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요리 대회

by 안주

독일의 외식 물가는 꽤나 비싼 편에 속한다.

평범한 식사도 한 끼에 15~20유로가 나가는데, 사악한 환율까지 더해져 한 끼에 족히 2-3만 원은 깨진다.


반면에 식재료가 무척 싸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직접 요리를 해 먹으면 한 달 식비로 10만 원도 채 들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이게 맞는 거 아닌가. 우리나라는 왠지 전세가 역전된 기분이다. 외식비에 비해 마트 물가가 너무 비싸다)


그래서 가난한 학생은
강제적이면서도 자발적으로 부엌에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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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와서 처음으로 라면이 아닌 요리를 했다.

밥을 짓는 것도, 계란 후라이를 만드는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원했든 원치 않았든, 그렇게 요리를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재밌었다. 결과는 망했어도 과정이 즐거운 일이라면 그건 전부 나에게 있어서, ‘취미’라는 이름 아래 존재한다. 요리는 곧 내 취미가 되었다.


요리를 처음 시작하는 자에게는 레퍼런스가 필요하다. 유튜브 영상이라던가, 인스타 릴스라던가 그런 것들에 올라온 레시피들을 저장해 두고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머나먼 해외에서 필요한 모든 재료를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항상 무언가 부족했다.

어쩔 땐 돈이 없고 어쩔 땐 재료가 없었다.


모든 것들이 갖춰져야만 그 요리가 완성되는 줄 알았기에,

처음엔 그렇게 해보지도 않고 포기한 요리들이 산더미였다.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한두 개쯤 재료가 없어도, 아니 여러 개가 없어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됐다.


망한 요리 대회 후보를 꼽자면 후보는 셀 수도 없이 댈 수 있다…


후보 1. 분리된 노른자와 흰자.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계란후라이


후보 2. 펜네파스타로 만든 떡볶이. 현지의 떡 값이 비싸 떡 모양의 파스타로 시도했지만 식감이 너무나도 생경했던 것


후보 3. 속까지 새까맣게 타버린 만두


후보 4. 두부조림을 만들고 싶었다. 연두부인 줄도 모르고


후보 5. 곰팡이 핀 식빵을 먹으면 안 되는 줄 몰랐던 자의 최후


후보 6. 콩나물인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숙주해장국이었던 것.


후보 7. 맹물된장찌개


후보 8. 기어코 김장을 해낸 의지의 한국인이여 - 참기름을 너무 많이 둘렀더니 참기름 냄새가 너무 강하다


여전히 어설픈 것 투성이지만
그래도 배운 게 있다면,


버터 없이도 크림 파스타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참치액이 없어도 찌개를 끓일 수 있다는 것
야채와 고명 하나 없어도 카레는 카레라는 것.


그리고 양파를 6개월 동안 놔두면
줄기가 자란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채소의 재생 능력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안녕?


자취생들이 왜 파스타를 사랑하는지도 알게 됐다.

싸고, 쉽고, 맛있다.. 무엇보다 설거지가 후라이팬 하나라는 것


무언가를 좋아하면, 그만큼 세계가 확장된다는 말을 좋아한다.

<아무튼, 여름>이라는 책에 나온 구절이다.

교환학생을 오고 나서 나의 세계는 확실히 확장됐다.

처음 해보는 것들 투성이었던 그곳에서 그중 하나는 요리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요리는 내게 식사라기보다는 놀이에 가까웠다.

누군가에게 대접할 음식일 수는 없지만,

아무렴 어때

요리사는 나이고 손님도 나였던.


그저 반가웠던 것은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어 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내가

스스로에게 조금 더 제대로 된 요리를 대접해주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를 잘 먹인다는 건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