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오에게 달려가는 대신에 그의 집에 갔다. 우리가 오랜 기간 함께 했던 집에 갔다. 침대에 남은 자국들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잔인하고 역겨웠다. 나의 푸른 윤오가 시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우러러봤던, 동경했던 푸름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 윤오가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직시했으면 했다. 그럼 더 이상 슬프지 않을 텐데. 우리의 침대에 그저 가만히 누워있었다. 핏자국 위에 누워 가만히 생각했다. 윤오는 가만히 있는 것일까. 멈춰 있는 것일까. 나의 하루는 윤오가 있는 것만으로 더욱 생기 넘쳤는데 윤오의 하루는 왜 정적이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문 질문들을 하며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병원에서 온 전화를 한차례 더 거절하고 나서야 몸을 일으켰다. 가족에게 먼저 연락을 시도했지만 끝내 찾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윤오는 내게 부탁했다. 나는 괜찮아, 여기서 나가고 싶어. 시든 윤오는 끝까지 나의 마음을 괴롭혔다.
병원에 가지 않은 채 짐을 쌌다. 윤오의 집인데도 내 물건이 더 많아 보였다. 초록을 없애버린 빨강. 윤오에게서 받았던 사랑은 내게 남아있었을까. 내가 준 사랑은 윤오를 덮쳐버린 걸까. 윤오를 동경했다. 초록이 가진 푸르름을, 싱그러움을, 시들지 않을 것만 같은 여름을 사랑했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었기에 윤오를 닮아가려 노력했다. 그가 세상을 보는 시선을 따라갔다. 세상은 아름답구나, 윤오를 만나면서 나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세상은 너무나도 이기적이었다. 수많은 차별들, 혐오들, 아름답지 못한 추악함들. 내가 알고 싶지 않았던 세상의 진실은 아름다움을 깨달음과 동시에 찾아왔다. 윤오는 추악함이 있기에 아름다움을 꺼내볼 수 있다고 했다. 절망하지 않고 정화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다 보면 세상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더 이상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믿었다. 윤오의 생각에 의구심이 들었다. 뒤덮인 추악함에서 겨우 꺼내 보인 아름다움은 과연 변질되지 않은 그대로일까. 겨우 겨우 살아남은 아름다움은 어떻게 해서든 추악함을 이겨내고, 먹고 자란 그것을 선명한 아름다움이라 칭할 수 있을까. 윤오가 말한 아름다움은 별 게 아니었다. 푸르른 하늘, 살랑이는 나뭇잎, 길가를 방황하는 작은 벌레들. 각자 살아남고자 애쓰는 것들이었다. 윤오도 그를 따라 살아남고자 애썼다. 추악함을 마주해도 포기하지 않고 헤쳐 나갔다. 과정 속에서 윤오는 시들어갔다. 겨울에도 푸르른 상록수가 아니었다. 험난한 겨울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지 못하고 끝내 말라갔다. 윤오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들이 그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윤오는 사회적 문제의 당사자이며, 피해자였다. 세상은 알아주지 않는. 외면하는 사람마저 언젠가 윤오가 될 수 있는 사회였다. 윤오의 괴로움을 알면서도 나는 정답만을 간구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돼?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회를 원해야 해? 정답은 없었다. 나도 알고 있었지만 윤오에게 기대했다. 윤오만은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사실은 윤오도 낼 수 없는 답이었음에도 기대했다. 그는 꿋꿋하게 관철하고 진리를 파헤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윤오의 가치관은 내가 내민 반론에 조금씩 깎여갔다. 반박하지 못하는 윤오를 볼 때면 추악함이 느껴졌다.
세상은 흑과 백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적어도 우리는 빨강과 초록으로 나눌 수 있었다. 너무 다른 우리였기에 절대적으로 섞일 수 없었다. 가벼운 밀도로 윤오의 위를 지그시 눌렀다. 사랑이라는 컵에 담긴 물과 기름처럼. 아무리 바늘로 사이를 뚫어봐도, 막대기로 열심히 저어봐도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았다. 사랑을 강렬히 흔들어 겨우 섞인 상태가 되어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동떨어졌다. 결국 윤오는, 기름보다도 높은 밀도인 윤오는 더욱 높은 밀도를 스스로에게서 내어 가라앉아 버렸다. 핏물은 여전히 기름과 섞이지 않았다. 윤오는 나에게서 더욱 멀어져 가라앉음을 선택했다. 초록을 동경한 나는 동일하면서도 동일하지 않은 빨간 핏물 위에 고여 허우적댔다. 윤오를 원망했다. 그런 선택을 한 윤오를 이해할 수 없었다. 윤오 또한 이해를 바라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함께한 기간 동안 알게 된 윤오를 생각하면 도출해 낼 수 있는 마음이었다.
윤오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나 윤오로부터 깨달은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다시 지울 수 없었다. 나는 그와 비슷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푸르른 꼭지에서 빨간 과육만을 뜯어 삼켰지만 속이 아팠다. 말라버린 줄기를 외면할 수 없게 됐다. 나는 빨강을 입에 물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추악함을 보며 이겨내야 한다. 나 또한 시들지 않도록. 윤오는 내게 어떤 존재였을까. 필요한 과정이었을까. 옳은 마음이었을까.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 시들지 않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