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혼자 사는 연습

by 김보리

저는 생각도 많고 걱정도 많은데 잘 내색하지 않는 것 같아요. 어쨌든 지금 계속 혼자 살아가고 있잖아요. 언젠가 이사해야 하고 이사할 때 보통 부모님이 도와주잖아요. 근데 이거는 오로지 혼자 해야 하는 건데 저한테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정말 별거 아닌데 예를 들어서 건조대가 필요하면 그냥 사면 되는 건데 선생님께 한 번 더 물어봐요. 이거를 내가 혼자 사도 될 것 같다고 생각은 하지만 항상 선생님들한테 물어보고 있더라고요. 확신이 없어요. 그리고 원내에서도 생활할 때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했기보다 먼저 의견을 물어보고 선생님들이 오케이 하면 했으니까. 그래서 지금 시설에서 일하면서는 애들이 선생님 이거 하고 싶어요, 하면 보통 애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하거든요. 그걸 겪어봤으니까.

‘보호종료아동’이라는 명칭을 썼을 때는 혼자라는 마음이 컸는데 자립 준비 청년이 되니까 그 자립이라는 게 누구나 해내야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시설 출신자가 아니라 그냥 누구나 해야 하는 거. 저는 그 자립이 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한테만 해당하는 말인 줄 알았어요. 근데 혼자 살아보니까 이거는 우리뿐만 아니라 그냥 일반 가정 애들도 자립해야 하는 거니까. 저는 그 ‘자립’이라는 말을 쓰기가 사실 부끄러웠거든요. 원내에서 생활하다 보니까 습관적으로 우리도 자립해야지, 약간 이렇게 말했거든요. 그래서 우리한테만 해당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내 입장이 부끄럽지 않다는 걸 알고, 모두에게 해당한다는 말이라는 걸 아니까 그냥 얘기해요.


자립과 독립의 사전적 의미는 비슷하다. 남이나 다른 것에 예속되거나 의존하지 아니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독립은 상대적 읽기가 가능하다. 가족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살기를 하면 흔히 독립이라고 말한다. 독립하는 순간부터는 누구나 자립해야 한다. 자신을 위해 먹이고, 청소하고, 입히고, 자야 한다.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함은 물론이고,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어른으로 가는 세계라고 말이다. 정작 진짜 어른이 되기도 쉽지 않다. 삶에서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란 물건 주문 배송 버튼을 누르는 것 이외에는 별반 없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 인생이니까. 그렇다고 주눅이 들 이유는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하리만치 평온한 일상의 과정이 차곡차곡 쌓여 평범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을 알 뿐이다. 무엇보다 혼자 살기는 그대로인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저는 사업들을 많이 찾아봤어요. 이사한 첫날 그냥 맨바닥에서 잤거든요. 원내에서는 이불과 두꺼운 이불이 있어서 바닥에 깔고 잤는데 제 이불만 챙겨 오다 보니까. 도시가스가 연결 안 된 상태였고 3월이라 좀 추웠거든요. 이대로는 못 살겠다 싶어서 제가 찾아봤어요. 그래서 자립지원전담기관에 먼저 여쭤봤어요. 혹시 제가 이런 가구나 가전이 필요한데 지원받을 수 있는 사업이 있는지 물어봤어요. 그런 사업은 없지만 연결해 줄 수 있다는 거예요. 필요하면 먼저 물어봐요. 제가 그런 성격인 걸 아니까 자립 선생님도 보통 의욕 있는 친구들한테 그런 사업이 있다고 알려주시거든요. 그런 사업들을 받으면서 느꼈던 게 소속감을 느낄 수 있지만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것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더라고요. 선생님들하고 아직 왕래가 있긴 하지만 이게 평생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언젠가는 충분히 끊어질 수 있는 인연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업 역시 단기적인 거라도 꾸준히 대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립 지원 선생님들이 지역마다 스타일은 조금 다른 거 같아요. 원에 있을 때는 주로 전화가 왔는데 지금 이 지역은 카톡으로만 안내가 와요. 이런 거 있으니 신청하라고. 자립전담기관이 이제 신설이 됐잖아요. 그러니까 그분들도 아직 사업을 다 파악하지 못한 것 같고, 일이니까 하는 느낌이 많이 왔어요. 그런 사업을 받아서 정말 좋지만 그냥 물건만 배송 오고 이러니까. 사실 처음에는 오히려 더 대우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내가 필요해서 신청은 했지만 조금 기분 상한 적도 있어요. 저도 자립 전담 기관에서 일하고 싶거든요. 제 최종 목표가 자립 준비 청년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건망증이 생겼다.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쩔쩔맨다. 커피잔을 꺼내야지 하며 냉장고 문을 연다. 물건을 분명 그 자리에 두었는데 오리무중이다. 다행히 실수로 이어진 적은 없다. 이제는 약속이 생기면 다이어리에 시간과 장소를 적는다. 집을 나서기 전 모든 불을 껐는지 두세 번 확인한다. 산책을 하다 문장이 떠오르면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어둔다. 그것도 잊어버려 길바닥에 그냥 버려진 문장도 있다. 이럴 때마다 나는 나를 돕는다. 내가 간명한 생활을 해갈 수 있게, 규칙적으로 생활하면서 버려진 기억이 없도록 돕는다. 내가 나를 돕는 일은 미래의 나에게 건네는 위로다. 너와 같은 자립준비청년을 돕겠다는 마음이 다가오는 너를 위로하고 읽어내는 관계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년 정도 연애했는데 남자친구가 군대 가면서 헤어졌어요. 너무 장거리이기도 하고, 남자친구는 제가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었던 걸 알았거든요. 근데 남자친구는 군대에 있고 저는 사회생활을 하니까 조금 의심하긴 하더라고요. 남자친구는 일해본 적이 없으니까 왜 연락이 안 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헤어졌어요. 저는 사실 어떤 걱정이 더 컸냐면 결혼식 때 부모님 자리에 누가 앉지? 하는 게 조금 걱정이 되더라고요. 남자친구 부모님도 아셨거든요. 남자친구 부모님도 딸처럼 대해주시기도 했고, 나이가 어렸는데도 불구하고 결혼 얘기가 왔다 갔다 했었거든요. 근데 생각해 보니까 결혼식장 그 생각이 딱 드는 거예요. 그래서 이건 더 고민해 봐야겠다 했어요. 주변에는 식을 아예 안 올리는 언니 오빠들도 있고.


너와 이야기하는 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 혹은 감정들이 불쑥불쑥 생긴다. 당연하다 생각했던 가족이나 결혼 같은 것이다. 당연함의 부재가 어떤 감정의 모서리를 만들어 너에게 날카롭게 들이미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게 없는 게 뭐 어때서,라고 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걱정과 회의와 불안의 감정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이해해, 괜찮아,라는 뻔한 말을 건네고 싶지도 않다. 다만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차곡차곡 쌓여 투명한 봄을 맞게 될 날이 올 것이라는 것, 미처 작은 이파리도 피어보지 못한 너의 나무가 세월의 기억을 견디며 녹색의 울창한 숲을 이룰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조차 없다면 납작하게 엎드린 이 인생을, 세상을 어찌 견디겠는가.


저는 사실 욕심이 조금 있어서 서울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어쨌든 대한민국의 가장 도시는 서울이니까. 근데 제가 언제 그 마음을 딱 접었냐면 제가 친언니라고 생각할 정도로 의지했던 언니가 서울로 취업해 갔거든요. 언니가 원에서 후원자분들하고 연결도 잘 되고 예쁨을 많이 받았어요. 어느 날 언니 보러 서울에 갔는데 언니가 사는 환경을 보고 충격받았어요. 언니가 강남에서 살았는데 정말 창고 같은 방, 두 걸음이면 다 해결되는 몇 평 안 되는 집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걸 보고 이게 몇 년 뒤 내 모습하고 다를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난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제가 거기에서 4일 연속으로 잤던 적이 있거든요. 근데 언니 집인데도 불구하고 진짜 창고에서 잠을 자는 기분이 드는 거예요. 좁은 침대에서 언니는 바깥쪽에서 잤는데 정말 30cm도 안 되는 거리에 세탁기가 바로 있어요. 그때 서울 말고 다른 지역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이 딱 들었어요. 그래서 진로를 찾아볼 때 서울은 아예 배제하고 갔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원내에서 가장 예쁨을 많이 받고 지원을 많이 받은 언니였는데 그렇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니 나는 더 어렵게 생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언니는 월세도 후원자분들이 조금 지원을 해줬는데도 불구하고 어려웠거든요. 임대주택이 안 되진 않지만 서울이고 경쟁자가 워낙 많다 보니까 구하기가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까지 심각한 줄 몰랐거든요. 처음에 제가 서울 얘기를 했을 때 선생님이 조금 반대한다고 그러셨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왜 그러지?’라는 생각이 컸는데 제가 직접 눈으로 보니까 심각하긴 하구나. 이게 정말 지역에 따라서 다 천차만별이구나. 서울이 정착금이 높다고 하지만 생활환경이 정말 열악한 것이 눈에 많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서울 생활은 바로 마음을 접었죠. 나중에도 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제가 아는 언니가 있는데 얼마 전에 캐나다로 이민 갔어요. 처음에는 6개월 정도 캐나다에 살러 간다고 했는데 언어에 되게 관심이 있고 항상 그쪽으로 일을 해서 돌아와서도 아쉬움이 남았나 봐요. 그래서 다시 나갔다가 8개월 정도 살다가 왔어요. 그러고 나서 일주일 정도 한국 와 있을 때 그냥 가서 살려고 한다고 하더라고요. 캐나다 가서 해외 사람들을 만나 네트워크가 넓어지고 다양한 언어를 배우고, 그런 문화들을 경험하는 게 좋았나 봐요. 그래서 자취방도 다 정리하고 갔거든요. 항상 느끼는 게 원에서 같이 생활했지만 정말 모두 다른 인생을 살긴 하는구나 싶어요. 근데 조금 안타까운 건 다 잘 살지는 않거든요. 우리는 원에 살 때 가족이라 부르면서 살았는데 퇴소하면서 금전적인 문제나 이런 문제로 연락이 끊기면 조금 안타까워요. 보통은 정착금을 다 써서 돈을 빌린다던가 그러고 나서 갚지 못해서 연락을 끊는다던가 아니면 사기를 쳐서 안 좋은 쪽으로 간다던가 이런 경우죠. 제가 고등학생 때 자매처럼 의지했던 언니랑은 연을 끊었어요. 그 언니는 성격이 되게 좋고 활발해서 제가 잘 따르기도 했는데 언니가 퇴소하고 어느 순간 제 통장에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디딤씨앗통장과 후원 통장이 있는데 저는 짠순이여서 많이 모았거든요. 금액이 많지는 않았지만 언니도 그걸 알고 있었고. 그래서 뭐 얼마 정도 모았냐, 이거 어떻게 쓰는지 아냐, 이렇게 하다가 나중에 얼마 빌려줘라 이렇게 가더라고요. 처음에는 선생님께 물어봤어요. 언니가 이렇게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고. 선생님들이 다 동일하게 했던 말이 빌려준다고 생각하지 말고 네가 줄 수 있는 금액이면 줘라, 그게 아니면 다시 받을 생각은 하지 마라. 그래서 제가 줄 수 있고, 이 정도는 받지 않아도 괜찮겠다고 했던 금액까지 줬는데 나중에는 100만 원 이상 요구하더라고요. 이건 아니다 싶어서 언니한테 딱 얘기를 했어요. 언니, 이제 돈거래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처음에는 언니한테 줄 수 있는 금액이라고 생각해서 언니한테 줬지만 금액이 너무 커지고 언니가 나를 동생이 아니라 돈을 쉽게 빌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렇게 진지하게 얘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뒤로도 언니가 몇 번 빌려줘라 얘기를 했거든요. 그래서 그 뒤로 연락을 끊었어요. 당시에는 나한테 도움을 많이 줬던 사람이지만 지금은 아닌가 보다 생각하고 있어요.


자립준비청년 자살 소식 들으면 알던 사람은 아니지만 마음이 안 좋긴 해요. 다른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 더 안 좋은? 진짜 얼굴도 모르는 사람인데 가까운 사람이 죽은 느낌이 들어요. 처음 그런 소식을 몇 번 들었을 때는 이게 내 상황이 될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조금이라도 가라앉거나 불안감이 올라오면 노래도 듣고 아니면 그냥 밖에 나가고 이러거든요. 제가 집에 있으면 노래를 튼다고 했잖아요. 근데 노래를 안 듣고 있을 때는 조용하고 공허하니까 잡생각이 많아져요. 내가 혼자인 거에 대해서. 그런 두려움이 많아서 가라앉기도 하고. 혼자 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거 같아요. 어떤 시설이든 간에 혼자 살 순 없잖아요. 다 단체생활이잖아요. 짧게는 1년 아니면 10년 넘게 단체생활을 하다가 혼자 있으면 공허한 부분이 있단 말이죠. 그래서 그거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제가 느낀 건데 단체 생활하면서 규율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정도가 심해지면 안 되겠지만 위계질서가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들이 제가 가장 큰 언니였을 때 친구들하고 외출하고 들어오면 오늘 너 없어서 힘들었다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저도 제가 동생이었을 때 생각해 보면 선생님들 말보다 언니들 말을 더 무서워했고 언니들이 때리거나 이런 게 아니었는데도 언니들 눈치를 더 많이 보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선생님은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나한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언니들은 어떻게 보면 경쟁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아요.


혼자 사는데 연습이 필요하다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30년 가까이 혼자 살아온 나에게는 더욱 그렇다. 처음 혼자 살던 이십 대 초반, 그저 습관처럼 살았다. 묵묵하게 견디어 내는 것 이외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다. 다가오는 내일은 두려움이기도 했다. 두렵다고 밥을 안 먹을 수도 없고, 잠을 자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꿋꿋하게 견디다 보니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저 허송세월만 보냈던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느꼈던 불안감이 너의 그것과 같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불안감이 어제의 나와 내일의 내가 달라지지 않을까 봐, 가난한 지위와 물질적 풍요가 배제될까 봐, 나의 평범함이 다른 시선을 낳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인지 나는 물어보지 않는다. 불안감의 근원은 내가 무언가를 하지 못할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그래서 그 불안함은 본래의 내 모습을 직면하게 만든다. 그러니 불안함에 흔들릴 이유는 없다. 흔들리고 짓밟힐수록 내가 나에게 더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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