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후기-평범함을 먹는 저녁

by 김보리

그와 이야기하는 동안 마치 서른여덟 살의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었다. ‘저 때는’, ‘그때는’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해서다. 흔히 ‘라떼는 말이야’라는 신조어는 오십 대가 하는 말로 알았다. 이십 대 청년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라니. 도대체 세상은 어떤 속도로 변해가는 것일까.


스물두 살, 그해 여름은 물에 젖은 수건 같았다. 도로 위에는 미처 날아가지 못한 수증기가 가득했다. 그와는 아랑곳없이 옆에 있는 사람과 몸을 더 밀착했다.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함성이 되었다. 아지랑이를 밟으며 조금씩 앞으로 걸어갔다. 눈앞에는 백골단이라 부르는 검은 무리의 사내들이 있었다. 우리는 잠시 마주 보았다. 너와 나는 다른 청춘이었던가.


그런 생각도 잠시, 머리 위로 하얀 연기가 매캐한 냄새를 날리며 퍼져 나갔다. 누군가는 입을 막고 도망쳤고, 어떤 이는 돌을 던지며 앞으로 나아갔다.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급하게 들어간 미용실 의자 밑에 잠시 몸을 숨기기도 했다. 전경들의 군화 소리가 멀어질 즈음 다시 밖으로 나가 대열에 합류했다. 정부가 말한 불순세력인 우리들은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존재였다.


스물한 살의 박종철이 탁 치니 헉하고 죽었고, 스물두 살의 이한열이 최루탄 파편에 맞아 생을 마감했다. 거리에는 피꽃이 분연하게 흩어졌다. 우리는 <아침이슬>과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던지기 좋게 큰 돌을 쪼개 짱돌을 만들었다. 누군가는 죽어간 청년의 이십 대를 애도하는 춤을 췄다. 사무실에서, 절에서, 성당에서, 택시에서 내린 이들이 길거리에서 함성의 파도를 이뤘다. 최루탄, 사과탄, 물대포 앞에서 흩어졌다가 다시 모였다. 우리들이 사라진 거리에는 짱돌만이 남았다.


모두가 떠난 자리, 나는 교정 뒤편 벤치에 앉아 김민기의 <두리번거린다>를 읊조렸다. 바람 부는 처음을 알고파서 말없이 찾아온 친구 곁에서, 교정 뒤안의 황무지에서 두리번거렸다. 그 시절 나에게 어른은 ‘시대’였다. 어수선했지만 명확함을 갈구했고, 시끄러웠지만 조용한 평화를 소망했던 시대를 지나며 내 소란했던 청춘이 조용히 내 곁을 떠났다.


35년이 지났다. 나는 그저 그런 어른이 되었다. 먹고살기 위해 아등바등했고, 촘촘하게 다가오는 미래에 안절부절못했다. 나에게 더 이상의 절박함이나 간절함은 없었다. 오늘이 내일이고, 내일이 그날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시간時間이 나의 시계視界를 좀먹어 갔다. 어쩌면 몹시도 절박하고 간절함을 구하는 것이 지금의 어른인지도 모르겠다.


2022년 11월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에는 작고 왜소한 노인, 김장하 선생이 있다. 경남 진주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명신고등학교를 건립하고, 진주신문 등 사회단체에 후원하며, 경제적인 문제로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내주었다. 2022년 6월 60여 년을 운영한 남성당한약방 문을 닫았다.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얼마나 많은 돈을 기부했냐는 질문에 선생은 답하지 않는다. 입을 굳게 다물었으나 화가 나거나 민망한 표정은 아니었다. 그저 뭣 하러 그런 걸 묻느냐, 나는 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1~2분 정도의 침묵이 화면을 압도했다. 다른 장면도 있다. 한 우익인사가 김장하 선생에게 전화해 빨갱이라며 욕을 내뱉었다. 선생의 얼굴에 미세한 표정의 변화도 없다. 끊겠습니다,라는 말 한마디가 전부다. 장학금을 받아 공부한 학생들이 돌아와 그와 마주 앉았다. 도움을 받았지만 특별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말에 선생은 말한다.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는 거다.”


그를 만나고 돌아온 저녁, 나는 평범함을 식탁 위에 올리고 혼자 밥을 먹었다.

이전 05화4. 평범한 어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