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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깨작 Dec 12. 2022

콩 심은 데, 진짜 콩 났다

이 속담은 진짜입니다. 조상님들 만세!

냄새가 찐한 청국장을 좋아할 듯 생긴 신랑은 서양 음식을 즐긴다. 피자, 파스타 애호가다. 토마토소스보다는 오일 파스타가 더 낫다며 알리오 올리오, 봉골레 파스타 같은 것들을 더 좋아하신다.


그런데 신랑의 외모가 논에서 막걸리와 부침개를 맨 손으로 뜯어먹을 듯하게 생겼으니 보고 있노라면 헛웃음이 나온다(절대 외모 폄하가 아니다. 정말 그리 생겼다. 당연히 맨손으로 뜯어먹는 부침개에 막걸리 한잔도 얼쑤!)


신랑은 다행히 한식도 좋아하기 때문에 동양과 서양의 조화를 두루 즐길 줄 안다. 단, 내장 위주, 비린 음식들을 좋아한다. 내장탕, 해장국, 순댓국, 홍어, 곰탕류 등. 비계를 좋아해서 삼겹살을 즐긴다.


치킨을 먹을 때는 닭가슴살 빼고 다.

글쎄, 처음 같이 치킨을 먹었을 때 신랑의 입에 들어가는 치킨 조각들은 나오는 게 없었다. 뭐지? 뼈까지 씹어 먹고 있던 것이다(뭐 하는 거냐며 정말 깜짝 놀랐다). 지금은 다행히 참 교육(?) 후 뼈는 뱉고 있다.


꾸덕한 치즈에 그윽한 와인 한 잔을 즐길 듯 한 나는 편식 파다(어릴 때부터 편식이 엄청 심했다. 배추김치를 22살에 처음 먹었다. 기이하게도 먹는 음식은 한정적인데 계속 키가 크다 보니 부모님도 그냥 편식을 받아들이시고 있는 그대로 키워 주셨다).


청국장으로 입덧을 달랬고, 치즈가 복통을 일으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피자나 파스타 같은 음식을 즐길 형편도 못 된다.


단, 편식 파이다 보니 먹을 수 있는 한식도 매우 제한적이라는 게 함정이다. 순대는 간만 먹고 내장 쪽은 쳐다보지도 못한다. 돼지 내장 모양 정말 좀 그렇다. 순대를 먹을 때마다 내장 좋아하는 가족들이 있으니 안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순대 내장 드시는 분들 오해 마세요.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치킨은 무조건 닭가슴 부위만 먹는다. 닭가슴살을 먹는 이유는 간단하다. 닭의 모양을 알 수 없는 부위이기 때문이다. 닭발, 날개, 닭다리를 어떻게 먹지? 닭이 상상되지 않는가?


물컹한 식감을 싫어하니, 목살이나 앞, 뒷다릿살을 선호하는 편이다. 탕류를 먹게 된 것도 서른 중반 즈음이었다.


나는 닭가슴살. 신랑은 닭가슴살 빼고 다 즐기니 천생연분인 줄 알았나? 서로 정반대여서 끌렸나? 둘은 어렴풋이 연애를 한 것도 같고, 어쩌다 보니 결혼까지 했다.


    그리고 콩 심은 데 진짜 작은 콩 2개가 났다!


“우리는 내장탕 먹고 싶은데, 으악! 닭가슴살은 진짜 못 먹겠어, 피자 먹고 싶은데 엄마가 못 먹지, 이런 날은 순댓국인데..”


세 개의 콩들이 모여 닭 목을 쪽쪽 빨고, 돼지는 역시 '허파가 맛있네, 귀가 맛있네'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난감하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세 남자에게 오붓한 시간을 허락하기 시작했고, 나 홀로 시간을 보낸다.


(솔직히 이게 더 좋은데, 대놓고 말하기는 좀 그러니까. 약간 쓸쓸한 표정과 45도 정도 고개를 떨군 듯한 제스처로 보내주는 게 포인트다).


미안한 듯 겸연쩍어하며 집을 나선 세 남자는 목욕탕도, 내장탕도, 해장국도 함께 하며 매우 즐거운 듯 보였다. 물론 나도 홀로 된 집에서 즐겁다!


뼈해장국을 먹으러 갔다(서귀포에서는 ‘뼈다귀탕’이라 부른다. 들깨가루는 들어가지 않는다. 익숙해지면 오히려 담백하고 맛있게도 느껴진다).


아이가, 내가 좋아하는 살코기 부위(돼지 등뼈에 붙은 살코기로, 닭가슴살과 유사한 식감인 바로 그 부위)는 빼고 뼈다귀만 붙잡고 ‘쪽쪽’ 거리는 거다. 누가 보면 ‘왜 애한테는 고기를 안주나’ 오해할까 싶어 한 마디 했다.


“대체 아무것도 없는 뼈를 왜 그렇게 빨고 있는 거야? 여기 새 거 먹어. 살 많잖아. 그냥 젓가락으로 살만 빼서 편히 먹어”


그런데도 세 남자는 말없이 쪽쪽 소리를 내며 앙상한 뼈들만 붙잡고 있었다. 급기야는 내가 좋아하는 순 살코기는 그릇에 다 빼 버리고, 뼈다귀만 먹기 시작했다.


답답해서 “뼈는 그만 버리라고, 뭘 먹고 있는 거야? 여기 살 많은 고기를 먹으라니까”했더니,


“아이 , 이 뼈 안에 맛있는 게 있단 말이야, 엄마가 먹을 줄 모르는 거야. 이 퍽퍽한 살은 맛이 없어!”

(위) 세 콩들이 즐기는 부위  (아래) 나 혼자 즐기는 부위

그랬다. 세 남자는 맛있는 걸 먹고 있었던 거다. 진짜 맛있는 걸 먹을 줄 모르는 아내, 엄마에게 설명할 길이 없으니, 세 남자는 그냥 묵묵히 자기에게 주어진 돼지 뼈와 씨름하는 중이었던 거다.


콩 심은 데 진짜 콩 났으니 뭐 어쩔 건가, 속담이 진짜구나 깨달아 갈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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