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6)

by 김소희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함께 신정도 보내고, 49제도 지냈는데 어떠셨나요. 이제 저희 가족 중에 신년을 설레하는 사람은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아버지는 올해 어떻게 보내실 예정인가요?


20살 즈음 해외로 가는 비행기를 탔을 때 이륙하는 비행기 안에서 가슴이 뛰었어요. 탑승 게이트 번호가 18, 19, 20… 차례대로 지나가는 걸 보면서 저의 소중한 20살도 지나가는 것만 같았거든요. 나이가 무엇인지, 낭랑 청춘에 서른 즈음을 들으며 울어버린 저는 이제 소중한 나이가 사라진 사람이 되었어요. 슬픈 일은 아니겠죠. 앞으로를 기대하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니까요. 앞으로를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의미일 테니까요.

서울에서 제주도로 가는 길, 이번에는 착륙하는 비행기 안에서 가슴이 뛰었어요. 반짝이는 오징어 배들, 건물과 도로에서 나오는 불빛들. 그 빛들이 제게 무엇인가 던져주었어요. 제 인생에도 여러 빛들이 있었을까요. 분명히 있어요. 지금도 저는 당당히 빛나는 시기라 말할래요. 이 빛들이 이어져 있지만은 않지만, 언젠가 높은 곳에서 바라볼 때 아름답게 어우러져 빛나고 있겠죠. 그렇게 믿고만 싶은 풍경이었어요. 아버지의 빛나는 시기는 어느 때였나요, 얼마나 많았나요. 제가 태어나고 아버지를 닮아가는 순간이 빛나던가요. 아버지는 제게 한 지점으로 빛나진 않아요. 아버지를 닮았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이 화려하게 빛나긴 하지만요. 아버지의 모습 그 자체로는 멈춰있는 빛이라기엔 멀고도 길어서, 아주 멀어서 제가 그 빛을 향해 가는 기분이에요. 아버지 뒤에는 저라는 아름다운 빛이 따라가고 있음을 알고 계실까요. 제게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에요. 하나로 빛나고, 제 앞을 비춰주는 감사한 사람이에요.


요즘 저는 아주 건강해요.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이 사람과 함께 일상을 보내면서 내일이 기대되기 시작했어요. 약도 한 달 뒤면 줄이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은 위태롭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줄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요. 공황도 이겨내는 나름의 방법을 찾아냈어요. 명상하는 어떤 승려가 다큐멘터리에 나와 그랬지요. ‘공황을 이겨내려 하지 말고 친해지세요.’ 제게 불안은 친해질 수 없는 존재였어요. 지금은 가볍게 눌러보려고 해요. 이 아이를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가벼운 공황으로 시작해 호흡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과거와는 달리 장난스러운 말투로 사라지라는 명령으로 이겨낼 수 있게 됐어요. 큰 발전이죠? 이런 사실을 아버지에게 자랑할 수 없어 아쉽네요.


다음 주 설에 찾아뵐게요. 그때까지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XX.XX.XX.(월)

막내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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