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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소설

[소설]청년회관

민족의 꿈이여 푸르고 푸르게 피어나라!

by 하늘소망

1924년 무더운 7월 어느 날, 웅장한 빨간 적벽돌 2층 건물인 호남은행 앞은 그날따라 오가는 사람도 없고 왠지 모를 적막감이 감돌고 있었다. 그곳을 향해 목포역 쪽에서 재영과 영수가 아무 말 없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은행 입구에서 잠시 머뭇거리던 둘은 많이 긴장한 듯 굳은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은행문을 열고 창구 쪽으로 천천히 다가섰다. 한걸음 한 걸음씩 창구와 가까워질수록 영수의 심장 박동이 빠르게 뛰었다.

영수의 손에는 목포청년회 명의의 통장이 들려있었다. 조심스레 창구 직원에게 통장을 내밀며 통장정리를 부탁했다. 목포청년회관 건축을 위해 의연금 모금을 했는데 그 모금 내역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한참 후 은행직원은 모금 내역을 적어 영수에게 내밀었다.

은행직원이 통장을 정리하는 내내 긴장감으로 굳어있던 영수의 표정이 풀리며 미소가 지어졌다.

"재영아 ~ 의연금이 조금만 더 모아지면 청년회관을 건축할 수 있을 거야"

목포청년회에서 재무를 담당하고 있는 영수가 청년회장 재영이를 보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우리 청년회원들의 수고가 드디어 결실을 보겠구나"

흐뭇한 표정의 재영의 얼굴에서도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재영의 머릿속에는 벌써 청년회관이 건립되어 시민들과 함께 어울리는 그림이 그려졌다.

목포 영흥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재영은 1919년 3.1 운동의 영향으로 전국적으로 민족의식이 높아지고 청년 운동이 활발해지던 1920년 5월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목포청년회를 창립하였다.

창립초기에는 청년들이 모일 곳이 없어 평소 야학을 하던 양동교회에서 모였다. 하지만 청년회 규모가 커지고 강연 및 토론회, 잡지간행, 교육 등의 활동범위가 확장되며 청년회관의 건축이 필요해졌고 1924년 4월 부터모금운동을 시작했었다. 몇 개월에 걸친 모금운동으로 건축비가 거의 모아졌다.

"일단 지금까지 알아봤던 남교동 땅을 사야겠어" 감격에 겨워 떨리는 목소리로 재영이 말했다.

재영은 당장이라도 공사를 시작할 것처럼 마음이 들떠 있었다.

"먼저 청년회원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건축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자" 재영의 고조된 감정을 가라앉히려는 듯 영수가 말했다.

"좋아, 내일 청년회원들을 소집해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함께 계획을 세우자"


다음날 양동교회에 모인 회원들은 감격과 기쁨의 도가니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민족의 자존감이 그리고 독립의 염원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청년회관을 건축합시다"

"맞아요, 청년회관이 있으면 민족계몽운동이 더 활발해질 거예요"

"우리들이 직접 돌을 나르며 빨리 건축이 이뤄지게 도울게요"

여기저기서 회원들의 흥분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양동교회 예배당에 모인 그들은 오랫동안 그곳을 떠나지 않고 청년회관 건립에 대한 기대감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새겼다.


1924년 4월 목포 청년회관 건립을 위한 모금 운동이 있은지 5개월 만에 의연금 1만여 원이 모금되었고 9월에 남교동 대지 100평 땅에 공사가 시작되었다.

바위를 깎아 만든 네모난 돌이 높이를 맞춰 한 줄 한 줄 올라가기 시작했다. 청년회원들이 돌을 하나씩 날랐고 조적공이 쌓아 올렸다. 건물 모양은 단순 장방형 구조의 1층으로 석조 건물로 지어졌다. 창문은 직사각형 틀 안에 나무로 만들었다. 석벽돌이 한 줄 한 줄 올라갈 때마다 청년들 마음속에는 민족의 자존감이 올라갔고 독립의 염원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재영은 매일매일 와서 공사가 진행되는 상황을 점검하고 함께 일하는 청년회원들을 격려했다. 여러 사람들이 도왔기 때문인지 공사는 빠른 진척이 있었다.

공사를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청년회관이 완성되었다. 돌로 만든 사각형의 상자 같은 청년회관은 튼튼한 요새처럼 보이기도 했고 꿈과 희망을 싣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보이기도 했다.

1925년 3월 각계각층의 시민이 모여 낙성식이 열렸다.

"이곳은 목포청년들의 지덕함양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이곳은 민족운동의 중심지가 될 것입니다. 이곳은 노동자들의 피난처이자 안식처가 될 것입니다."

재영은 연단에 올라 외쳤다. 많은 이들이 환호하였고 몇몇의 눈에는 감격의 눈물이 맺혔다. 재영의 외침은 어떤 이에게는 독립의 희망이, 어떤 이에게는 민족애에 대한 감동이, 어떤 이에게는 나라를 잃은 설움을 씻어주는 위로가 되었다.

그곳에 참여한 모두가 청년회관 건물을 보며 미래를 꿈꿀 때 단 한 사람은 다른 곳을 바라보며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일본 순사 요시다였다.

요시다는 청년회관에서 한국인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통로로 이용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우며 매서운 눈초리로 재영을 포함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상착의를 기억 속에 차곡차곡 새기고 있었다.


재영은 낙성식이 끝난 후 앞마당에 작은 소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사시사철 변하지 않는 푸르른 모습으로 커갈 소나무처럼 청년회관도 푸르고 푸른 우리 민족의 꿈이 점점 커지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고...


재영은 일주일에 두 번 야학교실을 열어 한글을 가르치고 시를 가르쳤다. 야학교실에는 어린아이부터 노년층까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였다. 한 달에 한번 강연회를 열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도 했고 잡지도 발행했다.

강연회를 할 때면 꼭 요시다가 찾아와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있었고 잡지 내용도 꼼꼼하게 확인했다. 3.1 운동이나 4.8 만세운동 같은 시위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독립운동을 공모하거나 부추기는 내용이 있는지 있는지 검열했다.

회원들은 요시다가 없는 틈을 타 대한 민족의 독립과 일본의 억압과 수탈에 항거하기 위한 민족계몽운동을 계획했다.


"오늘 야학시간에는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배우고 서로 낭송도 해 볼게요"

초롱 초롱한 눈빛으로 학구열이 빛나는 사람들에게 재영이 말했다.

재영이 먼저 낭송하고 시에 담긴 의미를 가르쳤다. 서정시처럼 보였지만 그 시가 무엇을 노래하는지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시가 낭송되는 청년회관 안은 조국에 대한 애정과 식민지배에 대한 반항과 독립을 희망하는 다양한 감정이 담긴 목소리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야학이 진행되던 1927년 어느 날 양복차림의 중년의 남성이 재영을 찾아왔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저는 항일 민족운동단체인 신간회 목포 지회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곳을 이용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당연히 함께 해야죠. 이곳은 우리 시민을 위해 시민들의 모금으로 만들어진 우리 시민 모두의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그 이후로 신간회도 이곳에서 강연회, 농민운동지원 등의 활동을 하며 항일 의식 고취와 민족협동전선 형성을 하는 활동을 했다.

몇 개월 후 청년회관에서 여성운동 단체인 근우회 목포지회가 창립되었다. 근우회는 항일운동과 여성인권신장 및 사회문제 해결을 중심으로 교육 노동분야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다.

청년회관의 활동이 눈에 띄게 많아지고 항일운동 및 민족운동의 구심점이 되어가는 것을 가장 못마땅하게 여긴 요시다는 점점 위기의식을 느꼈다.

어떻게 청년회관에서 이뤄지고 있는 활동을 탄압할지 호시탐탐 노리던 요시다는 어느 날 많은 경찰들을 데리고 청년회관을 급습했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태극기, 항일운동자료를 찾아내 이를 구실로 청년회관을 폐쇄하였다.

민족운동의 열기가 피어오르며 청년들의 푸르른 꿈으로 가득 채워지던 청년회관은 이제 타다 남은 숯불처럼 그 힘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다. 일본경찰들에 의해 창문은 깨어지고, 지붕에는 구멍이 뚫렸다. 진흙으로 마감된 내부 벽면은 깨져 버렸다. 비가 새고 나무 재목이 썩어져 가며 마룻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건물 내외로 잡초들이 자라나며 조금씩 헐어져 갔다.

독립을 염원하며 한 줄 한 줄 쌓아 올린 석조 벽돌만이 뜨거웠던 민족계몽운동의 흔적을 애써 지켜내려는 듯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재영은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 청년회관을 찾았다. 깨어진 창으로 내부를 바라보며 민족운동의 꿈이 피어나던 때를 회상했다. 한순간 한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게 다가왔다. 헐어져 가는 청년회관처럼 조금씩 쌓아 올려 가던 독립의 염원과 민족운동의 꿈이 헐어져 가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팠다.

비참한 마음으로 청년회관을 돌아서는 순간 재영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청년회관 낙성식 때 심어놓은 소나무였다. 헐어져 가는 청년회관과 달리 푸르고 푸른 모습으로 자라고 있었다.

그 모습에 재영의 참담했던 마음이 변했다. 이 푸르고 푸른 소나무처럼 다시 청년회관에 푸르고 푸른 민족의 꿈이, 청년들의 희망이 가득 찰 것이라는 믿음이 싹 터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재영은 한참 동안 소나무를 바라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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