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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물 요리와 내추럴와인

by 차다

나 잠깐 한국 들어왔는데, 오늘 시간 괜찮아?

응. 퇴근 이후에는 별일 없어.

좋아, 그럼 7시로 식당 예약해 놓을게.


3년 만의 연락이었다.

K와 알게 된 지는 14년이 되었다. 기억 속에서 그의 존재감이 희미해질 즈음이면 이렇게 연락이 오곤 했다.

예약한 식당은 약수의 상권을 벗어나 주택가의 골목 끝, 인적이 드문 빌라 1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문을 닫는 순간, 외부의 빛이 완전히 끊겼다. 야외와는 확연히 다른 낮은 조도의 조명 아래 장식이 최소화된 블랙톤의 절제된 인테리어가 시야를 채운다. 좌측에는 거대한 와인셀러가, 우측의 오픈 키친에는 푸른빛 수조 속 활어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중앙의 테이블에 말끔히 다림질된 짙은 회색 수트를 입은 K의 옆모습이 보인다.

발걸음 소리를 들은 K가 고개를 들어 인사했다.

“왔어?”

“여기 좋다.”

“네 취향은 진작 알고 있지.”

K가 새삼스럽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식당은 해산물을 메인으로 한 와인바이다. 메뉴에는 이국적인 요리가 가득했고, 그중 타이 세비체와 X.O 가리비찜, 프랑스 루아르 안주 지역의 내추럴와인 Les Gâts를 주문했다.


중부유럽의 지사에서 근무하는 K는 평소 연락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근황을 알기 어렵다. 14년의 인연에도 불구하고 그간 만난 횟수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그에게선 언제나 익숙한 편안함이 느껴진다.

턱을 괸 채로 미간을 찌푸리며 K에게 말했다.

“항상 뜬금없는 타이밍이야. 알고 있지?”

“자주 연락하면 귀찮아할 테고, 더 늦으면 얘가 누구였더라 할 것 같아서.”

“여전히 눈치가 빠르네.”

“그래서 아직도 연락하는 거 아냐?”

“그건 맞지.”

와인과 세비체가 먼저 테이블에 올려졌다.

얇게 썰린 광어의 식감은 단단하면서도 매끄러웠고 그린칠리 드레싱의 매운맛을 코코넛 크림의 단맛이 중심을 잡아준다. 라임잎과 딜, 고수의 향이 산뜻하게 입안을 맴돌았다.

와인잔을 들고 코끝에 대자 옅은 오렌지빛 액체에서 날카로운 시트러스향이 느껴진다.

한 모금을 머금는다. 스치듯 지나가는 꽃 향과 산미가 세비체의 맛과 맞물리며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한다.

뒤이어 나온 X.O가리비찜은 작은 조개껍질들로 장식되어 있었고, 두 개의 가리비 위로 소스에 적신 버미셀리와 관자, 마늘칩, 고수가 풍성하게 올려져 있다.

탄력 있는 관자는 씹을수록 단맛이 오르고 조개 육즙과 소스를 머금은 버미셀리와 고수가 입 안을 자극적인 감칠맛으로 뒤덮인다.

오픈한 지 30분 정도가 지난 와인은 날카로움이 조금 무뎌지고 감귤 껍질의 쌉쌀함이 드러난다. 농축된 해산물의 향은 어느새 허브와 과일향으로 차분히 정리되었다.

감탄을 내뱉으며 K에게 말했다.

“와, 어떻게 이렇게 내 취향인 곳을 찾았어?”

“이국적인 해산물이면 네가 싫어할 리 없잖아.”

“우리, 자주 만나지는 않잖아. 그런데 가끔 보면 누구보다 내 취향을 잘 아는 거 같아서 신기해. 날 보면 어떤 느낌이야?”

고민이라기엔 짧은 몇 초간의 침묵 뒤에 K가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상대가 누구든 다른 사람과 비슷한 부분을 찾아내는 재주가 있는데, 너는 아무도 떠오르지 않아.”

“그게 뭐야?”

“음. 다르게 비유하자면 흑백 속 네온사인.”

“칭찬이야?”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야.”

K가 눈썹을 까닥이며 웃었다.

시간이 지나며 와인은 미묘하게 다른 맛과 향을 띤다. 직선적이던 산미는 가장자리로 넓게 퍼지고, 과일즙의 맛은 껍질 쪽에 가까워진다. 옅은 꽃향은 뒤로 물러나고 묵직한 여운이 길게 남았다.

나는 어쩐지 내추럴와인과 K가 닮았다고 느꼈다.

그 말 대신 K에게 말했다.

“듣기 좋은 말이야. 다음에 만날 때는 더 분석해 줘.”

“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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