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하고 선한 표정을 갖길 바라며
자원봉사라는 말은 참 고상하고 숭고하며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정작 자원봉사라는 테두리의 중심에 들어갔을 때 이상과 실제는 많이 다름을 체험했다. 대학생 시절 교회에서 학생회 선생님이던 나는 중고생 몇 명을 데리고 장애인 요양원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맘껏 주고 오겠다는 다짐은 그들이 생활하는 방문을 여는 순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나도 그곳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제법 큰 방에 7~8명의 10~20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이는 이유 없이 계속 소리 지르고 있었고 어떤 이는 머리를 벽에 계속 박고 있었다. 글로만 읽을 수 있었던 아비규환이라는 말이 눈과 귀로 느껴졌다. 그들을 진정시키고 식사 봉사를 했다. 몸이 불편해 혼자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에게 밥을 먹여줬다. 밥을 먹기 싫어하던 그는 먹던 밥을 나에게 뱉어버렸다.
겉으로는 괜찮다는 표정관리를 했지만 속으로는 빨리 그곳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나는 더 이상 식사를 돕지 못하고 그곳의 직원이 식사를 도왔다. 그런데 식사 봉사활동을 하는 함께 간 학생들의 표정은 전혀 일그러지지 않았고 진지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다. 선생과 학생의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
자원봉사라는 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과 애정 그리고 순수함이 없다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걸 깨달았고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웠다. 단 한 번의 봉사활동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피하고 싶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말로만 사랑을 외친 위선자 같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선 후배 동료들끼리 봉사활동 모임을 만들었다. 독거노인을 돌보는 활동이었다. 5~6명의 회원들이 어느 치매 노인집에 방문하여 집 청소를 하기로 했다. 이번에도 봉사활동의 숭고함을 체험하고 오겠다는 고상한 생각은 그 집 방문을 열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역겨운 용변냄새가 코를 찔렀고 침구류에는 때와 먼지가 가득했다. 억지로 참아가며 이불을 털고 방청소를 했다. 이번에도 이곳에서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함께한 회원들 중 한 명에게서 천사의 모습을 발견했다. 전혀 찡그리는 표정 하나 없이 집안 구석구석 열심히 청소하고 있었다.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고 존경스러웠다. 말로만의 사랑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랑이 저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함께 한 대부분의 봉사자들이 힘들어해서 그 집을 방문하는 봉사활동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는 할머니와 사는 아이들이 있는 몇 가정을 방문하는 봉사활동을 했다. 집도 청소하고 아이랑 놀아도 주고 할머니에게 용돈도 드렸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1년에 4~5번 방문한 집도 있었으니 꽤 오랫동안 자원봉사 활동을 한 셈이다. 하지만 어떤 때는 의무적으로 마지못해 간 적도 있었다.
자원봉사 활동을 하며 그 자원(自願)이라는 힘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궁금했다. 모든 사람에게 숨겨져 있던 본능적인 힘인지, 교육을 통해 생겨났는지, 여러 명이 함께하는 작고 소소한 활동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인지, 타고난 것인지, 이 모든 요인들이 복합되어서 생기는 것인지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자원봉사 활동에 대한 마음의 문은 열려있지만 열정과 사랑의 힘이 부족한 나는 열심히 봉사활동하는 사람들의 사랑의 힘이 마냥 존경스럽고 그 힘의 원천이 어디인지 많이 궁금하고 부러웠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큰 바위 얼굴'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기억난다. 바위 위에 새겨진 얼굴을 닮은 훌륭한 사람이 언젠가는 마을에 온다는 전설을 듣고 그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을 기다리며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어니스트란 소년이 나중에 그 큰 바위 얼굴과 비슷한 용모를 갖게 된다는 내용이다.
나도 소설의 주인공처럼 자원봉사활동을 함께 했던 사람들의 순수하고 선한 얼굴 표정을 닮고 싶다.
그리고 의무나 억지가 아닌 진정 자원하는 마음으로 한걸음 한 걸음씩 자원봉사라는 작고 좁은 길을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