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5월에 핀 장미처럼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대낮이지.'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처럼, 세계의 한복판에,
폼페이 한가운데에 서면, 비로소 그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생애 처음으로 홀로 떠난 여행이었다.
그 여행의 목적지가 왜 폼페이였나 돌아보면, 그저 마음이 그곳으로 이끌었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를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독일 기숙사 방구석에서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에 뜬 폼페이 다큐를 보며,
이상하게 자꾸만 마음이 갔다. 모든 게 멈춰버린 도시를 걷는 기분은 어떨까.
로마와 폼페이를 다녀오고서야 깨달았다.
나는 역사를 좋아한다.
산 증인이 없어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해주지 못하는 그 시간의 틈은
상상력이 비집고 들어가기 충분하다.
폼페이는 실제로도 매력적인 곳이었다.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도시,
모든 것이 멈춰버린 도시.
과거를 현재의 공간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
시간을 넘어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매력적인 일이었다.
여행은 이렇게,
나도 몰랐던 나의 취향을 발견하게 해 준다.
폼페이에 가던 날은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그마저도 운명처럼 느껴졌다.
운명의 날을 떠올리면
왜 비가 함께 떠오를까.
비는 어째서 나에게 늘
슬픈 심상을 남길까.
보통은 가이드 투어로 많이 찾는 곳이지만,
혼자 유유자적하게 폼페이를 걷고 싶다면
오디오 가이드는 좋은 선택이 된다.
‘마이퍼스트가이드’라는 앱에서
폼페이 유적 설명 mp3를 구매했다.
내 돈을 주고 오디오 가이드를 사는 일은 내 인생에서 쉽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만큼 폼페이는 나에게 신비로운 곳이었다.
그렇게 마주한 폼페이는 흑백 도시 같았다.
모든 것이 회색이었다.
오래된 사진들이 흑백으로 남아 있듯,
색을 잃은 도시를 걷는다는 건
묘하고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지금은 색이 사라진 이 도시에도
그때는 분명 색깔이 있었겠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알록달록한 폼페이라니.
아, 이제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비가 슬프게 느껴지는 이유를.
정확히 말하면
비가 아니라,
비를 몰고 오는 먹구름 가득한 하늘과, 그로 인해 햇빛이 들지 않는 공간이
슬픔을 품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늘이 새파랗게 맑았다면,
그날의 폼페이가 그리 슬프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시절에도 목욕탕이 있었고,
커다란 스타디움이 있었고,
부잣집과 가난한 집이 있었고,
식당과 유흥업소도 있었다.
지금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이
약 2,000년 전에도 존재했다는 사실.
역사책으로 보던 장면을
직접 그 유적 위를 걸으며 마주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의미였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될 무렵, 서서히 하늘이 갰다. 먹구름이 사라지고 파란 하늘과 햇빛이 폼페이에 닿았다.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서는 죽음의 한가운데 있어야 한다고 했다.
모든 것들이 멈춰버린 그 도시에 서 있으니,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느낀다
누구도 살지 않는. 죽음의, 정적인, 고요한 그 공간에 우두커니 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