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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Mar 13. 2024

그래서 그들 이야기를 쓴다

쓰지 못한 말들-글쓰기 그 미친 희망

내가 생각하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 것인가의 문제에 봉착했을 때 돌파구를 마련해 준 것이 글쓰기였다. 매일매일 빠짐없이 글을 쓰는 작가들을 듣거나 볼 때면 새삼 존경스럽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 쓰지 못한다. 게으름이다. 내일은 바쁘니 다음날 쓰자고 한다. 핑계다. 이런저런 이유를 그럴듯하게 들이밀어 보지만 그 모든 것이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다 보면 때로는 글쓰기가 미궁에 빠지기도 하고 탄력을 받기도 한다. 미궁에 빠질 때는 전체 글에 대한 맥락을 놓치고 샛길로 빠지기 때문이고, 탄력을 받을 때는 앞뒤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쓰는 때다. 물론 수정은 불가피하다. 그래도 쓰는 게 어딘가. 다만 적절한 원고료를 받고 글을 써야 할 때는 종일 노트북과 씨름한다. 마감 시간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한창훈 작가는 『나는 왜 쓰는가』(교유서가, 2015년)에서 이렇게 말한다.      


왜 쓰는가, 이런 거 물어보는 거 아니다. 글쎄 왜 쓸까. 당장 대답하기 좋기로는 원고료 때문이다. 이거 틀린 말 아니다. 원고료 없으면 쓰지 않는다. 내가 일기를 쓰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원고료가 없기 때문이다. (중략) 그런데 이렇게 대답하면 성의 없다고 할 것이다. 이것도 맞다. 정확히 말해보면 쓰는 행위가 먼저 있다. 왜 쓰는가에 대한 대답은 뒤에 생긴다. (중략) 내 주변의 기록이다. 나는 섬에서 태어나 언어를 배우고 정서를 얻었다. 지금도 그 섬에 살고 있다. 작가는 고향을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은 변방이다. (중략) 그래서 그들 이야기를 쓴다.       


내가 살고 있는 곳도 지방이다. 연예인도 없고, 유명한 인사도 없다. 그저 흘러가는 일상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있다. 그도 그런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폐암 투병 중이었다. 얼마 전 병원 치료를 받고 돌아와 집에 있는 중이라 했다. 거실로 들어가니 마스크를 쓴 채 소파에 앉아 있던 그가 반갑게 맞아준다. 거실에는 소파와 의료용 침대가 있다. 그는 하루종일 마스크를 쓴 채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거나 창밖을 바라본다. 창밖에는 석면이 포함된 광석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원래 머리숱이 없는 것인지 항암치료로 인해 머리숱이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퀭한 눈빛의 그는 자신의 지난한 과거를 이야기할 때만큼은 환해 보였다.


흔히 광부라 하면 석탄 광부를 떠올린다. 내가 만난 사람은 석면광산에서 일했던 광부들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광부들은 석면폐증을 안고 살아간다. 진폐증과는 다르다. 진폐증은 허파에 먼지가 쌓이는 병이고, 석면폐는 폐에 들어간 석면이 폐기능 장애와 폐암으로 이어지는 병이다. 석면폐 환자들의 폐를 엑스레이 촬영하면 하얀 점 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 이 덩어리가 석면인데 더 이상 커지지만 않으면 된다. 약도 없다. 기침이 심하면 기침약을 먹거나 진통제가 전부다. 그저 정기적 검사를 통해 크기가 커지지 않았는지만 확인한다. 석면광산에서 일했던 광부들은 그래서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S씨는 열여섯 살에 사문암을 기계로 제분하는 일을 했다. 스물한 살 군대를 가기 전까지는 사석을 운반했다. 2011년 석면폐 2급을 판정받았고 2015년 폐암이 발생했다. S씨의 부인과 모친, 동생도 석면폐 3급 판정을 받았다. S씨는 석면피해구제법 제정을 위해 국회를 수없이 다녔다. 상여도 매고 국회의원들도 쫓아다녔다. 국회에 갈 때면 S씨가 거주하는 지역의 정보과나 수사과에서 가지 말라고 옷자락을 잡기도 했다. S씨는 말했다. 그럼 나 고쳐 달라고, 그럼 가지 않겠다고 말이다. 앞장서 데모만 하지 말라는 말만 돌아왔다. 그리고 2010년 석면피해구제법이 제정, 2011년부터 석면폐, 폐암, 악성중피종 3개 질병이 공식적인 석면질환으로 지정되었다. 이에 근거해 구제급여를 받지만 석면폐 1급과 폐암은 유효기간이 5년이다. 그러나 석면폐 2급과 3급은 구제급여를 한 번 받고 나면 다시 받을 수 없다.  


폐암 판정을 받은 S씨는 월 154만 원의 구제급여를 받았다. 치료를 위해 20일 동안 입원하면서 1200만 원의 병원비를 지불했다. 그들의 요구는 단순했다. 진폐증 환자처럼 석면피해자들도 평생 먹고살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석면피해자로 인정받아도 보상 기간이 정해져 있으니 실질적인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S 씨 부인이 음료수를 건네준다. 마스크를 내리면 안 될 것 같았다. 시원한 캔커피를 손에 꼭 쥐고 있으니 땀이 배었다. 어느덧 점심시간이었다. S 씨가 갑자기 밥을 먹으러 나가야 한다며 일어섰다. 오늘 칼국수를 먹고 싶다고 했다. 환자가 먹고 싶은 게 있다는 사실이 반가워 벌떡 일어났다. 얼른 가시라고 했다. 밖으로 같이 나왔다. S씨는 살살 운전하면 아직은 할 만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주택 앞 여기저기 놓인 광석을 자동차 키로 긁어 보이며 이것이 석면줄이라고 일러준다. 아직도 사문석과 함께 살아가는 S씨였다.


일제강점기 군수물자를 생산하기 위해 조성되었던 석면광산은 이후 1970년대 새마을사업으로 다시 한번 호황을 맞았다. 지붕개량을 하며 슬레이트를 생산하기 위해서다. 슬레이트판에 돼지고기를 구워 먹으면 기름기가 쏙 빠져 맛있게 먹기도 했다. 하루종일 석면가루를 뒤집어쓰고 일하는 광부들에게 슬레이트판에 구운 돼지고기와 막걸리는 고단한 노동에 대한 위로였다. 


그래도 석면피해구제법을 제정하기 위해 싸우러 다녔을 때가 좋았다고 말하는 S씨를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 나는 진심으로 그가 조금만 덜 아프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그를 만나고 6개월 뒤 나는 S씨의 죽음을 전해 들었다. 


나에게 이곳은 지켜야 할 고향은 아니다. 어쩌면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이곳에 머무는 동안 변방 혹은 지역의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면 그들이 풀어낼 마땅한 장이 없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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