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때 걸어서 가는 등굣길에 언제부턴가 멀리 있는 간판 글씨가 흐릿하게 보였다. 하지만 멀리 있는 간판을 자세히 봐야 하는 경우가 많이 없었기에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칠판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앞자리에 앉으면 됐기 때문에 안경을 쓰지 않았다. 안경을 쓰지 않아 집중이 잘 안 되서인지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는 눈도 더 나빠지고 좀 더 수업에 집중하기 위해 안경을 썼다.
안경을 쓰다 보니 여러모로 불편했다. 잠잘 때도 한쪽에 잘 벗어놔야 하고 운동을 할 때도 세수를 할 때도 불편했다. 그래서 공부할 때는 썼다가 야외활동할 때는 쓰지 않다가를 반복했다. 그래도 시력이 많이 나쁘지 않아서 생활할만했다.
그런데 군대를 갈 때가 되었다. 군대에 가서 훈련을 받을 때 안경을 쓰고 있으면 많이 불편하기도 하고 땅에 떨어져 깨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경을 쓰지 않고 생활해야겠다고 맘을 먹었지만 그래도 안경이 없는 군대생활이 불안했다. 꼭 필요할 때만 안경을 쓴다는 마음가짐으로 안경케이스에 정성스레 안경을 잘 넣어서 군대를 갔다. 군대 훈련소 생활은 대부분이 야외훈련이고 실내에서 하는 정신교육은 듣기만 하면 되므로 안경이 없어도 군생활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문제는 자대에 배치를 받고나서부터 생겼다. 내가 하는 일은 보초를 서는 일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멀리서 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잘 파악을 해야 했다. 대대장인지 소대장인지 선임인지 후임인지 대상에 따라 대처해야 할 상황이 달랐기 때문이다.
안경을 써야 했지만 안경을 쓰지 않았다. 그 대신 몸의 형태나 걸음걸이로 누구인지 짐작을 했다.
그런 의지 때문이었는지 조금은 불편했지만 군 생활 내내 안경을 쓰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전역 후 대학생활을 할 때는 칠판글씨를 봐야 하므로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상황에 따라 썼다 벗었다 하는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안경을 계속 쓰는 시간이 많다 보니 안경이 만들어주는 눈의 초점에 적응이 되어서 안경을 쓰지 않으면 세상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많이 불편했다. 그리고 멀리서 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안 보여 실수나 오해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안경 쓰기가 불편하다고 나쁜 시력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실체와 달리 왜곡해서 보거나 보이는 경우가 있다. 조금 불편해도 안경을 통해 제대로 보려 하고 교정하려는 노력이 있을 경우 좀 더 밝고 선명한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다.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조금 불편하다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각이나 사고를 계속 고집하고 배움을 멀리하고 변화하지 않는다면 진실에 접근하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우물 안이 세상의 전부인양 생각하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신체의 안경이 아닌 마음의 안경을 쓰고 싶다. 세상의 이치를 제대로 보고 잘못된 나의 시각을 교정해 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