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십사 분 뒤에 도착한다고 한다. 카페 안은 훈훈하다. 카페 입구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다. 삼십대로 보이는 남자가 반려견을 안고 카페로 들어온다. 커피를 주문하는 동안 반려견은 주인 품에 조용히 안겨 있다. 커피를 받아 든 남자가 반려견을 바닥에 내려놓자 요란스레 몸을 떤다. 잠시 후 이십 대 남성이 혼자 들어와 음료를 주문하고 노트북을 열고 앉는다. 통창 밖에는 요구르트를 판매하는 아주머니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바람을 맞고 있다. 카톡 프로필 사진 속 너의 얼굴을 본다. 동그란 얼굴에 칠흑 같은 눈동자의 너가 미소를 머금고 있다. 똑같은 얼굴의 너가 유리문을 열고 들어온다. 오늘 아침 퇴근했다는 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 전공하고 지금은 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복지사로 일하고 있어요. 2년제 나오면 사회복지사 2급 나오고 1년 경력이 있어야 시험 볼 수 있어서 지금 준비하고 있어요. 제가 있었던 원에 2명 정도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언니 오빠들이 있었거든요. 근데 사회복지 쪽에서 일을 안 하고 다른 쪽으로 진로를 많이 틀었어요. 그래서 제가 사회복지 전공한다고 했을 때 선생님들이 조금 우려의 말을 했어요. 너희가 가까이에서 봐서 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사실 각오는 했지만 진짜 쉽지 않더라고요. 원래 잠을 잘 자긴 했거든요? 근데 일하면서 잠이 많이 줄긴 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들이 우리 부모가 아닌데 부모처럼 대해주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느껴져서 나도 내 동생들 돌보는 마음으로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막상 해보니 너무 어렵고 그 마음이 자꾸 무너지는 것 같아요. 자꾸! 정말! 지금은 방학인데 학교 다닐 때는 애들 하원 전 시간이 너무 떨려요. 제가 지금 일하는 시설에서는 6살이 가장 막내예요. 몸은 큰데 생각이나 행동이 너무 어려서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더라고요. 요즘 ADHD 증상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많아요. 검사를 해보지 않았을 뿐이지 거의 다 갖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 일하는 데서도 절반 이상이 그 약을 먹어요. 저 어렸을 때 생각하면 이 정도까지 많지는 않았는데 약 먹는 친구들이 과반수 이상이니까. 제가 퇴소할 즈음 새로운 친구들이 들어오면서 그 친구들이 약을 먹더라고요.
2024년에 퇴소했어요. 여기 이 지역에서 대학을 다녔고 그때는 룸메이트랑 같이 살았는데 오로지 혼자 사는 건 아직 일 년이 안 됐어요. LH 임대주택이 먼저 되어서 3월 9일에 여기에 왔고 퇴소는 14일에. 집 구하기 전에 자립 선생님이나 강사님을 초청해서 교육을 많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도 막상 나오려니까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이것저것 엄청 물어봐요. 집 구하는 것도 자립 선생님과 했거든요. 지금 사는 집은 분리형 원룸으로 10평 정도. 신축이고 내 공간이 생긴 거라 처음에는 좋았는데 생활하면 할수록 조금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최대 10년까지 계약을 연장할 수 있는데 이 집에 더 있어야 하나 그런 고민도 들더라고요. 임대주택이 LH에서 미리 사놓고 우리한테 보여주는 거라 다 안 보여주긴 하더라고요. 무슨 동을 원하냐고 물어봐요. 그래서 무슨 무슨 동 원한다, 다른 동 더 있냐 물어보면 다른 동까지는 할 수 없고 3개에서 4개 정도 볼 수 있다고. 그래서 제가 집을 4개 정도 봤거든요. 가장 괜찮았던 집이 지금 사는 집이고 엄청 열악한 데도 있고 천차만별이죠. 냉장고나 에어컨이 없었던 데도 있고 원룸촌에 있는 원룸 같은 곳도 있었고.
저는 처음에 퇴소 안 하고 경기도에 위치한 장애인복지시설에 취업했다가 너무 힘들어서 딱 한 달 하고 내려왔거든요. 다시 원에 돌아와서 지역에 있는 청소년 시설에서 잠깐 일했어요. 다들 졸업하면 바로 퇴소하는데 취업했는데도 시설에 소속을 두고 있는 사람은 제가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눈치는 보였는데 마음의 준비가 아직 덜 돼서 조금 늦게 퇴소하고 싶다고 했어요. 이곳에 일자리를 알아보고 선생님께 이제는 퇴소해도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죠. 근데 그 전환점이 뭐였냐면 청소년 시설에서 일하면서 원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어느 순간 이제는 혼자 살아도 되겠다는 확신이 갑자기 들었어요. 특별한 이유나 계기는 없었어요. 그냥 그게 아침 출근길에 딱 들었거든요? 그날 퇴근하자마자 바로 선생님께 말씀드렸고 선생님도 알아보자고 해서 한 달도 안 돼서 바로 여기로 왔어요. 퇴소하고 나면 자립수당이 나오긴 하는데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거는 돈이야 모을 수 있는 거지만 내 미래를 위해서는 돈이 우선이 아니라 자립을 먼저 하는 게 낫겠다 해서 나왔던 것 같아요. 뭐 그 돈 없다고 내가 못 사는 건 아니니까.
퇴소하기 전에 자립 훈련을 나가거든요. 처음 1단계는 2박 3일, 2단계는 3박 4일 그리고 마지막 4단계는 일주일 이런 식으로 하는데 저는 한 달 정도 있었거든요. 제가 있던 층은 6층이었고 2층 사무실에는 선생님이 있어요. 거기서 진로 교육과 취업 컨설팅도 받으면서 자립에 대해 준비해요. 진로에 관해서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을 스토리텔링해서 만들어 보는 거죠. 제가 사회복지를 전공했다고 하니까 그게 연이 되어서 장애인복지시설에 취업하게 됐었거든요. 그때는 경기도도 완전 처음이었고 3교대이긴 했는데 육체적 피곤함도 있지만 정신적으로 힘든 게 더 크니까. 육체적 힘듦을 배제하고 쉬는 날은 항상 원에 왔었거든요. 그래서 길에서 버린 시간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올 때마다 선생님들이 걱정하시더라고요. 조금 피곤하지 않겠냐, 그냥 거기서 쉬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쉬는 게 마음이 더 편해서 오는 거라고 말씀드렸고 선생님들도 이해해 주셨어요. 그렇게 다니다가 안 되겠다 싶어 정리하고 내려왔거든요. 그때 거기서 일하면서 제가 충격을 받았던 게 선생님들이 생각보다 되게 다 드세시고, 제가 보기에 아이들 앞에서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선생님들끼리 대화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만두고 내려왔어요.
원에서 이사하던 때가 생각난다고 한다. 1톤 트럭을 불렀다. 기숙사에도 있고 나갔다 들어온 시간이 있어 짐이 조금 늘었다.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 탓이기도 하다. 트럭 하나를 꽉 채웠다. 선생님과 동생들에게 인사한다. 18년의 기억은 차마 싣지 못한다. 이 공간, 이 사람들과 영원한 이별이 될 것 같아서다. 기사 옆 보조석에 앉는다. 사이드미러 속 선생님이 휴대전화를 들고 있다. 딸 보내는 마음이 든다며 차 번호 찍었으니 도착하면 전화하라는 문자 알림이 온다. 휴대전화를 가슴에 품는다. 나만의 첫 공간으로 이동하는 100여 분 동안 전방을 주시한다. 운전석 기사님의 말이 왼쪽으로 들어와 오른쪽으로 빠져나간다.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가슴속 의문에 뜬금없이 생목이 오른다.
2024년 3월이면 나도 그때 이사를 했다. 7년 동안 거주했던 단독주택에서 빌라로 이사했다. 세입자는 언제든 이사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한다. 서럽거나 아쉬운 마음 같은 것은 없다. 혼자 이사하는 일은 그저 피곤한 노동이다. 각종 공과금과 잔금 처리, 이삿짐을 운반해 주는 기사님과의 소통까지 모두 혼자 해야 한다. 1톤 트럭 두 대를 꽉 채우고 차로 10분 거리의 빌라에 도착한다. 이사 비용을 처리하고 나니 다시 혼자다. 나만의 속도로 이삿짐을 푼다. 너의 첫 이사와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이사를 반복하고 있는 나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나는 왜 애써 너와의 접합점을 찾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