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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블루스 Sep 04. 2022

잔인한 8월이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자신을 내 보이는 것을 못하는 건 아주 오래된 습관이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을 하지 않거나 떨리거나 두려워하는 얼굴을 감추다 보니 때론 굴을 파고 숨어 버리거나 외면해 버리게 된다. 타고난 성격인지 살다 보니 생긴 성격인지 나도 알 수 없다.

언제나 웃는 모습만 보이고 싶고 갈등에 놓여지게 되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고 우독 긴장을 더 많이 한다.

맛없는 음식을 먹는 걸 싫어 하지만 맛없다고 말하면 진짜 맛없는 음식이 될까 봐 더 말로 뱉어 내질 않게 된다.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에서 "상갓집 가는 게 힘들다"라는 대사를 하는 소향기라는 캐릭터를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툭 흘렸다. 외롭고 지치는 순간에도 사람만 보면 자동적으로 미소가 지어지는 캐릭터.

최근에 남편이 종양수술을 받았다.

부부가 아프다는 건 자식이 아픈 것과는 완전 질적으로 다른 의미라는 걸 알았다.

남편이 곧 나였고 나보다 더 큰 존재라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내가 아픈 것보다 더 우울하고 마음이 아펐다.

차라리 내가 큰 수술을 받았다면 담담히 받아들였을 것 같다.

허리가 아팠고 여러 병원에서 검사를 해도 이유가 나오지 않았기에 꾀병이라고도 생각하곤 했는데 척수종양이라는 병명이 나오자 믿기지가 않았다.

참으로 이상했던 건 척수종양이라는 진단을 받자마자 한 달 만에 걷지를 못하게 되기까지 했다.

진단을 받지 않았으면 그렇게 빨리 진행이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증상이 급속도로 안 좋아졌다.

척추뼈를 깎아서 그 속에 자리 잡은 종양을 떼어내는 힘든 수술이었다.

직장 때문에 이틀은 딸아이가 간병을 했고 나머지 8일 정도는 간병인을 고용했다.

중간에 나는 또 코로나에 걸려서 문병 한번 가지도 못했다.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을 하고 퇴원하기까지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인생에서 가장 긴 8월 한 달이었다.

지금은 상처가 아물어서 샤워를 할 정도가 되고 약간의 불편함은 있지만 걷는 것도 문제가 없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한 동지애가 나를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앞선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그동안 나의 정신 상태는 병이라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가 남편의 부재가 서글펐다가,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런가 하는 죄책감이 일었다가 병마에 무너질 수 없다는 오기가 생기기도 하는 오만가지 감정에 둘러싸였다.

아픈 사람은 더 힘들었겠지만 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 힘이 들었다.

도중에 아들이 군대를 가기도 했다.

아들이 군대 가는 건 사실 크게 다가오지도 않을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아려왔다.

나는 그동안 지인들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뻔하디 뻔한 얘길 할 테고 힘든 감정을 토해내고 싶지가 않아서이다.

이런 나를 이상하게 보는 주위의 사람들도 있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조금 덜 아팠다.

아플 때는 잠시 덮어뒀다가 아물고 나서 살펴봐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주변에 나와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 없어서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도 별로 없다.

다만 네가 이해가 안 되지만 그러고 싶다면 어쩔 수없지, 하는 반응들이다.

앞으로도 나는 2022년의 8월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겠지만 편안한 9월을 맞이하게 되어 그저 감사한 마음만 남아있다.

여전히 집에 암환자가 있고 아들이 입대를 한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이보다 더 편안할 수가 없다.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입대한 아들의 방에서 아들이 두고 간 노트북으로 브런치에 글을 작성하고 있는 이 시간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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