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2)

by 김소희

저예요, 막내딸. 오늘은 시험을 보았어요. 첫 번째 시험에서는 9문제 중에서 2문제를 풀어 겨우 20점을 얻어냈어요. 개중 풀 수 있는 문제가 더 있었는데 몇십 분을 잡고 풀어도 도저히 풀리지 않았어요. 분명 공부할 때는 혼자 풀어냈고, 어렵지 않은 문제였는데 끝까지 풀지 못했어요. 시험이 끝나고 미련이 남아 교재를 확인했는데, 공식 하나를 잘못 기억하고 있었던 거였어요. n! 인지 (n-r)! 인지 한심하게 그걸 헷갈려 버린 거 있죠. 가장 기초 중의 기초라 이번 시험에 자신이 없었던 나머지 정의와 정리만 그렇게 달달 외웠는데 말이죠. 요즘 시험을 볼 때면 이런 실수가 잦아요. 당당하게 써 내려간 답에 분수꼴 미지수 하나가 빠졌다든지, 이런 거요. 다 안다고 착각하고선 시험에 들어서면 꼭 하나씩 빼먹는 게 참으로 한심해요. 저는 이런 사소한 실수 하나도 잡지 못하면서 왜 더 높은 학문을 바라볼까요? 왜 이 길을 계속 가고 싶다 미련을 두는 걸까요? 내심 마음속 한구석에는 견뎌내지 못할 걸 알면서도 그걸 숨겨 좋아한다 포장하는 거예요.


다음 시험공부를 하다 지쳐 강의실 천장을 바라보았어요. 눈앞에 에어컨이 보이는데 제일 겉면은 정삼각형으로 이루어진 평면이었어요. 서로 변을 맞댄 채 정육각형을 이루고, 그것들이 다시 큰 정삼각형을 이루는 꼴이요. 가만히 바라보면, 정육각형에서 정육면체가 보여요. 집중하다 보면 위를 향하는 게 아래를 향해 보이기도 하지요. 육각형은 이차원에서도 볼 수 있지만 육면체는 삼차원 이상에만 존재해요. 평면에서 삼차원을 보려 한다니 그걸 착시라고 하죠? 저는 왜 삼차원 공간에 살고 있으면서 4차원, 5차원, 더 높은 차원을 우러러볼까요. 그곳에서 저는 존재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저로서는 인식하지 못하겠지요. 내가 나로 살고 있는 이 차원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불가능을 탐한다. 불가능. 불가능을 탐하는 건 저와 아주 밀접해요. 더는 불가능을 탐하지 말아야지 하는 그런 애처로운 불가능을 탐내기도 해요. 자유란 마음에 품고 살수록 멀어지는 거예요. 불가능이란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머리 꼭대기에 올라 여유롭게 잠을 자더군요. 위협도 통하지 않고 되려 희망이란 가면을 쓴 채 제가 위태로울 때만 눈을 떠 희롱하더라고요. 불가능이란, 자유란, 윌 듀런트는 알 수 없는 것들에 초점을 맞춰선 안된다고 했어요. 내가 깨우칠 수 있는 지식부터 먼저 알아가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저곳의 개념도 알 수 있을 거야. 초점은 자주 희미해져요. 제가 수업 중에 숨을 쉬지 못할 때나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처럼요. 떠나간 고양이를 그리며 하늘을 볼 때, 아버지의 외로운 눈동자 하나를 볼 때, 가만히 소음을 차단하고 최대한의 소리를 모아 듣는 당신을 볼 때처럼요.


저는 오늘 스스로에게 실망했어요. 밤을 새워 벼락치기를 했지만 마음이 하나도 불안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면서도 시험이 시작되고 풀 수 있는 문제가 몇 없자 소란스러웠거든요. 실수를 해도 다음 공부를 위해 넘어가면 되는데 굳이 들춰 손끝이 찢어질라 꼬집느라 눈앞에 집중할 수 없었거든요. 가만히 있는 척을 하기가 버거워 연신 담배를 피우러 나갔거든요. 그냥 아주 한심하고 멍청이 같은 실수를 했거든요.


오늘은 아무것도 먹지 않을 거예요. 나에게 주는 벌이자 가장 편안한 안식처예요. 힘이 없어 무기력해지지만 거울 속의 내가 혐오스러운 건 이 벌을 통해 잠깐이나마 해소할 수 있거든요. 오늘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무것도 뜯지 않고, 아무것도 울지 않을 거예요.


스스로에게 아주 실망스러운 하루였어요.


2X.XX.XX.(월)

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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