의 사업실패와 삶의 고단함으로 방전된 느낌이었다. 껍데기뿐인 몸과 마음에 열정의 에너지가 식어가고 있었다. 지금 내 처지에 연애라니! 마음이 전혀 동하지 않았다.
삼 개월 뒤 독일 친구의 도움으로 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일상은 독일 화학제품의 실생활 적용 아이디어, 내 창업가 정신을 일어킬 마인드셋, 국내 틈새시장선별, 마지막으로 내 비즈니스 모델 캔버스였다. 특히, 매일 늦게까지 그리고 분석하고 또 지우고 다시 차별해서 그리고 했던 나만의 비즈니스 모델 캔버스였다. 고객분류부터 수입원, 핵심역량 등 두 번의 실패로 얻은 인사이트와 시장 분석력, VM/VI에 맞춘 고객 편의성을 극대화하고 있었다.
결국 지금 생각하면 그 무참하고 잔인했던 두 번의 실패는 두 번의 포기하지 않음으로 내게 교훈을 주었다.
누군가 성공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닌 포기라고 했던가. 밤, 낮으로 공감 가는 말이다.
내 시선은 늘 지금보단 '조금 더 나은 성장'을 향해 있었다. 매년 두 자릿수 매출증가, 시장의 다변화 및 확대등이었다. 친환경, ESG, 기술 창업, 사회적 가치등을 사람들은 그걸 멋있다 했지만,
사실 그건 늘 외롭고 헛헛한 싸움이었다. 투자대비 수익률이 시장별, 제품별로 천차만별이었다.
창업은 결국 나 혼자 견뎌내야 하는 새벽이었고, 사랑은 함께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온기였다.
나는 결국, 온기보다 꿈을 택했다. 그렇게 나의 세 번째 회사가 탄생했고,
사람들에게 “이건 환경을 생각한 기술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왔다.
지금 내 손에 들린 제품은 단지 물건이 아니라, 그때 떠나보낸 사랑에 대한 작지만 확실한 보상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랑이 내게 남긴 건 아픔과 눈물 외에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책임감이었다는 걸.
내가 창업을 하며 지켜온 단 하나의 신념은 이것이다. “기술은 따뜻해야 하고, 사업은 사람을 위해야 한다.”
거창하게 힐턴의 직원복지정책을 언급하진 않아도 지금 사내에 걸려 있는 회사의 미션은 이렇다.
"우리는 품질 친화적인 아이디어 제품을 팔고 전 직원의 행복을 물심양면으로 돕는다."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며,
나는 누군가의 내일을 위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이 글을 사랑했던 그 사람이 읽는다면,
이해받고 싶다기보다, 그저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었구나”라고 느껴졌으면 한다.
"나도 실은 그녀를 사랑했다...... 그것도 가장" 아직도 가끔 혼자 속삭인다.
태양이 아무리 빚나도 세상은 비명을 지르고 싶으실 만큼 어두워질 때도 있을 것이다.
먼저 걸어본 선임자로 예비 창업가들, 그들과 천리길 동행하고 싶다.
나는 지금도 창업가라는 이름 아래,
‘사랑을 품은 기술’을 초기 창업가, 예비 기업가들과 함께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