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말. 09
남편이 장소를 정하면 정보를 찾는 건 내 몫이다. 보통은 대여섯군데 맛집이나 명소를 골라 구글맵에 저장한 후 떠나곤 했다. 이번엔 어찌된 일인지 구미가 당기는 맛집 하나 찾기가 어렵다. 이 지역 상인들 중 일부가 근처 군부대 군인들에게 텃세를 부리며 장사하는 것을 비판하는 영상을 본 후로, 아예 흥미를 잃고 말았다.
여행의 8할은 날씨인데, 우리는 검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보며 출발했다. 캠핑장 도착 10분 전부터 두둑두둑 빗방울이 차 앞 유리를 때리더니, 타프를 지는 동안 얇은 상의가 흠뻑 젖을 만큼 내리고 있었다.
"ㅁㅁ군에 오시면 10년 젋어집니다."
도로 곳곳에 써있던 홍보 문구가 무색하게, 순식간에 10년은 늙어버린 기분이었다.
라면과 레토르트 카레 정도만 때려넣고 출발했던지라, 2박3일을 버티려면 장을 보러 나가야했다. 도로에는 마침 ㅁㅁ군 축제가 열리는 날이라는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걸려있었다. 검색을 해보니 축제 행사장에 푸드트럭이 있다고 한다. 밥이나 먹고 오지 뭐. 별 기대 없이 들어간 나와 달리, 딸은 벌써 풍선으로 만든 꽃을 하나 받아들고 페이스페인팅 부스로 달려가고 있었다. 딸아이가 해보고 싶다는 짚풀공예 체험부스에서 덩달아 짚풀을 꼬며, 설명을 해주시던 선생님께 푸드트럭은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초록색 천막 보이시죠? 부녀회에서 밥 준비했으니까 가서 드세요. 마을 사람 아니라도 괜찮아요. 그런데 손재주가 좋으시네요. 이거 처음 하는 사람치고 꽤 잘하는 거예요."
우리는 마을마다 준비한 음식을 둘러보고 가장 맛있어 보이는 곳을 골라 마을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서서 밥을 받아 먹었다. 엄마가 끓여준 것처럼 진한 멸치육수의 된장국에 나물과 잡채, 불고기를 한그릇 넘치게 받아 자리를 잡았다. 식당 천막으로 제목이 가물가물한 익숙한 팝송을 연주하는 관악기팀의 들어서자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상하이 트위스트"를 연주하자 막걸리잔을 들고 있던 어르신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엉거주춤하게 서서 공중에 양팔을 들고 규칙없이 휘젓는 춤사위가 비슷비슷해서 한참을 웃다가 나도 모르게 함께 어깨춤을 들썩였다. 아이들은 신이 났고, 어른들은 웃고 있었다.
"엄마, 우리 여기 오길 잘했다."
딸아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저녁까지만해도, 아니 축제장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못마땅해 하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었다. 하늘은 여전히 먹구름 잔뜩이지만, 내 기분은 맑음이었다.
생각해보니, 그거 참 별거 아니다.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는 일 말이다. 우연히 마주하는 찰나의 반짝임, 그것만으로도 좋아해버리게 되는 거다.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 조건없는 작은 나눔, 큰 의미 없는 미소면 충분하다. 뒤집어 생각하면,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