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이층에 있었다. 삐걱댄 적은 없지만 밟을 때마다 부드러운 카스테라를 손가락으로 눌렀을 때처럼 푹 들어갈까 봐 불안한 계단이었다. 잘 구워진 카스테라 표면처럼 어두운 갈색에 나이테 무늬가 살아있는 계단. 거기서 얼마나 많은 사랑과 이별이 반복되었는지 계단만 알아서, 계단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이미 지나간 걸음과 제 걸음이 얼마나 닮았는지 끝내 알 수 없었다.
이백 년 넘게 닦여서 반들반들한 마루랑 마루를 닮은 나무로 가득 찬 방, 좁고 긴 부엌과 길 쪽으로 활짝 열리던 창. 좁은 부엌의 좁은 책상에서 나는 일기를 썼다. 우리말로 쓸 때는 너무 길고, 프랑스어로 쓸 땐 생략이 너무 많아서 나조차 해독에 시간이 걸리는 일기를.
창문을 열면, 아니 창문을 열지 않아도 항상 빵 냄새가 나는 집이었다. 손바닥만 한 길을 건너면 새벽 세 시에 불이 켜지는 빵집이 있었다. 빵집에 불 켜지는 걸 보고 잘 시간인 걸 알았다. 아직도 거기서 파는 것만큼 맛있는 바게트를 못 찾아서, 정말 맛있는 바게트에는 새벽 세 시 공기가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파리는 손님에게 정답지 않은 도시라는 소문도 있지만, 나는 처음부터 눈동자 색을 알아볼 것처럼 바짝 다가오지 않고 천천히 -영원처럼 느껴질 정도로 느리게- 다가오는 속도가 마음에 들었다. 속 깊은 친구 같은 이 도시는 생태에 관여하면 안 되는 다큐 감독처럼 나의 기쁨과 슬픔에 어떤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다. 다만 말없이, 안개를 헤치며 날아가는 날개 같은 미소를 보여주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 순간이 크라프트지에 아무렇게나 둘둘 말아 건넨 귀한 선물 같았다.
선물을 받기 전에 나는 자꾸 꺾이는 무릎으로 풀썩이는 황무지 같은 마음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생존할 만큼만 먹었고, 모르는 사람이 가득한 데서 혼자 있는 것처럼 혼잣말을 했고, 일하다 갑자기 눈물이 줄줄 흘러서 같은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고 궁금하게 만들었다. 궁금함이 불안감이 되면 참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는지 듣고 싶어 했는데, 끝내 그럴듯한 거짓말을 만들어낼 수 없어서 직장을 그만뒀다. 거기 아닌 어디라도 상관없었지만, 기왕이면 아주 멀고 아름다운 곳으로 가고 싶었다. 사는 게 슬프지 않은 곳은 멀리 있을 것 같았다.
새벽부터 오후까지 빵 굽는 냄새 가득한 길에는 극작가 이름에서 가져온 거리 이름이 붙어 있었다. 파리는 골목골목 예술가 이름을 붙이는 도시다. 한국에선 들어본 적 없는 작가였지만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인터넷으로 찾을 수 없는 게 가득한 곳이었다.
빵집 맞은편에 작은 공원이 있었다. 모아 둔 햇빛을 다 써 버리면 연료를 채우러 가는 사람처럼 공원에 갔다. 풀밭에는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은 청춘들이 가득했는데 팔꿈치를 괴고 비스듬히 누워 있기만 해도 발산되는 젊음이 응달에 생기를 더했다. 언제나 너누룩하게 움직이는 유모차와, 유모차와 속도가 비슷한 할머니들도 있었다.
할머니들은 슈퍼마켓에서도 만났는데, 장바구니에 다른 식료품은 없이 사과만 서너 개 들어있어서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설마 저것만 드시는 건 아니겠지, 집에 영양이 풍부한 다른 음식이 있겠지. 배우 윤여정이 티비에서 사과 반의 반 쪽을 한끼로 먹는 걸 보고, 그때 사정을 알아봤어야 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할머니들은 그때 일주일치 식량을 준비하신 걸까.
가장 후회되는 게 그거다. 다정한 할머니들이 보여준 마음을 돌려주지 못한 것. 오늘 날씨 참 좋지? 라고 물으면 네, 그렇네요- 까지만 말하고 만 것. 내가 찍어 준 폴라로이드 사진 볼 수 있어? 라고 묻는 노부부에게 저도 한 장 찍어 드릴까요? 라고 상냥하게 대꾸하지 못한 것. 좋은 아침이야, 새해 복 많이 받아,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길! 그런 인사에 대화를 길게 이어나가지 못한 것.
공원에 묻은 타임캡슐에 십 년 후, 이십 년 후 다시 오고 싶다는 소원을 적을 게 아니라 할머니들에게 다정한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라고 적었어야 했다. 눈이 오지 않는 파리에 십일월부터 눈처럼 포근한 소식을 띄우는 사람이 많게 해주세요, 라고도. 가로등 아래서 친구를 기다리며 문고판 책을 반이나 읽던 모르는 사람 다리가 피곤하지 않게 해 달라고, 카페에서 한 시간이나 울던 청년 어깨를 누군가 가만히 덮어 주게 해달라고 빌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아서 나는 거기를 떠나야 했다. 도시도 주기만 하는 사랑에 지쳤을 것이다. 아름다운 아침과 낮을 몽땅 주고도 밤은 한없이 고요하게 찰랑였는데. 녹은 낮처럼 잔잔하던 밤의 수면 위를 걸을 순 없었으니 거기 빠지든지, 건너든지, 바라는 것 없이 바라보든지 했어야 했는데. 영혼의 물기가 다 빠진 사람처럼 창가에 서서, 한 손은 라디에이터에 얹고 한 손엔 먼 나라에서 온 편지를 쥔 채 그리운 표정이나 짓고 있었으니 말없던 도시의 인내심도 바닥이 났겠지.
한국에서 온 소포가 반이나 비어서 도착한 적이 있다. 잃은 걸 끝내 찾지 못해서 선물을 보내려는 이들에게 소포 보내지 마세요, 라고 말할 수밖에 없던 날들이. 빅맥을 주문했는데 고기 없이 빵과 양상추만 있었던 적도 있다. 먹지도 버리지도 못할 빵을 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런 사소한 사건들만 빼면 파리는 다정한 연인이었다. 헤어진 후에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알게 되는 일이 거의 없는 것처럼, 이별하고 진가를 알게 된 도시는 파리뿐이다. 머무는 이에게 바라는 게 없어 평온한, 댐의 수문처럼 추억을 모아두기만 하던 길들을 이제 와 잃었다고 할 수 있을까. 잃은 건 시절의 장막 뒤로 빠져나간 빵 굽는 냄새뿐인지도 모른다.
어떤 도시는 생생하게 펄떡여서 손에서 미끄러지고, 미끄러져서 전과 다른 풍경이 된다. 그 끝없는 역동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미 거기 살고 있는 사람 빼고는.
그때 내가 어떤 행운을 움켜쥐었는지 모르고 떠나고 싶어 했던 곳은, 파리 13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