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9)

by 김소희

아버지, 오늘은 상담을 받았어요.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며, 아버지 슬하의 삶을 살며 잘못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잘 살아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요. 상담 선생님은 저를 항상 멋있다고 해주세요. 쉽지 않은 일에 도전하는 것,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한 것. 모든 해보는 저를 매번 멋있다고 칭찬해 주세요. 그럴 때면 생각해요. 아, 나의 삶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모두 아버지처럼 생각하진 않는구나. 저는 아버지께 있어서 실패한 삶인가요? 충분히 노력하고 열심히 살아왔다 자신했는데 아버지께는 실패한 삶인가요? 친구들은 모두 제게 너무 열심히 산다고 해요. 뭐든 지나치게 노력한다고. 아버지는 제게 도전을 회피한다고 해요. 죽을 만큼 노력도 해보기 전에 포기해 버린다고. 저는 죽을 만큼 노력하고 싶지 않아요. 죽기 직전까지 노력하기는 해요. 죽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저 자신을 죽일 만큼 열심히 살고 싶지는 않아요. 아버지도 이 생각을 이해하실 수 있으신가요? 죽고 싶기에 죽을 만큼 노력하지 않는 것. 살고 싶기에 죽을 만큼 노력하지 않는 것. 누군가는 죽을 만큼 노력했기 때문에 성공한 거겠죠. 성공은 무엇일까요. 몇 년 전 상담 선생님께서 물어보셨어요. 소희 씨가 생각하는 성공은 무엇이고, 왜 성공하고 싶죠? 저는 곰곰이 생각하다 답했어요. 아버지처럼, 언니처럼 사는 것이요. 아버지가 기대하는 삶이요.


아버지는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자라 자수성가를 이뤄 가족을 책임감 있게 지켜내셨죠. 그렇게 살 수 있는 삶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언니처럼 한국의 전형적인 루트를 타고, 그것도 아주 잘 타며 결국 아버지를 만족시키는 삶도 성공한 삶 같았어요. 제 기준은 언제나 아버지였던 거예요. 저만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여유로운 삶. 성공의 종착점이 행복이라면, 저의 행복인 여유가 저의 기준이라고 생각해요. 마음에 안 드시나요? 상담 선생님들은 제가 여유로운 삶을 지켜낼 때마다 잘하고 있다고 하세요. 성공을 위해 달려가다 다그치는 나를 만날 때면 조금 더 자신을 보듬어달라고 조언해 주세요. 제 주변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나를 보듬고, 여유 있는 삶을 응원하는데 왜 저는 아직도 아버지의 기준 아래서 살게 되는 걸까요. 이번에 대학원 진학 대신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는 건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었어요. 속상하면서도 이상하게 이긴 기분이었어요. 아버지가 원하는 삶을 살아내지 않아도 되는구나. 나의 삶을 살아도 되는구나.


아버지, [고통 없는 사회]를 읽으며 아버지가 제게 했던 ‘도전을 회피하는 게 아쉽다.’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고 했죠. 저는 고통이 오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요. 안 그러면 죽어버릴 테니까. 죽지 못한 나를 미워하며 죽은 듯이 살게 되니까. 그래서 고통이 밀려오면 해소할 방법을 찾고 잠시 쉬었다 가는 거예요. 그게 도전을 회피하는 것이라면 저는 그렇게 살겠어요. 책 읽고 뜨개질하는 삶이 죄라면 저는 고통 대신 기꺼이 죄악을 받아들이고 면죄를 삼간 채 살겠어요. 고통을 해소하는 삶을 굳이 살아야겠냐고 묻는다면, 고통을 머금었던 눈빛을 보내겠어요. 사회는 고통으로 가득하고 삶은 해소의 자유를 만끽하길 원해요. 자유란 무엇일까요. 내면의 소리가 말하는 자유란, 가득 차오르는 심장 소리예요.


저는 이렇게 살겠어요. 아버지도 제게서 떠나 아버지의 삶을 살길 바랄게요.

이만 줄입니다.


XX.XX.XX

막내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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