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하이드파크

Hyde Park는 어디로

by 중구난방

Hyde Park는 어디로

박 경화

햇빛 좋은 날, 강아지와 산책을 한 후 더러워진 강아지 옷을 대야에 담갔다. 저녁준비를 하려고 냄비에 팥과 물을 넣은 후 인덕션에 올려놓았다. 구석에 묵혀두었던 플레이어에 CD를 넣어 음악을 틀었다.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베란다에 널었다. 마저 남은 세탁물을 꺼내 뒷 베란다에서 거실로 들어오는데 팝송 ‘Hotel California’가 흘러나왔다. 햇빛 사위어가는 저녁, 거실 창가 화분에는 시클라멘이 붉게 빛났고 실내에는 팥 삶는 냄새가 가득했다. 적당한 실내온도의 2월 첫날, 호젓함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직장 생활하며 세 아이를 키우느라 복작거렸을 때, 꿈꾸었던 미래의 어느 순간이 지금인가 싶었다. 버거웠던 순간들도 시간의 필터를 거치면 포토샵 처리된 사진처럼 뽀얗게 되살아났다. 담가둔 빨래도 해야 하고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찌개도 끓여야 하지만 식탁 의자에 앉았다. 벽에 걸린 달력의 2월이라는 큰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Hotel California’는 오래전 2월을 떠올리게 했다.

신촌의 여대 법정계열에 합격했다. 남녀공학 영문과에 합격한 은미와 함께 거의 매일 어울려 다녔다. 자주 간 곳은 입학 예정인 학교 앞의 ’Hyde Park’ 다방이었다. 붉은 조명의 넓은 공간 안에 칸막이 사이로 많은 테이블들이 있었다. 실내에서는 팝송들이 흘러나왔다. 뮤직박스에서 DJ가 빼곡히 꽂아놓은 음반들 중에서 곡을 선정해 틀어주었다. 나와 은미는 커피 한잔씩을 시키고 몇 시간을 이야기해도 지루하지 않았다. 쪽지에 Hotel California를 신청하고 기다렸다. 펼쳐질 미래가 기대도 되고 묵직한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없는 고민도 만들어하며 모호한 불안함에 빠져들었다. 팝송의 가사는 제대로 몰랐지만 신비한 음악의 분위기는 그런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애틋한 음성은 먼 세계에서 외치고 속삭이며 마음을 사로잡았다. 처음에는 Hyde Park가 영국의 공원인지도 몰랐다. 런던과 캘리포니아도 상상조차 어려운 곳이었다.

“혜원아, 내 외사촌.. 불러낼까?”

은미는 동갑인 외사촌이 근처 대학의 경영학과에 합격했는데 자기 집에 놀러 왔다고 했다. 연락하면 나올 거라며 공중전화를 하러 나갔다. 나는 고3 때까지 이성과 한 번도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다. 3월에 첫 미팅을 할 줄 알았는데 남자와의 갑작스러운 대면이 당혹스러웠다.

키가 자그마한 남학생이 들어왔다. 체크 재킷에 하늘색 티셔츠를 입었고 머리는 뻗쳐있었다. 짧은 머리를 기르고 있는 중인 데다 은미 네 서 자다 나와서 더 그래 보였다. 아직 대학생이라고 보기에는 어설펐는데 나 역시 그랬다. 3학년인 언니를 따라서 학교 앞 미용실에서 짧게 커트를 하고 언니 코트와 청바지를 입었지만 어정쩡했다.

“우리 이모 아들, 형규야.”

은미는 먼저 가겠다고 나가버렸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될지 부담스러웠는데 무슨 말인지 어떻게 진행이 되었다. 아주 어색할 것 같았지만 그런대로 대화가 이어졌다. 형규는 고등학교 때 ‘장학퀴즈’ TV프로그램에 나가서 장학생이 되었단다. 그러고 보니 똑똑해 보였다.

며칠 후, 은미가 미팅을 주선했다며 Hyde Park로 오라고 했다. 은미의 교회 친구들과 형규의 고등학교 동창들이 멤버였다. 미팅 전날에는 잠이 안 왔다. 공식적인 첫 미팅인데 누가 나올지 궁금했다. 꿈에서 다들 파트너가 있는데 나만 없어서 헤매기도 했다.

여학생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 위에 형규가 7개의 접은 쪽지를 올려놓았다. 각자 번호를 확인하고 같은 번호의 남학생들을 찾아서 흩어졌다. 내 번호는 3번이었다. 파트너가 안 나타나서 한참을 기다리며 꿈이 현실이 되나 불안하기도 했다. 잠시 후 내 자리 앞에 형규가 와서 앉았다. 형규는 나와 파트너가 되고 싶어서 3번을 갖고 내게도 같은 번호를 주었다고 했다. 첫 미팅 상대에 대한 환상은 무너졌지만 형규가 나와 다시 만나려고 머리를 썼다는 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인가를 한참 나누었다. 헤르만 헷세의 ‘수레바퀴 밑에서’가 어떻고.. 그런 내용이었다.

여고 때 외부 서클 활동도 안 했고 누가 따라온 적도 없었다. 밤늦게 자율학습하고 돌아오면서 집 근처 골목길을 지날 때 ‘한 번쯤’ 노래를 작게 불러보곤 했다. ‘언젠가 말을 걸겠지 언제쯤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겠지’ 가사를 생각하며 남녀의 만남은 설렐 거라고 생각했다.

형규와의 대화는 좀 학구적이고 친숙했다. 몇 시간을 이야기했지만 또 할 말이 남아있었다. 애프터를 받았다. 며칠 후에 그 장소에서 만나자는 시간을 잘 기억했다가 나가야 했다. 이삼일에 한번씩 Hyde Park에서 만나 커피 한잔씩 시켜놓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형규의 뻗친 머리가 가라앉고 내 커트머리도 자리를 잡아가며 대학생활로 접어들었다. 만남에서 작은 변화는 형규가 앞에 앉아 있다가 내 옆자리로 옮겨왔다는 거였다. 시간이 좀 지나자 팔을 뻗어 내가 앉은 의자 위에 올려놓았다. 커피만 마시고 헤어졌는데 하루는 형규가 장학금을 탔다며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군만두를 사주었다. 남자와 함께 먹는다는 게 어색해서 잘 먹지를 못했다. 한 번은 영화를 봤다.

대학생활은 고등학교 때 억눌렀던 욕구가 분출되어 열정적이었다. 과대표가 ‘오늘.. 미팅할 사람..’하면 즉시 인원이 결성되었는데 그 대열에 참여해서 미팅을 했다.

3월 말쯤 접어들어서 형규와 만나는 간격이 좀 길어졌다. 한 번은 수업이 끝나고 과 친구들과 Hyde Park 다방 앞의 빅토리아 다방을 갔다. 그곳은 규모가 작고 노르스름한 조명이 비추는 곳이었다. 친구들과 자리를 잡았는데 바로 건너편 자리에 앉아있는 남녀가 보였다. 형규는 어떤 여자애의 옆자리에 앉아있었다. 순간 눈이 마주쳤고 형규는 당황해하며 내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초등학교 동창인데.. 곧 갈 거야”

“괜찮아, 계속 얘기해”

형규는 그 여자애가 갈 거니까 나와 만나자고 했다. 다음에 보자며 약속날짜를 잡았다.

형규와 두 달간 열 번 정도 만나며 구속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바라왔던 이상형을 더 찾아봐야겠다는 바람도 있었다. 그런 중에 형규가 다른 여자와 다정한 자세로 있는 걸 봤다. 마주친 순간은 담담했지만 곧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그만 만나자고 하고 싶었지만 정식으로 헤어지고 싶었다.

다음에 Hyde Park에서 마주 앉아 여느 때처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만 만나자고 했다. 형규는 갑작스러운 결정인지 오래 생각했던 건지 물었다. 나는 갑자기 든 생각은 아니라고 했다.

밖으로 나왔다. 각자 걸어갈 거라고 짐작했는데 예전처럼 같이 걸었다. 정류장까지 함께 갔고 내가 먼저 버스를 탔다.

4월이 시작되었다. 교정에는 하얀 목련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형규와 헤어지고 한동안은 홀가분했다. 친구들과 잔디밭에서 깔깔거렸고 두꺼운 책들을 팔에 감싸 안고 학교 앞을 쏘다녔다. 미팅을 해봐도 말이 통하고 편안한 상대를 만나기는 어려웠다. 노란 개나리가 피고 연한 녹색이 짙어가며 교정은 화려해져 갔다. 5월 축제가 다가왔다. 파트너를 초대하는 마지막 날이 돼 가자 딱히 부를 만한 사람도 없어 마음이 눅눅해졌다.

부지런히 남은 빨래를 널고 저녁준비를 마저 했다. 잠시 커피라도 마시고 싶었다. 하이드 파크에서 처음 마신 커피는 120원이었다. 커피 값이 오르는 동안 많은 것이 변해갔다.

형규와 헤어진 후, 몇 년 지나 한번 마주친 적이 있다. 은미 결혼식이었다. 나는 교사가 된 상태였다. 결혼식장으로 향하면서 형규가 은미 사촌이니까 당연히 올 거라고 생각하자 신경이 쓰였다. 결혼식장에서 형규와 마주쳤는데 서로 아무 말 안 했다. 옛 모습만 기억에 남아있었는데 직장인이 된 형규는 아저씨 느낌이 났다. 근처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나 역시 파마머리에 만만치 않게 나이 들어 보였다.

은미가 결혼한 다음 해에 나도 결혼을 했다. 남편과는 대학 연합동아리에서 만났다. MT를 가서 자연스럽게 어울렸는데 같은 초등학교를 다닌 사이여서 친구처럼 지냈다. 연인이 되어 만나고 헤어지다 다시 만나 결혼을 했다. 남편은 회사를 다니다 은행으로 이직했다. 남편이 형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남편이 첫 번째 회사에 들어갔을 때 형규와 입사동기였다. 형규는 남편이 은미와 같은 대학을 나왔다는 것을 알고 은미를 아냐며 다가왔다. 남편은 은미와 과가 달랐지만 내 친구니까 알고 있어 대화가 이어졌다. 남편과 형규는 연수를 받으며 친하게 지내다가 나중에 둘이 따로 만나 술을 마셨다. 형규는 남편에게 자신의 ‘첫 미팅 파트너를 가로채갔다’고 말했다 한다.

퇴근한 남편과 옛 팝송을 들으며 저녁 식사를 했다. 갑자기 남편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 Hyde Park 다방 알아? 우리 대학 때..”

“ 아니.. 왜?”

입학 전 그곳에서 은미와 자주 만났고 형규와 첫 미팅을 한 곳이라고 말했다.

“ 나, 강형규랑 카톡 친구야 ”

남편은 형규의 연락처가 있어서 카톡 프로필에 가족사진이 뜬다며 보여주겠다고 했다. 나는 안 보겠다고 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며 유튜브를 봤다. Hotel California를 검색했다. 이글즈의 1977년 라이브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미지의 세계에서 들리던 노래는 구체적인 형태로 화면에 드러났다. 멤버들은 날렵하고 거침없는 자세로 노래하고 연주했다. 커피 값이 40배가 되는 동안 세상은 변해갔다. 막연히 상상했던 가수들의 표정과 연주 동작을 유튜브로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1994년 과 2004년 공연에서 그들은 둔탁하고 후덕해져 갔다.

은미에게 문자를 보냈다. 부산에 자리 잡고 사는 은미에게 서울 오면 한번 보자고 했다. 할 수 있다면 Hyde park 다방에서 만나자 하고 싶었다. 그곳은 한때 피자가게가 되었다. 얼마 전에 지나쳤을 때는 입구에 ‘임대문의’라는 종이가 붙어있었다. Hyde Park는 어디로 갔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