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킬라와 한 권의 책

by 차다

6개월 만에 전화를 한 D는 금남시장이라는 생소한 동네에서 약속을 잡았다.

고개를 돌리자 소파 옆 협탁에 놓인 책이 눈에 띈다. D가 십여 년 전에 집필한, 지금은 절판된 책. 그는 마지막 남은 한 권을 내게 빌려주었다. 원래라면 오늘 돌려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책을 손에 들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가방을 들고 현관문을 열었다.


시장의 좁은 길목을 한참 헤매서야 허름한 입구를 발견했다. 검은 철제문이 달린 건물에는 간판도 없이 작은 입간판 하나가 전부였다. 노란색 입간판에는 정직한 글씨체로 가게 이름 아래에 ‘멕시칸, 타코, 와인, 데킬라’라고 쓰여있다.

문을 열자 외관과 마찬가지로 내부는 무척이나 좁다. 여섯 명 남짓 앉을 수 있는 바 테이블이 전부이다. 회색 벽에는 붉은 꽃과 해골 문양이 페인팅되어 있고, 라탄 조명이 은은한 빛을 뿌리고 있다.

화려한 꽃무늬 셔츠를 입은 사장님이 넓은 등을 내보인 채 토르티야를 굽고 있다. 테이블과 싱크대 사이는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날 수 있는 간격이라, 주방과 손님 사이에 경계가 없다. 구수한 옥수수 향이 그대로 코로 스며든다.

구경을 하고 있는 나를 향해 D가 테이블을 톡톡 치며 말했다.

“원한다면 사장님이 타코와 어울리는 데킬라도 알아서 내주셔.”

“너무 좋은데? 그렇게 하자.”

첫 번째로 나온 음식은 피쉬타코와 데킬라 라 카바이다.

동그란 또르티야 위로 그린드레싱, 방풍나물장아찌, 할라피뇨, 생대구 튀김이 층층이 올려져 있다.

탄성을 내뱉으며 D에게 말했다.

“와, 나 생선타코는 처음이야.”

“실망하지 않을걸?”

타코를 한 입 베어 물자 바삭하게 튀겨진 대구살이 입 안에서 으깨지고 살사와 장아찌의 짠맛과 신맛, 할라피뇨의 알싸한 맛이 어우러진다. 튀김의 고소함은 갈수록 옅어지고 쌉쌀한 초록 잔향이 입안에 머문다.

여운이 가시기 전에 앞에 놓인 라 카바를 한 입에 들이킨다.

액체가 혀에 닿는 순간 레몬 껍질을 비틀어 짜낼 때의 향이 먼저 튄다. 곧바로 알코올이 목으로 내려가며 기름막을 쓸어내고, 남아 있던 산미와 허브 향이 또렷해진다. 뒤이어 흰 후추 향이 미세하게 코끝을 스친다.

“이 수프는 타코를 찍어 먹어도 되고, 곁들여서 떠먹어도 돼요.”

나무 그릇에 담긴 수프를 가리키며 사장님이 말했다.

비리아 타코와 함께 페어링 된 데킬라는 1800 레포사도다. 코를 가져다 대자 단향이 먼저 느껴진다.

수프에 깊게 적셔 타코를 한 입 베어 물자 매콤한 소스와 양고기의 기름, 모짜렐라의 부드러운 고소함이 풍성하게 엉겨 붙는다. 바닐라, 캐러멜 같은 오크 숙성향이 양고기의 고소함을 한 겹 더 두껍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서빙된 술은 에라두라 레포사도 데킬라다.

한 모금 마시자 드라이한 나뭇결이 스치며 입안의 맛을 정리하고 스파이스함과 아가베의 은근함만이 남는다.


데킬라는 빠르게 식도를 타고 넘어가고 그 속도만큼 대화의 공백도 지워진다.

D가 궁금증을 담은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내가 빌려준 책, 다 읽었어?”

“진작에 읽었지. 마지막 몇 페이지만 빼고. 돌려주기 싫어서 일부러 미루고 있어.”

작게 웃은 D가 나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사실 되돌려 받는 거 포기하고 있었어.”

“그래도 돼? 작가가 소장한 유일하게 남은 본인 책이잖아.”

“주변에 가지고 있을 만한 사람들 수소문해 봐야지. 그래도 너한테는 그 책 주고 싶었어.”

이런 과분한 물건을 받아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의 책을 읽으며 꽤 많은 페이지에 포스트잇으로 리뷰를 남겨뒀다. 돌려받을 일이 사라졌으니 D는 영영 포스트잇에 남겨진 메시지를 보지 못할 것이다. 대신, 내 문장 어딘가에 그가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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