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예요, 막내딸. 잘 지내고 계신가요? 몇 주 뒤면 만나게 될 텐데 그때 하고 싶은 말들이 벌써 넘쳐흐르네요. 아버지도 제게 해주고 싶은 말들이 있으신가요? 이를테면 옛날에 자주 하셨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라, 같은 말들이요. 이 말을 즐겨하셨을 땐 진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하는 저를, 그런 가치관을 지키고자 하는 저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빛으로 볼 때가 있었지요. 아버지께서도 끊임없이 성장하고 계시니 덜 성장한 저를 대하는 방법에 미숙했던 거겠죠? 말과는 다른 눈빛, 표면과는 다른 날카로운 함의가 저를 찔러대곤 했어요. 요즘 들어 아버지는 속내와 겉말이 다르지 않아 졌어요. 저를 진정으로 아끼는 마음에 둥글어진 세상 대하는 태도가 더욱 따뜻하게 느껴져요. 그런데 저는 왜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께 저를 드러내는 일이 힘들어질까요? 하고 싶은 말은 가득 쌓아놨는데 과연 손을 맞잡고 걸으며 잘 얘기할 수 있을까요?
아버지, 저는 내년 일 년 동안은 잘 쉬어 볼 예정이에요. 취업 준비도, 공부도, 살아남기도 잠시 미뤄둔 채 방황하며 살아 보려고요. 아버지는 동의하지 않을 계획이겠지만, 저는 그래야만 해요. 기억나세요? 제가 20대 초반이었을 무렵, 아버지는 병원에 잠깐 입원했어요. 여행을 간 어머니 대신 간호를 하며 병실에서 대화를 나눴는데, 아버지는 인생을 나무 기둥과 비교했어요. 기둥을 단단하게 잘 세우는 게 당신의 목적이라고. 그때 저는 안도했어요. 아, 나는 아버지의 딸이긴 하구나. 내가 사랑하는 아버지와 나는 참 닮아있구나. 그즈음 제 삶도 기둥을 어떻게 잘 세워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루어져 있었거든요. 단단하고, 건강하게 쌓아 올리고 싶었어요. 단단하고, 건강하게 살아보고 싶었어요. 몇 년 간 스스로를 실패자라 칭하며 살아오면서 제 기둥은 해지고 낡아버렸네요. 아버지의 기둥은 어떤가요. 옆에서 자라고 있는 작은 나무 두 그루가 아버지의 나무보다 커버렸을까요? 언니의 나무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제 나무는 자양분이 부족해 아버지의 나무를 갉아먹고 있을 거예요. 그래서 구멍이 파이고 쇠퇴해져 버렸나요? 기둥을 잘 세우는 것. 그걸 내년 한 해 동안 해보고 싶어요.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아라, 하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답을 하자면, 저는 지금 쉬고 싶어요. 너무나도 쉬고 싶어요.
2년 만에 다시 정신과를 찾았어요. 재발성 우울증, 식이장애라는 진단명을 달고 약을 복용하는 중이에요.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저는 아버지의 기질을 물려받았고, 아버지가 조심스레 내포하던 우리의 우울이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몸 전체에 퍼져 있다는 걸. 몸의 상처는 특정 기억이 없는 한 시간이 지나면 아물고, 잊히지요. 큰 흉터가 남아도 볼 때마다 가슴이 아릴 기억이 없는 한 그저 일부분이 되어 잊히겠지요. 마음의 상처는 왜 아물다가도 스스로에 의해 다시 생채기가 생기고, 깊은 구멍이 생기는 걸까요. 아무는 데 기다리는 이 고통의 시간은 언제쯤 익숙해지고, 언제쯤 죽음을 그리워하지 않게 될까요. 마음도 외벽과 같으면 좋으련만. 제 안에는 최소 두 명이 살고 있는데, 죽음이 오지 않는 이상 둘은 영원히 싸울 것만 같아요. 정신 차리고, 거짓말하지 말라며 다그치는 나와, 제발 그만하라고, 때리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는 나. 둘이 대화하는 걸 보게 되면 참 웃길 거예요. 공황이 왔다가, 멀쩡했다가, 다시 숨을 못 쉬고, 정색하고, 눈물을 흘리고, 결국 제 목을 조르거든요.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면 공황은 의지 차이가 맞는 걸까요. 불안해하는 제가 나올 때만 숨을 못 쉬고, 몸을 못 움직이겠고, 눈물이 흘러나와요. 다른 제가 나올 때면 아주 멀쩡하고, 차가운 머리가 되거든요. 이게 영원할 것만 같아서 우울해지다가도, 체념하다가도, 받아들이다가도, 아버지, 그거 아세요? 저는 이렇게는 그만 살고 싶어요. 그만하고 싶어요. 제 삶을, 혹은 이 짓을.
도전이 회피가 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친한 친구와 대화하면서요. 제가 하려는 도전들이 모두 제 삶을 회피하는 행위라면, 저는 잠시 쉬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더 이상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버지, 겁이 많은 자식이라 죄송해요. 하지만 전 살아야겠어요. 내년에는 쉴 수 있다는 생각이 내년을 살아보고 싶게 만들어요. 그래서 저는 쉬어보려고 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두려움을 비치는 일은 언제나 더 큰 두려움을 불러와요. 그래도 용기 내어 쉬어볼게요. 아버지, 응원해 주세요.
XX.XX.XX.(목)
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