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저에 대한 커트라인이 되게 높거든요? 그게 뭐냐면 저는 사춘기를 안 겪었어요. 그래서 선생님들이 어느 순간 학교에서 대회가 있으면 지수는 당연히 상 타 올 거야, 지수는 당연히 잘할 거야, 성적 당연히 높아, 이런 기대감이 있었어요. 한 번은 선생님에게 왜 저는 항상 잘해야 하냐고 했어요. 그게 힘들었어요. 원래는 속 얘기를 잘 안 하다가 자립 선생님에게 처음으로 소리를 치면서 얘기했었거든요. 선생님들의 그 기대감이 부담으로 다가온다고 말했어요. 그 뒤로는 그런 기대의 말들이 조금 줄었어요. 그러면서 생활하기 편해졌지 전에는 부담으로 생활했었던 것 같아요. 조금 등 떠밀려서. 원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저는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항상 말리는 입장이었어요. 제가 있었던 시설 원장님은 무조건 아이들 편이에요. 그게 원내 생활 아동이었을 때는 되게 좋았거든요? 무슨 말을 하든 그냥 믿고 지지해 주신단 말이에요. 근데 지금은 제가 생활복지사 입장이잖아요. 그러니까 선생님들도 조금 힘들긴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반대로 두 가지 입장을 다 겪어 보니까. 약간은 선생님들 말에 더 귀를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긴 하더라고요.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지역아동센터에서 실습했다고 한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살았기에 다른 현장은 뭔가 다르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이들이 머무는 시간이 짧을 뿐이지 현장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시 그 현장에서 일하는 마음은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남자 아동을 맡고 있다는 너는 5명의 아이를 모두 정서적으로 보살피는 일이 조금은 어렵다고 한다. 시설 원장님과 상담을 자주 하지만 인력을 보충할 수 없는 현실적 문제도 있다. 남자아이들이다 보니 치고받고 싸우고, 잠깐 한눈을 팔고 있으면 어느새 주먹다짐이다. 가장 막내가 초등 1학년이 되었다. 힘이 장사라 평화로운 날이 별반 없다. 생활복지사 일과는 3교대로 이뤄진다. 매일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체크하고, 건강 상태를 확인하며, 교우관계 및 감정까지 보살펴야 한다. 거기에 시설 내 각종 행사, 아이들 생일, 후원 행사 등도 챙긴다. 단체생활에 익숙하지만 시설에서 직장인으로 일하는 마음은 조금 다른 경험일지도 모른다. 너에게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지 묻는다.
알바 경험은 진짜 필요한 거 같아요. 대학생 때 시청 알바했었고, 스케이트장이나 해수욕장 같은 데서는 방송실에서 일했어요. 분실물 안내나 미아 방송 같은 거.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는 카페에서 알바 해 봤어요. 원에서 바리스타 자격증 프로그램이 생겨서 신청했는데 거기 강사님이 카페 사장님이셨던 거죠. 자격증 취득하고 사장님이 조금 일해보는 게 어떻냐라고 해서 했거든요. 저는 원에서 선생님들이 항상 저한테 다 잘한다고 얘기했었는데 제가 가장 힘들었을 때가 카페 알바할 때인 거 같아요. 주변에서 잘한다고 하고 성과도 좋았으니까 잘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카페에서 일하는데 그 일머리라고 하잖아요? 그게 없어서 엄청 혼났어요. 그것도 6개월 동안. 내가 너무 기대감에 살았었구나, 그때 내가 이 정도로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걸 느꼈어요. 저는 뭔가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고요. 손이 조금 느린 편이라서. 지금은 원내 동생들한테도 알바 해보라고 하는데 조금 겁나나 봐요.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때는 창고 가서 막 혼자 울고. 어쩌면 알바 1년을 겪어서 일할 때도 퇴소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두려워서. 왜냐면 저는 연고자가 원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여기를 퇴소하면 끝난다는 두려운 마음이 있었어요. 어쨌든 퇴소해도 끝난 건 아니니까 계속 연을 이어갈 수 있고, 그냥 내 집처럼 찾아갈 수 있는 거니까. 그래서 퇴소를 결심할 수 있었어요. 자립 선생님이 그 말 되게 많이 해 주셨거든요. 퇴소해도 여기가 집이 아닌 게 아니라 똑같이 집이다, 그냥 오면 선생님과 동생들 언제나 있을 거니까. 그렇게 얘기를 해 주셔서 결심하게 된 것 같아요. 살아보니까 조금 더 빨리 해도 될걸, 시작이 어려웠던 거죠.
나의 경력 중 가장 오래 일한 아르바이트가 2년 4개월이다. 찬모가 해준 국과 반찬을 차에 싣고 면 단위에 위치한 공장에 배달해 주는 일이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던 날 찬모가 말한다. 지금까지 일한 사람 중 가장 무난한 사람이라고. 조만간 밥을 살 테니 연락하라고 덧붙인다. 물론 밥을 얻어먹지는 못했다. 나는 무난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까다로운 사람이다. 살면서 처음 듣는 말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았다. 내 생각과 감정, 의지, 행동, 노력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르바이트는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그것이 아르바이트의 세계이니까. 그러니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미처 말이 되지 못한 문장이 우물쭈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