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1)

by 김소희

저예요, 사랑하는 막내딸. 이렇게 편지를 쓴 건 성인이 되고 나서, 특히 아버지의 눈이 안 좋아지고 나서는 처음인 듯하네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도 찾아뵙지 못하는 제 일상을 용서해 주세요. 문득 그 기억이 떠올랐어요. 아버지가 서울에 올라와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만나 함께 책 구경을 하고, 아버지가 잠깐 서울에 있는 직장에 다닐 때 찾아갔던 오래된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광화문 거리를 걸었던 그때 말이에요. 전 그때만 생각하면 따사로운 햇빛과 특별한 날이었다는 기분이 아주 강하게 들어요. 아버지와 단둘이, 타지에서 만나 데이트를 하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을 거예요. 최근에도 제가 사는 곳으로 오셨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일이 있어 온 거라 다음 일정에 치여 밥만 먹고 잠만 자다 보내서 아쉬웠지만요. 다음에 이곳에 올 때는 여유롭게 놀러 다녀요. 고향에 갈 때면 아버지와의 대화를 기대하곤 해요. 그러나 일 끝나고 지친 얼굴로 들어와 가만히 거실에 앉아 있는 아버지를 만나면 말을 걸고 싶은 마음을 진정해야 할 것만 같아요. 그래서 요 몇 년간 우린 대화가 부족했어요. 천변을 산책하며 깊게 고민하고 내 것이 아닌 이야기를 들었던 그 시간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온 가족이 밥을 먹고 엄마와 언니를 자연스럽게 떨어트리고 난 다음, 둘이서 긴밀하게 하는 우리만의 세상 공유가 기쁘게 돌아올 수 있을까요?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 편지를 씁니다. 아버지, 저는 아직 할 말이 쌓여 있는데 우리에겐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이 글이 읽히길 기대하면서도 저인 걸 모르길 바라요. 아주 고통스럽고 애처로운 비밀이 담겨 있을 예정이거든요. 아버지의 딸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하지만 당신의 머릿속을 생각하면 아주 당연한 대물림을 마주하는 건 나름의 고통일 거예요. 그러니 제가 누구인지 알아들려 하지 마세요. 저는 이걸 읽고 있는 아버지, 바로 당신의 딸입니다.


어제는 친구와 공부하기 위해 카페에 갔어요. 저는 집에서 혼자 공부하는 걸 선호하는데 요즘 생각이 터질 것처럼 머리를 괴롭혀 도저히 집에서는 공부를 할 수가 없었어요. 내리 자고, 딴짓을 하고, 술을 마시다 다시 자는 걸 반복하는 건 마음이 힘들어요. 중간고사는 최선을 다해 치르고 싶었기에 일이 끝나고 친구와 함께 카페에 가서 공부했어요. 카페는 제게 이중적인 공간이에요. 커피 냄새가 나고, 어떤 카페는 디저트 냄새까지 나요. 적절한 온도를 맞춰 공간을 조성한 카페는 아주 편안한 느낌을 줘요. 그래서 할 일에 집중할 수 있지요. 어떤 카페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가득 들어찬 사람들의 머리를 보고 있노라면 숨이 턱 막혀와 자리를 찾아 들어갈 수도 없어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늦게까지 하는 카페에는 그렇게 공부하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는걸요. 안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카운터로 다시 가 주문을 했어요. 다시 자리로 가 기다리다, 주문 번호가 들리자 다시 카운터로 가 음료를 받아왔어요. 이 반복적인 행동 중에서 숨을 쉬지 못하고, 미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반드시 지나야 하는 통로들에 사람들이 가득했기 때문이겠죠. 누군가 날 보지도 않는데 보고 있는 것만 같은 불안감. 그래서 내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그걸 사람들이 볼까 두려워하는 연속적인 불안감. 천장에 달려 있는 전구로 눈을 죽여가며 무사히 자리에 도착했어요. 공부를 하다 보면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나와요. 배우는 입장이니 간혹 그런 부분이 있어야 공부할 맛이 나기도 하는 거죠? 그러나 이렇게 중간고사가 다가오는 시기에 이해가 안 되는, 도무지 인과를 알 수 없는 공식은 아주 어지럽게 해요. 몇 분을 머리를 싸매다 답을 찾으면 그렇게 자극적인 성취가 없으나, 효율을 따져 결국 찾지 못하고 넘어갈 때면 이토록 한심한 내가 있을 수 없어요. 그러면 다시 숨을 쉬는 게 힘들어져요. 집에서라면 크게 몰아쉬다, 울다, 주저앉다, 숨을 참다, 골라진 숨에 안도하다, 불안하다, 어떻게든 폐에게 산소를 조달했을 텐데 저는 카페에, 그것도 사람이 아주 가득 찬, 특히 친구와 함께 카페에 있었잖아요. 티 나지 않게 숨을 몰아쉬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조용히 얕은 숨만 반복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담배를 피우러 나갔어요. 친구도 흡연자였기에 같이 나갔죠. 친구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고, 뒷문으로 나가는 동안까지도 사람들로 이어진 통로였기에 달리다시피 나가 아주 큰 숨을 두어 번 쉬었어요. 담배를 피우는 동안에도 연기를 내뱉는 척 큰 숨을 쉬었죠. 하지만 담배 연기잖아요. 몰아쉬는 유해 성분이 폐를 괴롭히는 동안 담배 불을 응시했어요. 빨갛고, 동적이었죠.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그 불이 어떻게 숨을 쉬고 움직이는지. 지금도 담배를 끊으셨나요? 우리 몰래 피우시나요? 다시 얘기로 돌아와서, 괴로운 감정은 심신을 지치게 해요. 마침 어제 오전에는 보강 수업이 있어 학교로 갔고, 하필 일을 가야 하는 시간과 겹쳐 일찍 수업을 빠져나와야 했기에 평소와는 다르게 뒷자리에 앉았고, 그래서 그리 많지 않았지만 학생들의 뒷모습을 봐야 했고, 그래서 내가 이 무리 사이에 앉아있다는, 그것도 밀폐된 공간에, 사실이 실감이 났어요. 그래서 울고만 싶었어요. 손톱을 뜯어 핏물이 고인 살을 보이고 싶었어요. 공기와 만나 아플 수밖에 없는 상처를 생각하게 됐어요. 모든 건 일어나지 않았어요. 역시나 몰래 불안해하고, 교수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눈앞의 글씨를 읽고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채 시간을 보내다 빠져나왔어요. 고작 30분 동안 노력한 건데, 왜 이리 진이 빠지는지. 하루에 여러 번을 진 빠지게 불안하고, 감추다 보니 빨리 잠들 것만 같았어요. 그러나 왠지 잘 수 없었고, 또 술을 마셨어요. 빨리 뛰는 심장과 대비되어 느슨해진 머리가 잠을 잘 자게 해 주거든요.


저는 이렇게 살아요. 아버지는 요즘 어떠세요? 한 달 후에나 찾아뵐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까지 편지 열심히 쓰고 있을게요. 항상 감사합니다.


2X.XX.XX.(토)

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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