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체험의 여로
다스리는 자를 다스리는 자
훈장의 훈장
스무 살이 넘은 지 참으로 오래되었지만
두 손으로 곱게 술잔을 받으니 이제 어른 대접도 받는 느낌이다
엄마를 닮아 눈물 많던 꼬마를
어른으로 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
머쓱해하는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두툼한 손마디로 술잔을 든 아저씨들과
어른 대 어른으로서 마주한다
그들에게
때로는 부당한 권력으로
때로는 미래를 강요하던 자로
때로는 뒤통수를 되치고 싶은 복수의 대상으로
그들이 어른이 된 후에도 늘 어른같은 뒷모습이었던
선생 노릇을 하게 된 걸 축하받는다
삶의 5부 능선을 넘었다며
훈장질을 한다며
조소를 섞으면서도
안주하지 말고 남자답게 배포를 펼치라는 아저씨들의 말
다스리는 자를 다스리는 자가 되어라
받는 술잔 따라 시원히 들이켜도 될 말이다만
넘기기가 영 쓰다
입 안에서 헹구어 꺾는다
금빛 목걸이를 흔들며
그보다 빛나는 지폐 4장을 건네는 홍훈이 아저씨
숫자를 싫어하는 나는 손으로 헹구어 내려 바쁘지만
내가 어른이 아닐 때부터 보았던 아버지의 굳게 다문 입과
어느덧 익숙해진 패배를 시인하는 아버지의 가련한 눈빛을 살피고
불국사 극락전의 복을 가져온다는 돼지가 된 마냥
가만히 받는다
그러면서 생각하기를
다스리는 자를 다스리는 자들보다 큰사람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