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와 나만 알고 있는 생각
내 안의 반항 DNA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아저씨의 묵직한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나는 칼 모양 엿을 들고 집으로 왔다. 그러면서 나는 조용한 위안을 만들어 낸다. 평소였으면 언제나 꽝이었겠지만 그래도 오늘은 운이 좋아서 1등을 했구나, 비록 잉어를 획득하진 못했지만 분명 1등인 것만은 확실하다. 오징어 게임의 456억을 획득한 거와 다를 바가 없다는 합리적인 긍정을 만들어 내고서 혼자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상황을 인지한 위안이었을까, 반항을 하지도 못한 착각이었을까.
버스를 놓치면 종종 "오늘 운동도 못했는데 잘 됐다. 걸어가지 뭐."라고 생각한다.
시장을 봐 왔는데 썩은 물건을 집어 왔으면 "내가 또 쓰레기 정리해줬네."라는 생각을 한다던가,
원하지 않는 정치인이 당선이 된 것을 보면 "얼마나 엉망인 사람을 당선시켜줬는지 당해 봐야 다음에 뽑지 않지, 잘됐네."라고 읊조린다.
이런 모든 생각들이 착각인지 위안이지 모르겠다.
모든 것은 우주의 섭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좋은 일이던지 나쁜 일이던지 좋게 생각해야만 한다는 강박증인가.
살면서 1등을 해 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 자리에서 나는 잉어가 없는지 보여달라고 했어야 했을까. 아니면 칼만 주면 안 되고 다른 것도 같이 달라고 했어야 했나.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일을 당하면 수긍을 하는 것이 맞는지, 따지고 짚어야 하는 것이 맞는지 아직도 알지 못하겠다. 내키진 않지만 언제나 적당한 타협을 하고 말지만 머릿속으로는 언제나 이게 아닌데,라고 외치고 있다. 아무래도 나는 교통사고가 났어도 "사람 안 다친 것만도 천만다행이야."라는 생각을 죽을 때까지 할 게 뻔하다. 잉어 대신 칼을 받아 오면서도 반항 한번 못해 본 국민학생처럼.
위안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에 평안이 올 테고 착각이라면 평생 착각이라는 걸 모르고 죽어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여름의 초입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이 뜬금없이 떠올라 중얼거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