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서 다리를 다쳤다
내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던(P) 베를린에서의 한인 병원 방문 기록을 남긴다. 혹시나 독일에서 급하게 병원을 찾는 이에게도 도움이 되는 글이기를
바야흐로 독일 교환학생 시절,
호기롭게 떠난 스위스 여행의 시작점부터 단단히 잘못되고야 말았다.
독일에서 스위스로 향하는 야간 열차를 타고, 스위스 바젤역에 도착했다.
캐리어를 들고 기차 계단을 내려가던 중, 사단이 났다.
다리 한쪽이 퍽
열차와 플랫폼 틈새로 빠져버렸다.
(이후 스위스를 여행하며 깨달은 사실인데, 스위스는 기차와 플랫폼 사이의 간격이 매우 넓다. 다들 조심하시길..)
스위스 사람들은 다리가 길어서일까? 발판의 너비가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쪽팔린 건 둘째치고, 생애 가장 아픈 순간이었다.
잘생긴 스위스 청년이 내게 괜찮냐고 물어왔지만, 쪽팔림을 잊어버릴만큼 정말 충격적인 고통이었다.
당시, 곧바로 다음 열차로 환승을 해야 했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갈아타야 하는 기차가 바로 옆 플랫폼이었던지라
어떻게든 해당 기차에 올라타는 것까지 성공했다.
좌석에 앉은 뒤, 바지를 걷어 아픈 곳을 살펴보니
살점이 떨어져나간 듯 파여있었다. 처음엔 피도 나지 않아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은 듯 했다.
그건 둘째치고, 놀라서 그랬는지 속이 울렁거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화장실을 찾으러 기차 안을 돌아다니다가
서서히 귀 양쪽이 먹먹해지고 눈 앞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살면서 기절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었는데,
아마도 곧 기절이라는 걸 할 것 같아
재빨리 좌석으로 돌아와 앉았다.
그렇게 기차가 출발했다.
순간 들었던 생각은, 이곳에서 기절했을 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응급실에 실려가게 된다면
나에게 청구될 병원 비용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일까 였다.
사악한 스위스 물가에서 의료비가 저렴하리라고는 기대가 되지 않았다.
그런 불안감 덕분인지, 어찌저찌 정신줄을 붙잡으며, 가만히 앉아있어도 다리로부터 밀려오는 고통을 참았다.
그렇게 인터라켄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상처를 살피니
그 사이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데일밴드로 임시 처방을 한 뒤,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나는 이미 스위스에 왔고,
몇 시간 뒤 패러글라이딩을 탈 예정이었다.
3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였으므로, 걷는 한,
패러글라이딩을 포기할 수 없었다.
독일로 돌아가면 약국에나 가봐야 겠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스위스에서의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
걸을 때마다 고통은 심해 절뚝였지만,
참을만 했다. 참아야 했다.
그러고 독일에 돌아왔다.
여전히 저릿하지만 통증이 그래도 줄어들길래 병원이나 약국을 안가도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다치고나서 한 5일 후부터 피인지 진액인지 모를 것이 밴드에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상처 주변부위 감각이 없었던 것도 그냥 부어서 인줄 알았는데,
문득 왜 지금 피가나오지 싶어서 나의 증상을 챗지피티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챗지피티가 나에게 엄청난 겁을 주는 것이다.
단순 상처가 아니라는 둥, 내부 출혈이나 감염이 이미 시작된 것 같다는 둥
심하면 패혈증까지도 갈 수 있다는 둥
즉시 병원에 가야한다며 본인이 병원을 찾아줄 테니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 빨리 도시 이름을 대라고 나를 보챘다.
오바를 떤다고 생각했지만 슬슬 겁이 났다.
이곳은 한국이 아닌 독일이었고, 나는 혼자다.
만에 하나 정말 크게 다친거라면 수습이 정말 어려워진다.
그런 생각으로
병원을 알아봤지만, 독일에서는 병원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테아민'이라는 예약을 잡아야 하는데,
보통 테아민을 잡고도 한 달 정도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나는 일주일 내로 독일 공보험이 만료가 되는 상태였고,,
독일을 떠나 곧바로 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2주간 미국에 머무를 것이었기에
내가 사는 도시에서 병원을 가는 것은 무리였다. 더군다나 내 증상을 현지 의사에게 독일어로 말할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해서 베를린 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가기 전,
베를린에 머무르던 마지막 독일에서의 이틀 동안 약국을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현지 약국을 찾아 약사에게 내 다리 상태와 파파고로 번역한 내 현재 증상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약사분이 번갈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시더니 의사를 보러 가야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댓 사운즈 낫 굳'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그때부터 진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문제는 그날이 나의 독일 공보험이 적용되는 마지막 날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다음 날 미국으로 떠나야 했다.
나의 모국어를 쓰지 않는 이곳에서 당장 테아민없이 나를 받아줄 병원을 어떻게 찾아야하는지,
찾아가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든 게 막막했다.
그러나 만약 미국에서 사달이 나면?
스위스보다 미국의 의료비는 더 사악하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그래도 병원을 간다면 독일에서 가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인터넷을 뒤졌고,
다행히도 이곳은 베를린.
한 나라의 수도이기에 한인 병원들이 몇몇 검색되었고,
무작정 한인 병원을 찾아가보기로 한다.
>>2탄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