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yu림 Mar 30. 2022

당신의 공감은 안녕하십니까?

편애 안의 나르시시즘


프랑스의 대문호인 앙드레 지드(Andre Gide)는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를 회상하며 책 「오스카 와일드에 대하여」를 썼다. 거기서 그는 오스카 와일드가 나르키소스(Νάρκισσος)에 대해 재해석한 이야기를 다뤘는데,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는 그의 저서 「연금술사」의 도입부에 그 이야기를 가져온다. 그것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연금술사는 대상들 중 한 명이 가져다준 책을 손에 들고 있었다. 표지가 떨어져 나갔지만, 저자 이름은 알 수 있었다. 오스카 와일드였다. 책 이곳저곳을 훑어보던 그는 나르키소스에 관한 이야기에서 눈길을 멈추었다. 연금술사는 나르키소스의 전설을 알고 있었다.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 매일 호숫가를 찾았다는 나르키소스. 그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결국 호수에 빠져 죽었다. 그가 죽은 자리에서 한 송이 꽃이 피어났고,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따서 수선화(나르키소스)라고 불렀다.


하지만 오스카 와일드의 이야기는 결말이 달랐다.

나르키소스가 죽었을 때 숲의 요정 오레이아스들이 호숫가에 왔고, 그들은 호수가 쓰디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대는 왜 울고 있나요?" 오레이아스들이 물었다.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고 있어요." 호수가 대답했다.

"하긴 그렇겠네요. 우리는 나르키소스의 아름다움에 반해 숲에서 그를 쫓아다녔지만, 사실 그대야말로 그의 아름다움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었을 테니까요." 숲의 요정들이 말했다.

"나르키소스가 그렇게 아름다웠나요?" 호수가 물었다.

"그대만큼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나르키소스는 날마다 그대의 물결 위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잖아요!" 

놀란 요정들이 반문했다. 호수는 한동안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있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저는 지금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고 있지만, 그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건 몰랐어요. 저는 그가 제 물결 위로 얼굴을 구부릴 때마다 그의 눈 속 깊은 곳에 비친 나 자신의 아름다운 영상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가 죽었으니 아, 이젠 그럴  수 없잖아요."


우리는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죽은 나르키소스를 나르시시즘의 원형으로 보고 있다. 나르시시즘(Narcissism) 1899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 폴 네케(Paul Nacke)가 처음 사용한 말로서, 전문가들은 나르시시즘 정신적 성숙의 결핍으로 일어나는 자기애성 인격장애라고 칭한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 나르시시즘을 나르키소스가 날마다 들여다보던 호수를 대상 삼아 재해석했다.


이야기 속의 호수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자기애로 가득한 존재이다. 타인을 투영할 수밖에 없는 호수의 입장에서 나르키소스의 눈은 호수 그 자체를 재반사하여 호수의 아름다움을 각인시켜주는 존재였다. 따라서 호수는 나르키소스의 비극에 깊이 공감하여 애도했던 것이 아니라 그의 죽음으로 인해 더는 호수 자신의 아름다움을 할 수 없어서 슬픈 것이다. 아무리 나르키소스가 아름다웠을지라도 호수에게는 그저 거울과 같은 존재였다. 따라서 호수는 다른 상대를 찾게 된다면 언제 그랬나는 듯이 곧바로 눈물을 거두었을 것이다.

이러한 호수의 나르시시즘은 나르키소스의 그것보다 더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르키소스는 자신이 사랑하던 존재가 바로 자기 자신임을 자각하고 절망에 빠져 죽었으나, 호수는 끝없는 나르시시즘을 품고서 또 다른 나르키소스를 기다리며 그곳에 머무를 것이기 때문이다. 공감능력의 부재,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 전가하여 투사하는 능력은 호수의 자기애를 이루는 근원인 것이다.





친정엄마는 나에 대한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내가 아무리 힘들다 말해도 그것에 귀를 막고 눈을 감으며 다른 말을 하곤 했다. 눈앞에 또렷이 드러나는 나의 어려움을 동생과 비교하며 애써 희석시키는 날도 많았다. '너는 그래도 더 낫지, 너는 그래도 더 괜찮지'라는 말은 엄마의 상투어였다. 아무리 괜찮지 않다고 말해도 나의 말들은 허공에서 흩어지는 메아리 같았고, 진심은 결코 엄마의 내면에 닿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자신에게 닥친 나쁜 일들조차 모두 내게 투사해야 속이 시원한 사람이었다. 예를 들어 엄마는 항상 자신의 시댁 이야기를 끊임없이 털어놓곤 했는데, 할머니 댁을 언급할 때 '느그집 식구들'이라고 지칭하였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자신이 결혼을 통해 먼저 선택한 시댁이면서 어찌 모든 것을 내가 끌고 온 잘못인양 왜 매번 '느그집'이라는 명칭을 붙였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느그집 식구들'이 어떻게 자신을 괴롭혔는지, '느그집'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매일 고해성사처럼 들어야 했다. 그렇게 말을 들어주다 보면 결론은 나 또한 '느그집'을 닮아 성격이 예민하고 나쁘다로 끝났다.

그래도 엄마가 가여웠고 엄마를 대신해 싸워주고 싶었으며 엄마의 돈을 아껴주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를 위한 감정의 대나무 숲으로 자라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나의 엄마일 때만 그러한 것이지, 동생의 엄마로서의 엄마는 달랐다. 엄마는 동생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하고 감내하는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였다. 온갖 수고로움과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그의 감정에 따라 웃고 울었다.


동생은 첫 직장을 가졌을 때 동료들 사이에 따돌림을 당해 우울증이 왔다. 엄마는 곧장 서울로 가서 동생과 한 달을 같이 살았다. 그의 몸과 마음을 돌봤고 직장 상사들을  찾아가 선물을 하고 잘 봐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래도 나아질 기미가 없자 단번에 직장을 그만두게 하고는 집으로 데리고 와 몇 달간 동생을 노심초사 돌봐주었다. 그 정성 덕분인지 동생은 곧 회복할 수 있었다. 그 뒤로 엄마는 동생이 우울증에 걸렸던 때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얼마나 불쌍했는지를 절대 잊지 않고 잊을만하면 반복해서 이야기하곤 했다.


몇 해 전 나 또한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그리고 심리상담을 받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고 그럭저럭 우울증이 옅어졌다. 엄마와 거리를 두라는 조언에 따라 전화를 먼저 하지 않았더니, 열흘쯤 뒤에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여보세요, 네. 엄마"

"어? 살아있었네? 나는 니가 죽은 줄 알고"


엄마의 그 말은 마치 비수와도 같았다. 그때의 나는 어린아이들을 보면서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힘을 내던 참이었다. 나는 엉망으로 소리를 지르며 울부었다. 엄마는 당황해하며 전화를 끊어 버렸다.

며칠 뒤 그 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연락을 했더니, 엄마는 내가 잘못 알아들은 것이라면서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나는 상담 선생님에게 조언을 받은 대로 엄마 전화할 때 녹음을 했기 때문에 내가 옳게 들은 것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결코 사과하지 않았다.


상담에서 엄마의 이야기를 했었다고 말을 꺼냈다. 엄마는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그래? 너보고 성격이 나쁘다고 고치라고 하진 않더냐? 나를 이해하라고 하지? 너가 너무 예민하다고?"라고 응수했다. 그리고 우울증은 게으른 사람들에게 오는 질병이므로 내가 더 부지런하게 생활해야 한다는 조언을 아낌없이 해주었다. 내가 밥을 잘 먹지 못해 한 달 사이에 몸무게가 7kg이 빠져도 엄마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몇 주전 엄마의 인연 끊음을 계기로 한 발짝 뒤에서 모든 것을 조망할 수 있는 힘과 여유가 나에게 생겼다.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왔던 엄마의 편애를 면밀히 파헤쳐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공감과 관련된 문제를 찾을 수 있었다. 공감은 타인을 이해하도록 돕는 감정이며, 타인의 감정을 읽고 진심 어린 동감을 표시할 수 있는 능력이다. 따라서 공감능력이 결핍된 사람은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엄마는 동생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풍부한 공감 능력을 내보였지만 나에게는 공감과 이해가 많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아마 선택적 공감 상실증이라는 말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엄마를 이루는 어떤 핵심 요인일지도 모를 일이다.


엄마의 편애 속에 드러나는 선택적 공감능력은 어린 시절부터 수도 없이 나를 찌르고 아프게 하였다. 어린아이였던 나는 엄마가 세계의 전부인 줄 알았으므로 엄마의 나를 향한 공감능력 부족이 이상하다는 자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그것이 옳지 않음을 안다. 공감받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엄마의 감정에 자신을 맡기는 것은 내면을 텅 비게 만드는 것임을 이제는 이해한다. 그 감정에 빠져 원망과 미움으로 삶을 허비하지 않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닫는다.

비록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들판의 풀잎처럼 자랐으나 앞으로의 삶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 그 노력들이 알알이 맺혀 삶 지탱할 수 있게 도울 것이다. 나는 공감의 부재라는 엄마의 나르시시즘에 빠져 끝없이 가라앉지 않으려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칠 것이며, 마침내 호수 위를 기어오를 것이다. 호수를 멀리멀리 벗어나 주변 사람들과 교류하고 공감을 나누며 충분히 나를 존중하고 사랑할 것이다. 혹여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이 손을 내밀면 기꺼이 그 손을 잡아끌어 올려 줄 것이다. 나는 그것이 엄마의 편애부터 나를 자유롭게 하는 첫걸음이라고 믿는다.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하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It is not what one does, but what one tries to do,
that makes a man strong.)

- 헤밍웨이 -



매거진의 이전글 편애의 사슬 밖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