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준 Apr 22. 2022

비밀의 화원

추체험의 여로

“제주도에서 가장 제주도의 모습을 갖춘 오름마저도 금방 사라질 것입니다.”


중산간 사이사이 오르내리며

풀벌레가 들꽃을 헤치던 사진 속 화원에

컨테이너 박스와 송전탑이 들어섰고 전신주들이 늘어섰다

풀벌레와 들꽃의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던

건설과 개발이라는 패를 내세우는 말뚝이 사진 한가운데 깊숙이 박혔다


중산간 화원을 담은 그의 사진에는

햇살만 가득하지 않았고 구름도 있었다

안개가 끼기도 했고 그늘도 있었다

반듯한 꽃가지도 있었지만 억새는 흔들거렸고 긴 머리 젖혀 넘긴 동백나무도 있었다

들꽃은 찍히던 말던 춤을 추었고 그를 점잖게 타이르는 밭담도 있었다

함께 익어가는 시간에도 누구는 누렇고 누구는 아직 푸르름을 자랑하였다

눈 내리는 산간은 흑백으로 담아내며

흑과 백 모두 삶에서 생동하는 색임을 여실히 증명하였다


사진이라는 것이 고정적인 것이 아님을

날씨와 풍경은 뜨개질하듯 자아낼 수 없음을

우리 삶에도 햇살과 구름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반듯하지만 흔들거릴 수 있음과 누렇고도 푸를 수 있음을

흑과 백 모두 살아간다는 사실을

네모난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사진 속에서도 제주도는 역동하고 있었고 환상의 섬 이어도를 향한 갈망을 품고 있었다


지금 그 화원에는

세로로 관짝째 탑이 들어서고,

가로로 검은 줄이 삭은 거미줄처럼 늘어져 있었다

사진을 이리저리 돌려봐도 거무스름한 탑과 줄이 좌표가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사진에 화원을 담을 수 없었고

화원을 잃어버렸고

이어도를 찾아 떠났다

화원은 비밀이 되어버렸고

x축과 y축으로 가늠하는 사진만이 남았다




 찍던 그리던 누군가 담아낸 네모난 풍경을 본다는 것. 좌표를 걷어내고, 그 속에서 내가 거닐었을 돌길의 이음새와 양 옆에서 너울거리는 나뭇가지들을 생각한다. 손가락 사이 스쳐 나오는 들풀들의 사근거림과 두 눈 감고 맞이했을 그늘의 바람결을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새들의 속삭임에 맞추어 흥얼거렸을 노래를 생각한다. 무한히 이어지는 야트막한 언덕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하늘을, 언덕 너머 풍경에 맞닿으며 작아졌을 나의 크기를 생각한다. 자연이 안식하는 무덤가를 거니는 이방인의 겸손한 마음으로 걸었을 걸음 하나하나를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들로 이 네모난 풍경을 보는 작가의 눈이 되어 본다. 작가가 풍경을 담으며 품었을 마음이 되어 본다. 그리고 이 촘촘한 도시 속에도 그러한 마음이 필요함을, 풍경을 풍경으로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함을, 겸손함을 불러일으키는 풍경이 필요함을 느낀다.



2021. 2. 6.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서

작가의 이전글 안녕의 시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