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yu림 Mar 25. 2022

편애의 사슬 밖으로

<테티스에게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건네는 헤파이스토스>


그리스 로마 신화 속에서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는 2명의 아들과 3명의 딸이 있다. - 간혹 4명의 딸이라는 설도 있다. 헤파이스토스는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 추남에 발을 절었다. 여러 다른 이야기가 있지만, 헤라는 헤파이스토스의 외모에 실망하여 그를 낳자마자 올림포스 산 아래로 던져버린다. 헤파이스토스는 바다로 추락하고, 그를 가엽게 여긴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티탄족의 여신 에우리노메가 그를 구해 해저의 동굴에서 9년 동안 보살펴주었다.

헤파이스토스는 재능이 뛰어났다. 그는 대장간 기술과 금속세공술을 배워 자신을 길러준 여신들에게 정교한 장치들과 아름다운 장신구들을 만들어 주었다. 그 사이 그는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와 왜 버려졌는지를 차츰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올림포스 신전에서 치러진 축제에 테티스가 아름다운 목걸이를 하고 나오자 질투가 난 헤라가 그것을 누가 만들었는지 물어보았다. 테티스는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었다고 말해주었다. 헤라는 테티스처럼 멋진 선물을 받고 싶어 했다. 테티스의 말을 전해 들은 헤파이스토스는 헤라를 위해 화려하게 장식된 황금 의자를 만든다. 의자가 완성되자 헤라에게 건네 졌고, 헤라가 그 의자에 앉는 순간 숨겨져 있던 정교하게 만들어진 사슬이 헤라를 감싸버린다. 올림푸스의 신들 중 그 누구도 사슬을 풀 수가 없었다. 오직 헤파이스토스만이 풀 수가 있었는데, 그는 바다 깊숙이 들어가서 나오질 않았다. 그의 형제 아레스가 헤파이스토스를 무력으로 끌어올리려 했으나 실패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헤파이스토스가 말을 듣지 않자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포도주를 먹여 헤파이스토스를 취하게 만들고 올림포스로 데려온다.  


그러나 헤파이스토스는 사슬 풀어주기를 거부하며 한 가지 요구 사항을 말한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자신의 처로 맞이하게 해 달라는 요구였다.(그리스 로마 신화는 현대인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면 또한 많다.) 제우스는 이를 승인하였고, 헤라와 헤파이스토스는 서로 화해한다. 평소 헤라의 편애를 독차지하던 아레스는 이러한 처사가 못마땅해서 크게 화를 내고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제우스는 아레스에게 전쟁의 광기, 파괴와 폭력의 능력을 준다. 이후 헤파이스토스는 올림포스 12 신들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신들 사이에서 중재자로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들은 손재주가 뛰어난 헤파이스토스를 항상 소중하게 대했다.




헤라는 멋진 외모를 지닌 아레스를 편애하였다. 덕분에 아레스는 큰 고난과 고통 없이 올림포스 신으로 받아들여졌다. 그에 비해 헤파이스토스는 헤라의 편애로 인해 버림받은 자식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버려진 것에 대해 헤라에게 절묘한 방식으로 복수하였고 지위를 당당히 되찾는다.

 이야기는 분명 허구이지만 편애의 측면에서 차별받는 자식에게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시해 줄 수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자신의 상황을 인식하고 자신을 수용할 것, 편애하는 부모가 지배하는 모든 관계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것, 능력과 힘을 기를 것, 상처와 실망,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승화시켜 내면의 질서를 되찾을 것 등이 그것이다.


헤파이스토스는 비록 헤라에게 버림받았으나 그에 상심하여 자책하지 않고 무기력과 우울,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다. 대신에 자신의 존재를 수용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과 되찾아야 할 것을 분명히 했다. 섣불리 애정을 갈구하거나 복수하기 위해 헤라에게 접근치 않았으며 오히려 9년 동안 바닷속에 숨어 살면서 멀리하였다. 헤라와 떨어져 지낸 그 기간 동안 내면과 외면을 모두 강하게 만들었고 많은 신들 사이에서 친밀한 우정을 나누었다.

헤파이스토스는 대장장이로서의 능력과 기술을 길러 그 방면에 최고가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준 사람들과 신들에게 보답을 하였다. 그런 그를 어느 누구도 멸시하거나 무시하지 못하였다. 헤파이스토스는 그 자체로 인정받았다. 기회가 왔을 때 그는 헤라를 사슬에 묶어 고통을 지속시킬 수 있었으나 자신의 원래 자리를 되찾고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헤라를 풀어준다.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의 지위를 되돌렸을 뿐만 아니라, 모든 신들 사이에서 대장장이 신으로서 그리고 평화의 중재자로서 자리하며 존중받는다.


결론적으로 보면, 헤파이스토스는 가족 사이에서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받았지만, 그는 거기에서 파생되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자신의 내면에 소용돌이치게 두지 않았다. 몸과 마음을 하게 유지하고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여 내적인 힘을 길렀다. 헤라가 바뀌길 기대하거나 섣불리 용서하지 않았다. 최고의 목표가 헤라에 대한 복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헤파이스토스는 주변과 교류하며 즐겁게 지내고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대장장이 신으로서의 능력이 아닌 전쟁의 광기, 미움, 분노의 힘이 아레스가 아닌 그에게 부여되었을 것이다.


헤파이스토스의 일화에서 볼 수 있듯이, 편애하는 부모와 경계선을 긋고 적절한 거리를 두는 것만으로도 내면은 점차 회복될 수 있다. 그 틈 사이에서 불행의 귀책사유를 치밀하게 찾아다니지 않고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것을 놓을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 이러한 방향은 부모의 편애가 끼친 로움에 잠식되지 않게 하여 그 실체를 고요하게 여다볼 수 있는 여유와 힘을 기 수 있게 도울 것이다.





엄마가 나와 인연을 끊자고 말한 이후 나에게 다음과 같은 카톡을 하나 보냈다.

'기운 빠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너를 많이 의지했나 봐. 나는 그래도 네가 있어 든든했어.'


나는 '의지'라는 단어를 '이용'으로, '든든'을 '편하다'는 말로 바꿔 읽어 보았다.

'기운 빠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너를 많이 이용했나 봐, 나는 그래 네가 있어 편했어'

글자 하나만 바꾸면 세상이 달리 보이는 법이다. 


가족이란 언제나 이해와 용서 사이의 어딘가를 헤매야 하는 존재가 다.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의 용서는 독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음을 나는 이해한다.

편애의 사슬이 나를 옮아 매어도 그것을 풀 수 있는 것 또한 바로 나이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나'로서 일어는 연습을 시작해야 할 때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주 보통의 편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