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엄마와 선생님

by 김보리

원에서는 생활복지사 선생님을 ‘엄마’라고 부르거든요. 근래 5년 전부터 선생님들 새로 들어오시면서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어요. 그러면서 선생님들이 얘기하셨던 게 애들이 ‘엄마’라고 부르는 것보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는 호칭인 것 같다고 얘기를 하셨거든요. 그때 애들 호칭이 조금 바뀌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선생님’이라 부르고 있고 제가 일하고 있는 곳은 아직 ‘엄마’라고 불러요. 근데 저도 처음에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 생각했는데 제가 이 입장으로 일을 하다 보니까 그냥 애들이 자유롭게 부를 수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도 어렸을 때 ‘엄마’라고 부르는 선생님이 있었는데 내 엄마가 아니라는 걸 인지하면서 ‘선생님’이라고 자연스럽게 부르게 되었거든요. 그게 초등학교 4학년쯤? 애들도 자연스럽게 알아가니 그때까지 기다려 주는 게 맞다 생각해요. 그때 당시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커서 얘기를 해보니 제가 처음에 ‘선생님’이라고 했을 때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대요. 나를 ‘엄마’라고 생각했던 애가 ‘선생님’이라고 부른다는 마음도 있지만 이제 얘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어쨌든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니까.


지금 일하면서 애들이 심리상담을 받고 있는데 얼마 전에 ‘나에게 엄마는 뭔가요?’ 이런 질문에 답하는 게 있었거든요. 근데 애들이 공통으로 썼던 게 뭐냐면 ‘나는 엄마가 여러 명이다’이에요. 당시 저를 생각해 보면 저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 너무 안쓰럽더라고요. 이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까. 내가 이걸 바꿔주거나 개선해 줄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니까. 한편으로는 이 호칭에 대해서는 애들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게 맞다 생각하지만 또 ‘엄마’라는 한 사람을 정해두고 나머지는 ‘이모’라고 해야 하는 건가? 막 이런 고민도 들더라고요. 원래 엄마 아빠는 한 명이어야 하지만 요즘에 가족의 형태가 다양하니까 그냥 그 일부인가 이런 생각도 들고, 어려운 거 같아요.


아동양육시설에서 사회복지 실습을 하던 첫날 기억이 떠오른다. 시설에서 가장 막내가 2살 남아였다. 어린이집 하원에 맞추어 마중을 나갔다. 거실에 붙어 있던 사진 속 아이가 나를 보자마자 ‘엄마’라 부르며 안긴다. 작은 조카를 안고 업던 기억이 30년 전이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작은 생명인가 싶다. 시설로 들어오기까지 아이는 내 목을 안은 채 한마디 투정이 없다. 한 손에는 어린이집 가방을 어정쩡하게 들고, 다른 손으로 아이 신발을 벗긴다. 방에 들어가니 그때부터 다시 일이다. 손을 씻기고, 밖에서 입던 옷을 옷걸이에 걸어두고, 어린이집 가방에서 도시락과 물통을 꺼내 씻어놓는다. 한숨 돌릴 새도 없이 저녁 시간이다. 식당에 비치된 유아용 의자에 앉혀 놓으니 식판 가져오기 무섭게 손이 먼저 나간다. 옷에 묻은 밥풀과 반찬을 닦는다. 가끔은 숟가락 연습을 위해 손에 쥐여준다. 의자 밑으로 떨어지는 음식이 반이다. 밥 먹기가 끝나면 번쩍 들어 그대로 욕실로 간다. 목욕을 시키는 동안 아이는 물놀이 삼매경에 빠진다. 욕조에서 나오지 않으려는 아이를 다시 번쩍 들어 나와 머리를 말려주고 로션을 바르고 기저귀를 채운 뒤 실내복으로 갈아입힌다. 빨랫감까지 정리하고 나면 이제 누나와 형들이 아이와 놀아준다. 그제야 숨을 내쉰다. 시설이라는 곳이 일반 가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실습 첫날 알았다. 단지 아이들이 조금 많을 뿐이며 아이들 서로가 선생님과 엄마가 되어준다는 것을 말이다. 엄마가 되어본 적 없는 나는 엄마의 감정을 알지 못한다. 다만 아이가 ‘엄마’라고 부를 때의 마음 저림이 남아 있음을 알 뿐이다.


자립하면서 관리비 내고 이런 거 조금 어렵죠. 아예 안 해봤던 거라서. 이거는 자립 연습했을 때도 알려주시긴 했지만 직접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더라고요. 집 구하고 이런 거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웃긴 건 그 부분에 대해서 교육을 가장 많이 들었거든요? 선생님도 모르다가 우리 때문에 공부하면서 알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혼자 살면서 식비로 20만 원은 넘게 쓰는 것 같아요. 처음 3개월까지는 식비가 훨씬 컸었어요. 요리하는 것을 배우긴 했지만 혼자 하려니까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거의 배달로 자주 시켜 먹었어요. 처음에는 돈이 꽤 많이 들었어요. 진짜 50만 원까지 나온 적이 있어서 이렇게 하면 식비로 다 나가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씩 줄여가고 있어요. 요리하는 거 안 좋아해요. 근데 안 좋아해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집에서 밥 먹을 때는 주로 반찬을 사서 먹어요. 교통비는 10만 원 정도고 관리비 다 포함해서 40만 원 정도 드는 거 같아요. 저축도 하고 있고 청약은 다들 주변에서 하라고 하는데 일하면서 손이 안 가더라고요. 지금 잠깐 안 하고 있어서 선생님이 이 정도로 쉬었으면 다시 하나 가입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셔서 생각은 하고 있어요.


독립한 지 일 년 육 개월이 된 아는 동생은 초반에는 집에서 밥 해 먹는 일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주말에는 약속이 있거나 본가에 가고 평일 저녁만 해결하면 되는데 음식물 쓰레기를 부러 만들고 싶지 않았다. 어느 정도 혼자 사는 일에 익숙해지고 직장생활도 안정적인 궤도로 접어들면서 슬슬 자신의 건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밥솥을 샀다. 저속노화 음식 열풍이 불면서 귀리와 렌틸콩을 구매해 밥을 했다. 물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아 어떤 날은 질고 어느 날은 그냥 곡식이다. 자주 하기 귀찮으니 한 번에 많이 해놓고 냉동실에 얼려둔다. 울며 겨자 먹기로 며칠을 먹는다. 어쩌다 야근이 이어져 집에서 저녁을 안 먹게 되면 그 사이 밥솥 물을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부엌일과 살림을 하며 자란 세대는 이제 너무 먼 이야기가 되었다. 너는 나이가 몇인데 밥도 할 줄 모르냐,라는 말로 생채기를 낼 이유가 없다. 그저 살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적당한 때가 온다고 너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문제는 그 적당한 때를 모르고 지나간다는 것이지만.


휴무 때는 혼자 있잖아요. 근데 18년 동안 단체생활을 해서 그런지 일하는 게 힘들 뿐이지 같이 있는 건 힘들지 않더라고요. 반대로 저는 혼자 있으면 너무 가라앉아서 다 같이 있는 게 더 좋아요. 보통 쉴 때는 요즘에는 공부하고 책 읽으려고 하거든요. 말도 안 하고 집에 혼자 있으니까 기운도 없고. 그래서 나가서 산책해요. 저는 집에 들어가면 노래 먼저 틀어요. 아직도 이 공허한 게 익숙하지 않아요. 그리고 바로 씻어요.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그게 습관이에요. 잘 때는 잔잔하고 조용한 노래를 틀어놓고 자요. 우리는 잘 때조차도 누가 코 골고 아니면 그 시간에 선생님들 일하는 시간이라 선생님들 소리나 이런 게 항상 있어서 작은 소리라도 있는 게 더 낫더라고요. 오히려 없으면 이상해요. 한 번 끄고 잔 적이 있는데 소리가 없으면 깨더라고요.


혼자 살면서 라디오를 틀어놓고 잠이 들고는 했다. 잠 속에서도 소리는 끊어질 듯 이어졌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꿈도 꾸지 않는 숙면이 필요했다. 잠을 잔다는 일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나의 일상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가장 최소한의 행위다.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무언가를 하고 싶지는 않다. 비록 내일이 오늘이더라도 잠을 자고 나면 몸과 마음이 정화되어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뜻밖에도 시골에 살면서 라디오 없이 잠을 자게 되었다. 가로등의 작은 불빛조차 없는 작은 시골, 암막 커튼까지 치면 까만 밤이다. 비로소 나만의 잠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나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잠을 푹 자는 것이라고 말하겠다. 혼자인 너의 잠이 공허함이 아닌 익숙한 잠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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