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디 <사계>, 베니스

by 안주

비발디의 고향이 베니스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이탈리아 여행기를 담은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베니스 한 교회에서

비발디의 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술에 조예가 깊은 편은 아니지만, 비발디가 사랑했던 그의 고향에서,

그의 음악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르는 곳에서 듣는 그의 음악은 꽤나 낭만 있어 보였다.



# 베네치아 산 비달 교회


런던의 웨스트웬드와 미국의 브로드웨이, 그리고 세계 3대 필하모니로 꼽히는 베를린 필하모니.

그런 곳들보다도 훨씬 더 소박한 공간에서. 베니스의 어느 작은 교회에서 감상한 음악콘서트가

이리 오래도 내 마음에 남아있을 줄은 몰랐다.


강행군으로 피곤에 찌들어 곧장 잠에 들어버릴 것 같았던 그날, 1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공연 내내,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신체의 모든 기관이 깨어있는 상태로 연주를 볼 수밖에 없었다.


공간이 작아서였을까

마침 앞줄에 앉아서였을까

연주자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볼 수 있었다. 무언가에 심취해 있는 이의 모습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홀로 소름 돋고, 홀로 감동을 삼키며 그렇게 표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공연을 보았다.


아는 것이 무서운 것이라는 말이 딱 맞는 것이다.

클래식에 문외한인 나조차도 비발디의 사계 멜로디는 어렴풋이 귀에 익었다.

귀에 익은 멜로디를 월 5900원짜리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로 듣는 것과, 5만 원짜리 공연으로 듣는 것은

그 이상의 차이였다.


공연은 정적인 분위기와는 사뭇 거리가 멀었다.

잔뜩 심취해 액션이 큰 연주자. 표정이 큰 연주자. 매 곡이 끝날 때마다 서로를 격려하던 연주자들.


곡마다 독주를 맡는 연주자가 바뀌었다.
그중 한 분은 손수건으로 여러 번 땀을 훔치며
긴장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나조차 실수할까 조마조마해질 정도였는데,
그 떨림마저도 이 공연의 일부처럼 느껴질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공연은 완벽했다.


전성기. 열정. 아름다움. 그리고 익숙한 것들이 주는 기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연주자들의 평균 연령은 60대 이상으로 보였다.
당장 여행 중 길에서 마주쳤다면
그저 흔한 배불뚝이 이탈리아 아저씨로 지나쳤을지도 모를 사람들.


그런데 그들이,

저렇게 백발이 되고서도
어쩌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
전성기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수많은 이들에게 박수를 받는 삶은 어떤 기분일까.
하나같이 감동한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삶은
어떤 풍경일까.


정리가 잘 되지는 않지만
그날의 공연은 내게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취업 같은 것들에 아등바등하며
때로는 좌절감이나 모멸감을 느끼던 내가
괜히 미련해 보일 정도로.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그리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몸소 보여주는 것 같아서.


사실 해외에 머무는 내내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이탈리아의 어느 식당에서 만난 웨이터 아저씨,
뉴욕의 스테이크 레스토랑에서 만난
정장을 차려입고 정중하게 서빙하던 할아버지 웨이터분들.


나는 왜 내 인생의 전성기는 지금이라고 확신했을까.
나의 20대는 어째서 그렇게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쉬는 시간 화장실 줄을 기다리며 멕시코에서 오셨다는 할머니 한 분이 이 순간이 아름답지 않냐고

말씀을 건네오셨다. 실로 그랬다. 황홀했다. 황홀하다는 경험을 처음으로 겪어보았다.


무교인 나는 종교적 공간이 주는 신성함에 대해 그리 잘 알지 못한다.

그날 비발디 공연을 보며, 공간의 신성함에 대해 조금은 깨닫는다.


행복한 순간 하나를 더 수집했다.

인생은 길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가는 여정 중에 있다.

공연이 끝나고 마주한 베네치아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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