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헌디

[독후감] 차범석의 '산불'을 읽고

by 하늘소망

mbc방송국 최장수 드라마로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방영됐던 '전원일기'가 있다. 그 드라마 대본을 쓴 차범석 작가의 희곡 '산불'을 읽었다.

1951년을 배경으로 지리산 자락 한 촌락에서 전쟁통에 남편을 잃어버린 과부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이들의 마을은 북한군의 지원을 받아 게릴라 활동을 하는 빨치산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산사람이라고 했고 그들의 억압에 못 이겨 식량을 주었고 밤에는 경비를 서며 수상한 사람이 오는지 감시했다.

이곳에 남자라고는 귀머거리였고 약간 노망을 한 78세의 김노인이 유일했다. 그래서인지 젊은 과부들은 사내를 그리워했다.

어느 날 빨치산 부대를 도망 나온 규복이 다리를 다친 채 스물여덟 살의 과부 점례의 집에 숨어들었다. 점례의 집에는 김노인과 시어머니 양 씨가 있었지만 점례는 그들 몰래 규복을 집 근처 대밭 토굴에 숨겨주고 상처를 간호하고 음식을 주며 보살핀다. 그러다 이 둘은 정이 들고 사랑을 나눈다. 이 상황을 알게 된 점례의 친구인 과부 사월이도 규복과 사랑을 나누게 되고 임신까지 하게 된다.


빨치산을 소탕하기 위해 마을에 온 국군이 대밭에 불을 질렀고 그 바람에 토굴에서 나온 규복은 국군에게 발각되어 죽게 되었다. 규복의 죽음을 알게 된 사월이는 규복의 아이를 임신했단 사실이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지자 죄책감에 양잿물을 마시고 자살을 하며 희곡은 막을 내린다


희곡을 읽으며 한국전쟁의 비참함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정치가 뭔지 이념이 뭔지도 모르는 순박한 산골 마을 사람들이 전쟁 상황에 따라 고통당하는 모습이 참 안타까웠다. 그 마을을 국군이 점령했을 때는 빨치산을 도운 사람들이, 반대로 빨치산이 점령했을 때는 국군을 도운 사람들이 고통당하며 생존을 위해 서로를 비난하는 모습이 너무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사랑을 갈구하는 과부들의 욕망도, 빨치산을 탈출해 자유를 갈망하는 규복의 답답함도, 먹을 것 없는 가난한 살림에 노망 난 노인의 배고픔도 그 시절의 애달픔을 느끼게 했고 아주 오래된 시절이 아닌 내 부모 세대가 겪었던 세월이라고 생각하니 슬퍼졌다.

한국전쟁은 그 당시 열강들의 이익을 위해 발생한 측면이 큰데 한반도에서는 이념논쟁으로 변질되어 같은 민족끼리 죽고 죽이는 비극적인 전쟁을 했다는 게 참담했다.

함께 잘 살아보자고 만든 이념이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하는 도구가 되어버린 모순된 현실에서 2016년 영화 '곡성'에서 나와 유명해진 '뭣이 중헌디'라는 대사가 생각난다.

노망을 한 김노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에게는 이념도 규복이의 낯선 방문도 전쟁도 아닌 든든한 밥 한 끼였을 것이다. 희곡에서 큰 비중이 없는 김노인이 약방에 감초처럼 여러 장면에서 등장하는 건 삶의 우선 가치가 무엇인지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 같았다.

규복의 아이를 임신한 사월이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감정과 욕망이 중요했을 것 같다. 이성보다는 감정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던 것 같고 이런 성향이 외도를 하게 하고 또 그러한 성향 때문에 외도했다는 죄책감을 못 이겨 목숨을 버리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게 다 다르겠지만 사람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산불로 인한 규복이와 사월이의 죽음으로 이념도 사랑도 욕망도 타버린 희곡 마지막 장면은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