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 형은 우리 희망이고 별이니까.
형이 여기로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 없어.
아직 늦지 않았어.
제가 젖을 물려 봐도 될까요?
그런 말들 뒤로 숨길 수 없는 게 지나갔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 한 표정이. 불을 껐어도 표정을 들킬까 봐 돌아눕는 등이. 터널을 통과하느라 어두워진 순간 방심하느라 흩어진 마음이.
타인의 삶을 아는 데,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일까. 닮은 부분이 있는 사이라면, 그 사람과 함께 멀리 가는 중이라면 몇 날로도 마음에 길이 난다. 그 길을 걷다 여기 눌러살고 싶다,고 인생을 바꿀 결심을 할 수도 있고.
우리가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아기를) 버리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처음 만난 내 편을 응시할 수도 있다. 곁에 있는 그가 처음엔 반딧불이 같았지만 마침내 내일도 켜질 달빛인 걸 알게 된 표정으로.
며칠 새 그렇게 표정이 달라진 이들을 쫓는 눈도 있다. 차 안에서 어묵을 우물거리며, 덜 익은 컵라면을 참으며, 맛이 아니라 촉감 때문에 젤리를 씹으며 버티는 날들도. 기껏해야 운전석과 조수석 자리를 바꿔 앉을 뿐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날들을 견디게 하는 힘은 뭘까. 내 손으로 세상을 바꿀 거란 확신일까, 같은 꿈을 가진 동료와 함께라는 위안일까, 지금 쫓는 게 도리의 뒷모습이란 믿음일까.
잠복 수사는 출렁이는 것, 따뜻한 것, 안고 싶은 것을 라면 박스에 채워 넣고 그걸 책상 밑에 밀어 두는 일이다. 발로 건드려 보면 거기 있는 걸 알지만,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 박스를 열어볼 순 없다. 밀어 두고 미뤄 두는 건 다 슬퍼서, 창문을 끝까지 올리고 길가에 서 있는 차마다 눈빛을 숨긴 형사들이 타고 있을 것 같다. 지친 형사가 오래 접혀 있던 몸을 펴면서 우두둑 소리와 함께 차에서 내려도 거리는 아무것도 눈치 못 채겠지만.
그래도 어떤 시선은 그런 잠복 수사의 옆모습을 끈질기게 따라가니까, 우리 평온을 지키는 잠행의 날을 거기서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발견하면 달라지는 게 있다. 눈물로 씻어 푸석해진 뺨을 가진 사람은, 엎드려 숨죽인 거리를 전보다 잘 살피게 된다. 그 눈으로 창문에 달라붙은 꽃잎을 떼는 손가락을 집중해 바라보면, 손가락이 유리에 붙은 위로를 땅에 버리지 않고 실내로 데려오는 순간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이야기 속에는, 만난 지 얼마 안 된 여자의 아이를 키우겠다고 말하는 남자가 있다. 어떤 사랑은 스스로 정한 사랑의 범위를 뛰어넘는다. 나라면 할 수 있을까, 질문한 다음 들여다보면 그 안에 형태는 없고 빛과 소리만 어슴푸레하다. 표가 없어 입장 못 하고 건물 계단에 앉아 희미한 박수 소리만 느끼는 공연처럼.
장마철 불어난 물에 떠밀려 가도 살아남는 것들처럼 혼자가 아니어서 괜찮은 삶도 있다. 사는 게 질긴 것이어서가 아니라, 매듭을 튼튼히 한 줄을 던져주는 사람들이 자꾸 우리를 이쪽에, 살아가는 쪽에 묶어 두기 때문이다.
서로를 서로의 부두로 생각하는 사람들. 그 부두로 돌아오려고 바다로 나가고, 상대가 머물다 떠날 땐 기꺼이 뱃전을 밀어주는 사람들.
온 세상이 젖어 우는 눈과 그친 눈을 구별할 수 없을 때 유리창 너머 흐르는 게 비만은 아닐 것이다. 시간이 흘러 창가에 다시 젖은 꽃잎이 붙으면 누군가 그걸 조심히 떼겠지. 버리지 않고, 다치지 않은 꽃잎을 손바닥에 내려놓은 그를 본다. 그 모습을 보는 동안 되돌아온다, 떠났던 물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