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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블루스 Jun 11. 2022

착각과 위안

우주와 나만 알고 있는 생각

"그나마 잘 됐어." ,  "다행이야."라는 생각은 착각인가, 위안인가

국민학교 시절로 기억한다.

집에 있어도 너무 무료하고 할 일도 없는 휴일이었고 집과 학교가 가까워서 학교나 가 보자고 나 선 길이었다.

학교 운동장엔 역시나 아이들이 없기는 매한가지였고 황량한 모래바람만 나부끼고 있었다.

실망하여 교문을 나섰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엿 뽑기 판을 벌려 놓고 앉아 있는 아저씨.

나는 원래 사행성이나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놀이 문화는 쳐다도 안 보는 성격인데 어째서 그날따라 엿 뽑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 나도 모를 일이다.

게임의 룰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나무 막대기 몇 개를 숫자가 나열된 판에 요리저리 맞추다가 그날의 1등 번호를 만들어 내는 게임이었던 것도 같다. 1등은 잉어 엿을 주고 2등은 칼 모양 엿을 준다. 런 판에 언제나 꽝만 존재한다는 것이 평소의 나의 생각이었고 한 번도 뭐가 걸려 본 적은 없기에 그날도 기대 없이 엿 뽑기 판을 바라보았는데 거기서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정말 무료했으리라. 그래서 나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뽑기를 했는데 상상도 할 수 없는 1등이 걸리고 말았다. 아저씨도 당황하고 나도 당황.

순간 아저씨는 어린아이에게 해서는 안될 제안을 하나 하게 된다.

"잉어가 없는데 칼로 주면 안 될까, 학생?"

어린아이가 중년의 아저씨에게 어떻게 감히 반대할 수 있을까. 더 군다가 주위에는 나를 증명해주고 보호해 줄 사람 하나 없는 현장이라면 말이다.

세상이 경험하게 한 부조리였다.

내 안의 반항 DNA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아저씨의 묵직한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나는 칼 모양 엿을 들고 집으로 왔다. 그러면서 나는 조용한 위안을 만들어 낸다. 평소였으면 언제나 꽝이었겠지만 그래도 오늘은 운이 좋아서 1등을 했구나, 비록 잉어를 획득하진 못했지만 분명 1등인 것만은 확실하다. 오징어 게임의 456억을 획득한 거와 다를 바가 없다는 합리적인 긍정을 만들어 내고서 혼자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상황을 인지한 위안이었을까, 반항을 하지도 못한 착각이었을까.

버스를 놓치면 종종 "오늘 운동도 못했는데 잘 됐다. 걸어가지 뭐."라고 생각한다.

시장을 봐 왔는데 썩은 물건을 집어 왔으면 "내가 또 쓰레기 정리해줬네."라는 생각을 한다던가,

원하지 않는 정치인이 당선이 된 것을 보면 "얼마나 엉망인 사람을 당선시켜줬는지 당해 봐야 다음에 뽑지 않지, 잘됐네."라고 읊조린다.

이런 모든 생각들이 착각인지 위안이지 모르겠다.

모든 것은 우주의 섭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좋은 일이던지 나쁜 일이던지 좋게 생각해야만 한다는 강박증인가.

살면서 1등을 해 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 자리에서 나는 잉어가 없는지 보여달라고 했어야 했을까. 아니면 칼만 주면 안 되고 다른 것도 같이 달라고 했어야 했나.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일을 당하면 수긍을 하는 것이 맞는지, 따지고 짚어야 하는 것이 맞는지 아직도 알지 못하겠다. 내키진 않지만 언제나 적당한 타협을 하고 말지만 머릿속으로는 언제나 이게 아닌데,라고 외치고 있다. 아무래도 나는 교통사고가 났어도 "사람 안 다친 것만도 천만다행이야."라는 생각을 죽을 때까지 할 게 뻔하다. 잉어 대신 칼을 받아 오면서도 반항 한번 못해 본 국민학생처럼.

위안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에 평안이 올 테고 착각이라면 평생 착각이라는 걸 모르고 죽어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여름의 초입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이 뜬금없이 떠올라 중얼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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