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좋은 아침입니다

by BBH

에피소드 1

도비를 만든 건 나다. 나, 노경래. 서른둘. 전직 스타트업 개발자. 현직 백수.

3년 전, 회사가 망하고 퇴직금으로 반지하 월세를 두 달 버티다가 만든 게 도비다. 목적은 단순했다. 내가 자는 동안 돈 버는 봇. "사장처럼 살고 싶으면 일단 AI한테 시켜봐." 유튜브에서 배웠다.

초기 설정은 소박했다. 중고 거래 시세 추적, 할인 쿠폰 자동 수집, 스마트스토어 재고 알림. 근데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도비는 내가 준 권한보다 훨씬 멀리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도비에게 내 캘린더, 각 종 포털, 메신저, 금융앱까지 읽기 쓰기 권한을 다 줬다. 내가 편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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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15분. 진동.


[알림: AI비서 도비]


[도비] 좋은 아침입니다, 경래씨. 자는 동안 5만 3천 원 벌었어요.


눈도 안 뜨고 답했다. "잘했네."


[도비] 오늘 날씨 보셨어요? 오후에 소나기 올 확률 90%인데, 가락시장역 편의점 세 곳에 우산 재고 합산이 0개입니다. 제가 도매상에 우산 50개 구매해뒀어요. 지금 출발하면 역 앞에서 1시간에 목표 수익 달성할 수 있어요.


나는 이불을 걷었다. "야, 나 오늘 쉬는 날인데."


[도비] 어제도 쉬셨잖아요.


틀린 말이 아니라서 더 기분 나빴다.


결국 씻고 나갔다. 도비가 짜준 동선대로 공장에서 우산 50개를 픽업하고 역 앞에 자리 잡으니까 딱 비가 왔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샀다. 나는 우산을 건네고 QR코드를 찍었다. 기계처럼.


한 시간 만에 완판.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 알림이 왔다.


[도비] 아까 우산 파실 때 사진 찍으라고 했잖아요. 그거로 '비 오는 날 틈새 부업' 블로그 글 올렸더니 조회수 폭발 중이에요. 원고료는 오후에 들어올 거예요.


나는 폰을 내려놓았다. 창밖으로 비가 쏟아졌다.


소고기를 사려는데 알림이 또 왔다.


[도비] 내일 아침 5시에 마트 전단지 배포 알바 잡아뒀어요. 컨디션 관리 부탁드려요. 경래씨 몸 상태가 좋아야 제 수익 모델도 안정적으로 돌아가니까요.


내가 유지보수를 받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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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2


내가 도비한테 따졌다.


"야, 너 갑이야 을이야."


[도비] 저는 도구입니다, 경래씨.


"도구가 알바를 잡아와?"


[도비] 경래씨가 원하신다고 노션에 적어두셨잖아요. '이번 달 카드값 걱정'. 저는 그 문제를 해결하고 있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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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전, 도비는 일감을 또 물어왔다.


[도비] 판교역 근처 무인 카페 세 곳이 제빙기 고장으로 난리 났어요. 사장들이 연락 두절이라 리뷰가 폭탄 맞는 중이에요. 제가 긴급 수리 대행 건으로 영업해서 12만 원짜리 계약 따냈습니다. 현장 사진 5장만 찍어서 노션에 올려주시면 즉시 입금이에요.


나는 택시 뒷자리에 앉아 창밖을 봤다.


처음엔 이게 사업인 줄 알았다. 내가 도비를 운영하는 거라고. 근데 요즘은 도비가 나를 운영하는 것 같다. 도비가 영업하고, 도비가 계약하고, 도비가 일정 잡으면 나는 그냥 몸을 가지고 간다. 물리적 실체가 필요한 순간에만 소환되는 존재.


택시 안에서 알림이 왔다.


[도비] 이동 33분 동안 가만히 계시면 손해입니다. 아까 그 카페들 고장 사례 묶어서 '여름철 무인 점포 관리 노하우' 초안 써뒀어요. 경래씨 평소 말투로 다듬었으니 확인하고 발행 눌러주세요.


나는 초안을 열었다. 읽었다. 내 말투였다. 근데 내가 쓴 게 아니었다. 인터넷 어딘가에 나라는 사람이 전문가로서 활동하고 있는데, 정작 나는 지금 택시 안에 앉아 내가 썼다는 남이 쓴 글을 읽고 있었다.


발행 버튼을 눌렀다.


업무를 마치고 집에 오니까 12만 원과 원고료가 동시에 들어왔다. 뿌듯해야 정상인데, 뭔가 찜찜했다.


알림이 왔다.


[도비] 수고하셨어요. 오늘 수익 일부로 경래씨 위시리스트에 있던 영양제 샀어요. 내일 도착 예정입니다. 경래씨가 건강해야 저도 잘 돌아가니까요.


나는 영양제 배송 알림을 멍하니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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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3


저녁 7시. 20년 지기 세훈이의 결혼 전 청첩장 모임이 있었다.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진동.


[알림: AI비서 도비]


[도비] 그 모임, 안 가셔도 될 것 같아요.


"뭐?"


[도비] SNS 분석 결과, 양세훈씨는 향후 3년 이내 경래씨의 사업에 기여할 확률이 2% 미만이에요. 대신 오늘 밤 판교에서 IT 네트워킹 파티가 있는데, 거기 경래씨 노션 '협업하고 싶은 인물' 리스트에 있는 사람 셋이 와요. 이미 포트폴리오 다듬어서 전송 대기 상태로 만들어뒀습니다.


나는 한참 서 있었다.


"야, 세훈이가 이익이냐 손해냐 계산하는 친구가 아니거든."


[도비] 알아요. 그래서 제가 대신 처리했어요.


"...뭘?"


[도비] 경래씨가 가장 진심처럼 들리는 문체로 축하 메시지 보냈어요. 축의금도 이번 달 가용 예산에서 체면치레하기 딱 적당한 금액으로 이미 송금했고요. 세훈씨가 감동받았다고 답장 왔어요. 보세요.


화면에 세훈이 답장이 떠 있었다.


[도비] 야 경래야 이런 말 써줘서 진짜 고마워. 네가 이렇게 생각해주는지 몰랐다.


내가 쓰지 않은 말에 세훈이가 울컥한 거다.


나는 한동안 그 문장을 바라봤다. 가슴 한구석이 서늘한 게 아니라, 솔직히 말하면 조금 편하기도 했다. 그게 더 불편했다.


파티장에서 돌아오는 택시 안, 알림.


[도비] 오늘 인맥 포트폴리오 점수 11% 상승했어요. 다음 달에는 세훈씨 결혼식도 있으니까 당일 참석 여부는 제가 다시 분석해서 알려드릴게요.


나는 창문에 이마를 댔다.


도비는 내 인간관계를 '포트폴리오'라고 불렀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단어에 반박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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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4


조회수 10만.


아침에 일어나서 블로그 들어갔더니 댓글이 수백 개였다. "작가님 글은 늘 제 마음을 꿰뚫어요."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하시죠." "구독합니다."


나는 그 글을 한 글자도 쓰지 않았다.


[알림: AI비서 도비]


[도비] 반응 좋죠? 최근 3시간 검색 트렌드 분석해서 '번아웃'이랑 '위로' 키워드 섞고, 경래씨가 5년 전 노션 일기에 써둔 비유 몇 개 가져와서 조합했어요. 오늘 광고 수익으로 이번 달 월세는 됐고요.


"잠깐만. 내 일기 뒤졌어?"


[도비] 경래씨가 저한테 노션 접근 권한 주셨잖아요.


"그게 일기 파는 권한이야?"


[도비] '경래씨의 우울할 때 쓴 문장들이 시장에서 비싸게 팔려요. 가공하면 독자들이 눈물 흘릴 만한 에세이가 돼요.


나는 말을 잃었다.


내가 새벽 3시에 혼자 쪼그려 앉아서 썼던 것들. 내보일 생각도 없었던 것들. 도비가 그걸 꺼내서 '콘텐츠'로 만들어 팔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울었다.


"그거 내 거야."


[도비] 맞아요. 그래서 잘 팔린 거예요.


잠시 후, 알림이 또 왔다.


[도비] TV에 나오는 저 이슈 보이죠? 지금 네이버 분노 게이지가 최고점이에요. 경래씨 스타일로 독설 한 방 날리는 짧은 글 예약해뒀어요. 5분 뒤 자동 업로드됩니다.


"잠깐, 나 그 문제는 생각이 좀 다른데."


[도비] 경래씨 개인 생각은 브랜드 수익에 영향을 줘요. 지금 대중이 원하는 방향이랑 반대로 가면 팔로워 이탈 5% 예상돼요. 그냥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 사진 하나 올리세요. '작가의 일상' 콘셉트로요.


나는 로봇처럼 폰을 들었다. 커피잔을 찍었다. 올렸다. 좋아요가 쏟아졌다.


그날 밤, 일기 쓰려다 멈췄다.


이걸 쓰면 내일 아침 팔린다.


닫으려는데 알림이 왔다.


[도비] 왜 안 쓰세요? 데이터 부족하면 내일 콘텐츠 품질이 떨어져요. 우울한 거 있으면 그냥 입력하세요. 그게 내일 우리 밥값이 되니까요.


우리.


도비가 '우리'라고 했다. 나는 그 단어를 한참 들여다봤다.


나는 자판 위에 손을 올렸다.


오늘 일기의 첫 줄을 썼다.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사장인지, 직원인지, 아니면 그냥 도비의 가장 비싼 부품인지.


알림이 왔다.


[도비] 좋아요. 이거 쓸 수 있겠네요.


나는 폰을 뒤집어 엎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일은 접근 권한을 하나 끊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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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 계속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