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차범석의 희곡 '위자료'를 읽고
황금만능주의라는 말이 이 세대를 풍자하는 정도를 넘어 보편적 가치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이 희곡은 차범석 작가가 돈이라면 사랑도 우정도 심지어는 자기의 정체성도 제2순위가 되어버리는 세태를 안타까워하며 쓴 것처럼 보인다
이 희곡의 시작은 큰 아들 명수를 교통사고로 잃어 장례를 치르는 빈소에서 시작을 한다. 이곳에서의 주된 화제는 사고를 낸 버스회사에서 위자료를 얼마 받아낼지 가족들 간 결정하는 것이었다. 위자료 협의는 명수의 어머니와, 아내, 외삼촌, 남동생이 했다.
버스회사와 밀고 밀리는 협의 끝에 합의를 한 가족들은 위자료를 수표로 받았다.
그런데 얼마 후 죽은 줄 알았던 명수가 왔다. 명수는 놀라고 당황한 가족들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다. 기차를 타고 오던 중 잠든 사이에 친구가 자기 옷을 입고 기차에서 내렸고 그 후 버스를 탔는데 사고가 났다고 했다. 사고 때 폭발이 있어 사람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고 옷 안에 있는 신분증으로 신원 파악을 했기 때문에 버스회사에서는 자기가 죽은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에게는 명수가 살아있어서 기뻐하는 감정과 위자료를 사용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교차했다. 명수는 이런 사실을 버스회사에 알려야 하지만 거액의 위자료에 욕심이 생겨 죽은 사람이 친구라는 걸 알리지 않고 위자료를 자기가 쓰려고 했다.
하지만 명수가 돈 때문에 평생 죽은 사람처럼 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명수의 어머니는 위자료로 받은 수표를 찢어버린다.
이 희곡을 읽으며 고려시대 이야기인 형제투금설화(兄弟投金說話)가 생각났다. 길을 걷다 황금 두 덩어리를 얻은 형제가 기뻐하는 것도 잠시, 동생이 형의 금덩이에 욕심이 생기면서 형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자 금덩이를 강물에 던졌고, 동생의 말을 들은 형도 금덩이를 강물에 던졌다는 이야기다. 이 형제들은 돈보다 형제우애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명수는 황금을 던진 형제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가족들과 위자료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값은 시세가 있어 오르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며 사람의 생명을 물건처럼 가볍게 여겼다. 사람과 물건을 동일 선상에 놓다 보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 같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 죽어버린 친구 가족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돈이 주는 풍요함보다 아들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더 중요하게 여긴 명수 어머니의 수표를 찢는 결단이 없었다면 이 가족에게는 결국 불화와 불행이 찾아왔을 것이다. 돈이 삶에서 최우선 가치가 되었을 때의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이 희곡이 발표된 1972년도에는 절대적 빈곤 속에 살아갔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돈이 필요했다면,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상대적 빈곤으로 돈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성경 디모데전서에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는 말씀으로 욕심이 탐욕이 되고 탐욕이 파멸로 이어지는 걸 경고하고 있다.
절대적 빈곤이든 상대적 빈곤이든 돈은 필요하고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이겠지만, 배고픔과 부족함이 아닌 욕심 때문에 돈의 가치가 더 우선시 되는 현실이 좀 안타깝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