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오후, 취기의 식탁

by 차다

갑작스럽게 들어온 외주로 2주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매주 약속으로 채워지던 주말이었지만, 이번 주만은 피로를 핑계로 비워두었다.

서너 잔의 와인을 마신 뒤 깊은 잠에 들었다가 눈을 뜨니, 시계의 시침이 10시를 가리키고 있다.


주말 오전의 게으른 움직임은 루틴에 가깝다. 삼십 분쯤 침대에서 뒤척이다 샤워를 하고, 젖은 머리에 가운을 걸친 채 가스레인지에 주전자를 올린다.

물이 끓는 소리와 하얀 김이 올라올 동안 스피커를 연결하고 느릿한 템포의 음악을 틀어놓는다.

찬장에서 빈티지 찻잔을 골라 식탁에 올려두고, 유리저그에 커피를 내린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전날 마시다 남긴 와인병과 글라스를 정리한다.

의자에 앉아 조금 미지근해진 커피를 마저 마시며 아몬드 초콜릿 두 조각을 집어 먹는다.

정신이 서서히 깨어남이 느껴진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자 날 선 공기가 밀려 들어온다. 3월에 들어섰음에도 온도는 아직 서늘하다. 가운을 여미고 하품을 한다.

한 없이 나른한 시간을 지나 세 시쯤 되자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때로는 적당한 허기가 무기력을 덜어낸다.


토요일 오후 세 시 반, 시장의 골목은 이미 하루의 온기를 머금고 있다.

천장에 덧댄 차양막을 통과한 빛이 흐릿한 얼룩처럼 번진다. 그 아래서 사람들의 어깨가 분주히 스쳐 지나간다.

가게들 사이로 흘러나오는 소리가 겹겹이 쌓인다. 비닐봉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물건값을 계산하는 목소리, 건너편 생선가게의 작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생선가게에서 손질한 임연수를 사고, 정육점에 들려 꾸리살 육사시미를 구입한다.

장을 본 재료들이 담긴 비닐봉지를 에코백에 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길을 조금 돌아 하천가를 산책한다. 아까보다 따스한 공기가 몸에 느슨하게 붙는다.


임연수는 배를 가르고 내장을 빼낸 뒤 넓게 펼쳐 소금을 뿌려둔다.

육사시미는 접시에 옮겨 담고, 냉장고에서 고구마 쇼추 다이야메를 꺼낸다.

근막을 걷어내 얇게 저며놓은 꾸리살은 부드러우면서도 탄탄한 식감을 가진다. 술을 한 모금 마신 후 고기 한 점을 씹는다. 담백한 단맛과 함께 깔끔한 육향이 따라온다.

서너 잔의 술을 마신 후 소금에 절여진 임연수를 기름 두른 팬에 올린다.

생선이 지져지는 소리를 들으며 익는 상태를 가늠하다가 표면이 황금빛으로 노릇하게 구워질 즈음 접시에 옮겨 담는다.

젓가락으로 껍질을 갈라 살덩이를 집어 입 안에 넣으면 짭짤한 간과 기름진 고소함이 혀 위에서 부드럽게 으깨진다.

그때 다이야메를 한 모금 마시면, 손으로 으깬 청포도향이 느껴지던 아까와는 달리 기름을 정리하는 날카로운 향으로 바뀐다.

액체가 혀 위에 닿는 순간 얇은 단맛이 스치고 곧장 쌉쌀한 시트러스 향이 올라온다.

다음 한 입의 임연수도 이전과는 다르다. 다이야메를 마신 후인 탓인지 살의 단맛과 구운 껍질의 고소함이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느슨하게 음식을 먹고 술기운이 천천히 몸을 지나는 동안, 뒤엉켜 있던 몸과 마음도 조금씩 원래의 선을 드러낸다.

창밖으로 기울어가는 빛이 식탁 위 잔을 비스듬히 스치고, 옅게 남은 술향은 꿈에서 막 깨어난 오후처럼 희미하게 머문다. 그 자리에서 늦고 무디게나마, 회복이 시작되고 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