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8)

by 김소희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아버지. 지난 며칠 동안 아버지와 함께 있었죠. 우리는 그전에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저의 미래와 계획에 대해서. 제가 멋대로 결정해 버린 선택에 대해서. 아버지는 화를 많이 냈지요. 언성이 높아지진 않았지만 저는 아버지가 화가 나고, 속상한 걸 알았어요. 그래서 저도 슬펐어요. 나의 선택이 아버지를 힘들게 하는구나. 내가 열심히 살아와도 아버지를 만족시킬 수 없는 거구나. 나는 아버지의 길을 가야만 인정받을 수 있구나. 약 한 시간 뒤에 아버지는 장문의 문자를 보내며 제게 사과했어요. 미안하다 딸아, 로 시작된 문자는 아버지가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 빼곡히 적혀있었어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삶, 거기서 이어진 아버지의 가치관, 그렇기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 일들. 마지막에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셨어요. ‘아빠가 원하는 길이 아닌, 남에게 보이는 삶이 아닌, 네가 원하는 길을 걷도록 해. 지금 당장이 아니라 30년 후를 내다보고 살기를 바라. 아빠가 항상 응원할게.’


제가 원하는 길을 걸을게요. 30년 후를 내다보고 살지는 못하겠어요. 아빠의 응원을 등에 업고 달려볼게요. 위로받은 마음과 비뚤어진 마음이 공존하는 답장을 보내는 대신 사랑한다는 말을 보냈어요. 저는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아픈 사람이에요. 아버지가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신체가 아픈 사람이라면, 저는 정신이 아픈 사람이에요. 그래서 30년 후는 기약하지 못하겠어요. 아버지보다 일찍 죽지 않겠다는 마음 가짐으로 살고 있는 제게, 30년은 너무 길지 않나요. 아버지도 그렇게 오래도록 살아 계실 건가요.


저의 삶을 살라는 아버지께서, 욕심을 내셨어요. 내가 너의 삶을 다 알 수는 없으니 나는 그저 내가 살아온 벽까지만의 세상을 보여주겠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선택하는 건 너의 몫이다. 아버지는 이번에 유독 말이 많으셨죠. 어떤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지 저는 백번 이해했어요. 저의 삶이 바라던 것이 아니라는 것도 깊숙이 이해했어요. 그러나 손댈 수 없는, 이미 커버린 자식에게 비치는 아쉬움도 잘 전해졌어요. 아버지와 식탁에 마주 앉아 술 없이는 못할 얘기를 술 없이도 했지요. 저는 그저 들었어요. 듣고 동조했어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떠오르지도 않았어요. 아버지가 듣고 싶을 말들은 떠올랐어요. 그래서 동조만 했어요. 아버지와 긴 대화를 끝낸 뒤 저는 산책을 나가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어요. 그래서 늦은 밤 나갔다 오겠다며 아파트 뒤에 있는 놀이터에 갔어요. 물론 담배도 함께요.


그네에 앉아 누웠어요. 꺾어진 허리로 상체를 버티며 그네를 흔들었어요. 세상이 거꾸로 보였어요. 물구나무를 서지 않아도 거꾸로 볼 수 있는 세상이었어요. 집 뒤에 있는 요양병원의 간판이 보였어요. 거꾸로 누웠음에도 글씨는 바로 읽혔어요. ㅇㅇ요양병원. 세상을 거꾸로 봐도 글씨는 똑바로 인식되는데 거꾸로 좀 살면 안 될까요? 두 발 딛고 사는 게 싫으면 잠깐 고꾸라져 허공을 가르고, 곤두박질치며 살면 안 될까요? 어떤 나무도 가만히 있지는 않대요. 저는 많이 아팠고 아플 거예요. 그 시간 동안 멈춰 있지는 않을 거예요. 자라고 자라서 저만의 기둥을 세운 멋진 나무가 될 거예요. 지금까지 내린 뿌리처럼, 뻗어낸 가지처럼. 론다 여행에서 인상 깊게 봤던 나무처럼.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나뭇가지에 달린 이파리들을 피워내고 마음속 환상을 품고 있을래요.

저는 거꾸로 좀 살아볼게요. 하고 싶은 말은 이렇지만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는 말은 많지만 아버지가 궁금하신 곳은 어디까지일까요. 알고 싶은 것들은 무엇일까요. 제가 정진하고 고뇌할 때마다, 울며 밤을 지새울 때마다, 모든 순간마다 보고를 하며 저의 성장 과정을 모두 지켜보셔야 했을까요. 어엿하게 자라 저만의 길을 가고 있는 현재의 어느 한 점에서 저를 그대로 바라봐 주시는 건 제 욕심일까요.

저는 잘 자라고 있어요. 제 자신으로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저는 잘 자라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아버지.

이만 줄입니다.


XX.XX.XX

막내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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