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 전과 샤갈 전에 다녀왔다. 일하고 남는 시간이 많지 않으면, 짧은 여가 시간에 경험하고 싶은 수십 가지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 그 선택의 카테고리 안에 전시회를 넣는 사람들, 숱한 세상의 즐거움을 뒤로한 채 미술관에 가는 사람들이 예술을 지속시킨다. 누군가의 일생을 통과하는 길인 전시회는, 예술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더라도 한 인간이 하나의 우주를 대신한다는 점에서 천문학이나 물리학 세미나, 콘서트나 미식회와 같다.
영국 드라마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에는 열여섯 살의 레이와 친구들이 나온다. 레이는 시리즈의 주인공이어서가 아니라, 멋진 사람이기 때문에 친구들의 사랑을 받는다. 드라마 속 '멋진 사람'의 기준은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멋진 사람의 기준과는 사뭇 다르다. 레이는 '멋진' 음악을 듣는 취향을 가졌고, 그 취향 하나만으로 무리에서 가장 귀여운 남자애와 사귄다. 친구들은 멋진 음악을 듣는 레이의 영혼을 닮고 싶어 하고, 질투도 한다.
누군가의 성취가 아니라 취향이 질투와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단 사실이, 다른 사람의 예술적 취향을 대놓고 부러워하는 취향의 자유가 당시 내겐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나도, 나와 같은 음악을 듣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기준을 만든 건 아닌가 싶다. 음악이 아니라면 책이, 책이 아니라면 미술이, 뮤지컬이나 운동이나 영화 중 하나라도 취향이 같아야 내가 뭔가에 감탄해 호들갑을 떨 때 외계어를 듣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얼굴과 마주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
잠들고 깨는 시간도, 일하고 쉬는 시간도, 밥을 먹고 간식을 먹는 시간도 다 다른 이들이 힘들게 겹치는 시간을 찾아 같은 장면에서 내적 함성을 지르는 순간, 그 순간이 한 영혼과 다른 영혼이 가장 가까이 있는 순간일 것이다. 가끔 생각한다. 같은 그림 앞에 한참 같이 서 있는 모르는 사람과 나, 같은 방향으로 서 있는 그 한 발짝의 거리가 타인과 가장 가까이 서 있을 수 있는 거리일지도 모른다고.
달리는 녹아내리는 시계로 유명한 '기억의 지속'이라는 작품으로 알려진 초현실주의 화가지만, 전시는 초현실주의보다 달리와 갈라의 관계에 더 집중한 것처럼 보인다. 갈라는 달리가 50년 넘게 사랑한 사람의 이름이다. "훌륭한 예술가가 되려면 방법은 하나, 갈라를 아내로 맞이하면 된다"고 말할 정도로 갈라를 아끼고 사랑했던 젊은 시절의 달리보다 놀라운 건 노년기의 달리다.
그는 갈라에게 큰 성을 하나 사서 선물했는데, 갈라는 본인이 손으로 쓴 초대장이 아니면 그 성에 오지 말라고 달리에게 말한다. (내가 연인에게 커다란 집을 하나 선물했는데, 연인이 비밀번호도 알려주지 않고, 자신이 초대할 때만 오라고 말하면 내 기분은 어떨지 상상해본다.) 달리는 약속을 지켰다. 초대를 받았을 때조차 융숭한 환대가 아니어서 그리웠던 얼굴을 슬쩍 보기만 하고 오는 건데도 갈라가 초대할 때만 거기 간다. 그리고, 갈라가 죽은 후에는 삶에 아무 의미가 없는 사람처럼 앓다 죽는다.
그 사람이 없으면 내가 죽어버리는 것, 살아있어도 죽은 것과 다름없이 사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지금도 해가 들지 않는 마음 깊은 곳, 녹지 않는 만년설로 뒤덮인 계곡에 꽁꽁 언 채로 묻혀 있는 대사가 있다.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 경(이나영)이 복수(양동근)와 헤어지고 나서 버스 정류장에 앉아 한 말이다.
"너랑 헤어지면 난 평생 담배만 피울 거야.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고 담배만 피울 거야."
그가 있어야만 완성되는 나라니, 끔찍하게 불안해서 위태롭게 아름다운 관계라니. 작가 ellie는 책 <연애하지 않을 권리>에서, 왜 우리가 연애하지 않을 때 외롭거나 불완전할 거라고 예상하는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지, 왜 상황을 바꾸려고 노력하거나 혼자인 것에 대해 열심히 변명하는지에 대한 소신을 보여준다. 책을 읽으며 공감한 이유는, 책의 내용이 흔히 알려진 연애나 사랑에 관한 환상적 소문 -둘일 때 완벽해진다-에 대한 설득력 있는 반박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달리의 전시에 간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 투하된 핵폭탄을 보고 달리가 걱정한 것은 가족이나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아니다. 시절이 하 수상하여 그리던 중인 갈라의 초상을 완성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게 그의 가장 큰 근심이다. 갈라는 인터뷰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성격이라, 갈라의 목소리로 남은 기록은 거의 없다. 나는 하루키의 아내나 김영하의 아내처럼, 성공한 예술가의 아내로 살아가는 일의 기쁨과 고단함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은 모두 이름을 드러내지 않은, 발표된 예술의 일부다. 세상엔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예술의 일부가 되기를 자처한 사람도 있다. 예술 작품을 보거나 읽을 때 감춰진 무언가를 보려고 돋보기를 바짝 들이대면 희미하게나마 그들이 발을 끌며 멀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달리나 피카소처럼 살아있을 때 성공한 화가가 되려면 세상에 없는 걸 보여줘야 한다. 그릴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영혼을 구체화시켜 세상에 내놓았을 때, 아무도 그걸 발견 못할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달리는 천재성과 유머 감각을 비롯해 많은 것을 가졌지만,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 긴 시간을 가졌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불꽃 터지는 밤하늘과 살구잼을 만드는 오후 같은 삶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달리의 그림과 영화와 애니메이션은 슬프지 않았고, 현실 너머 세계를 남들과 다르게 얘기할 때도 허황돼 보이지 않았다.
사랑이나 돈, 건강이 결핍된 상태에서 힘겹게 탄생하는 예술의 시작을 믿는데도, 일생의 뮤즈와 함께한 꿈같은 시간이 완성시킨 천재의 영감과 문득 마주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예술은, 저마다 다른 모양을 한 삶처럼 타인이 상상할 수 없는 자신일 뿐이어서, 최대한의 자신일 때 가장 빛나는 무엇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