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4)

by 김소희

저예요, 막내딸. 오랜만에 편지를 써요.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았는데 이제야 쓰네요.

오늘은 오랜만에 토를 했어요. 몇 년만일까요. 속이 안 좋아도 토를 하기는 죽기보다 싫었어요. 다시 돌아갈 것만 같았거든요. 오늘의 저는 싹수없는 제가 이기다가 불쌍한 제가 토를 하고 말았어요. 약이 필요했어요. 저는 언제쯤 200알을 모아 죽을 수 있을까요.

아버지, 11월 15일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병원을 못 갔어요. 그래서 일주일 동안 한 포 남은 약을 아끼고 아끼다 오늘 밤에야 먹으려고 했어요. 그래야 내일 병원에 가서 일주일치 약을 받아올 수 있었거든요. 아버지, 완만한 하향 곡선을 타다 오늘에서야 눈이 가득 쌓인 산에 아무도 모르는 크레바스처럼, 왜 오늘에서야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정말 신이 존재한다면 왜 내게 오늘을 견딜 힘을 주지 않을 걸까요. 왜 나를 빼앗은 걸까요.

아버지,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결심했어요. 아버지가 죽기 전까지 나는 살아있겠다고. 그래서 말인데, 제발 빨리 죽어주면 안 될까요. 더 이상 아버지가 친밀한 가족을 잃지 않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저는 너무 죽고 싶어요. 이대로 살고 싶지는 않아요. 고작 약에 의존해야만 그래프의 고정 상수가 높아지는 이런 제멋대로인 삶은 더 이상 원하지 않아요. 원하지 않은지 꽤 됐지요. 아버지는 제가 죽는 걸 견딜 수 있으신가요. 그렇지 않을 것만 같아 당장 죽고 싶지 않아요. 오늘 펑펑 울면서 겨우 정신을 차린 저는 악랄하고 이기적인 제가 주도권을 잡은 뒤였어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미친년, 죽지도 못할 거면서 좆같은 짓만 하네. 죽고 싶으면 죽어 시발년아 어떻게 죽을래. 너는 무서워서 칼로 긋지도 못하잖아 목매달면 치욕스러울 거잖아. 그냥 니 목을 조르는 걸로 쾌감을 느끼는 거잖아. 어떻게 죽고 싶은데. 제발 좀 죽어. 그래서 약을 모으고 싶어 졌어요. 그래서 다시 대화했어요. 나는 약을 모으고 싶은데, 그러면 상담사와 의사에게 보고를 해야 해. 내가 걱정하던 일이 일어났다고, 멀쩡한 내일의 내가 고백해야 해. 그럼 하든가. 해서 또 한심한 걱정이나 받든가. 그게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이면, 너는 죽지 못해. 살아야 해. 이 지랄을 또 버텨야 해. 그건 내가 하는 일이잖아. 오늘을 버티는 거. 해야 하는 일을 수행하면서 하루를 살아가는 것. 네가 하는 일이라곤 울고, 떼쓰고, 숨을 막고, 어지러워하고, 처먹고, 우울해하고, 오늘 하나 더 추가됐네. 열심히 참아내던 토악질을 기어이 변기에 버려내는 것. 네가 하는 일이라곤 스스로에게 해가 되는 일만 하면서 왜 내가 하는 말을 다 거역해? 왜 나를 이기적이라고 해? 이기적인 건 너야.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저는 왜 살아야 할까요. 아버지,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이 남았어요. 할머니 장례식에서 생각한 말들과, 그전에 1년 간 쉬고 싶다며 아버지께 걸려온 전화에 조심스럽게 전한 일이요. 내가 담배를 태운다고 고백한 일과, 다른 몇몇 일들이요.

이토록 정신 사나운 편지를 보내 죄송해요. 지금 누가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버지, 아버지는 살고 싶으신가요. 제발 죽어주시면 안 될까요. 저는 너무나도, 죽도록, 원해요. 죽기를.

아버지, 할 말이 아주 많이 남았어요. 내일이면 전할 수 있을까요. 내일을 살아낼 수 있을까요. 다시 지옥 같은 밤이 시작되진 않을까요. 아까 토하고 나서 누구인지 모를 제가 공황장애 약을 먹었어요. 아주 조그만 하얀색 알약을 하나 먹었어요. 마음 같아선 세알이고 네 알이고 다 먹어치우고 싶었어요. 하지만 참을게요. 그 정도 알약으로는 내일 병원에 가지 못할 정도로 조금 깊은 잠에 빠지다 또 허우적대며 일어나 한심한 하루를 살아내겠죠. 죽을 만큼의 약을 모으다 그때 먹어치워 버릴게요. 오늘은 그저 저를 3인칭으로 바라보는 것 같은 기분으로 글을 쓰다, 자기 전 약 한 포를, 소중히 아껴뒀던 약들을 먹고 잠에 들게요. 그러면 내일은 약을 모으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죠.

아버지, 할 말이 더 남았는데, 약기운이 도는지 울렁거리고 저인지 모를 기분이에요. 이만 줄일게요.

저는 간절히 원해요 죽기를.


XX.XX.XX.(월)

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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