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후기-가족을 향한 허기

by 김보리

지수 씨를 만나고 돌아오는 버스 안, 저녁의 고단함에 까만 창문에 머리를 기댑니다. 만나고 헤어짐은 수없이 겪는 일이지만 매번 익숙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어떤 정보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의 첫 대면은 심장이 떨릴 만큼 기대감에 부풀어 오릅니다. 저는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습니다. 지수 씨여서가 아니라 기대는 오로지 나에게 하는 것이라 살면서 배웠습니다.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해 주지 않을까, 이 사람이 나에게 명품 가방을 선물해 주었으면 좋겠다, 따위의 기대 말입니다. 차라리 내가 사랑을 주고, 명품 가방을 사 주겠습니다.


이야기가 잠시 샛길로 빠졌네요. 제가 이렇답니다. 집에 도착하니 깜깜한 밤입니다. 이사 온 지 1년이 안 된 빌라 현관에는 센서등이 없습니다. 주인 말로는 맞는 등을 찾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이 집에 얼마나 오래 있을지 몰라 그대로 두기로 했습니다. 익숙한 어둠을 더듬어 거실 등을 올립니다. 세수를 하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늦은 저녁 대신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식탁에 앉습니다. 안주는 얇게 채 썬 애호박에 양파를 넣고 소금 간을 약간 합니다. 여기에 달걀 한 개를 섞어 부치면 소주 한 병은 너끈합니다.


아침 먹고 나면 점심, 점심 먹고 나면 저녁입니다. 때로는 내가 나를 사육하는 기분입니다. 그렇다고 허투루 밥을 먹지는 않습니다. 내가 먹는 음식이 나를 만든다는 것을 아니까요. 즐겁게 먹기보다 의무감으로 먹지요. 그래서 습관적 배고픔이 채워지지 않는 허기로 다가올까 두렵습니다. 저에게 희망, 행복, 안락함, 해피엔딩은 한 번도 떠올려 본 적 없는 명사입니다. 명사가 동사가 되기를 바라지도 않지요. 행복하세요,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지수 씨에게도 그런 구태의연한 말을 건네고 싶지 않습니다. 그 정도의 명사는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내 일상을 지배하게 될 그저 단순 명사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매일매일이 혼자 있는 시간이지만 나는 스스로에 주문을 겁니다.


‘나는 외롭지 않다. 다만 고독할 뿐이다. 나는 배고프지 않다. 그저 허기질 뿐이다.’


애정에 대한 허기, 사람에 대한 허기, 삶에 대한 허기가 느껴질 때면 다크 초콜릿을 먹습니다. 씁쓰름한 초콜릿이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는 기분을 오래 음미합니다. 달콤한 위안이 나를 안아주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가족을 향한 허기는 초콜릿이 대신할 수 없는 원초적 감정입니다. 애석하게도 나는 아직 그 허기를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혼자 계신 어머니를 뵈러 간 날이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던 중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밤새 구토와 설사를 해서 지금 병원에 왔다고 말이죠. 영양제 맞고 갈 테니 밥을 먹고 있으라고 합니다. 마중을 가겠으니 다시 전화하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없는 집에 들어섰습니다. 식탁에 작은 쪽지가 있습니다.


‘병원 갔다 올 테니 냉장고에 고기 꺼내서 구워 먹어라.’


왼쪽 눈은 실명이고 오른쪽 시력이 0.4인 어머니의 글씨가 삐뚤빼뚤합니다. 종이에 적은 당신의 글씨가 보였을지, 맞춤법을 확인할 새도 없었을 겁니다. 밥솥에는 그새 새로 얹힌 밥이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드릴 메추리알 장조림과 꼬시래기 무침, 참치김밥을 냉장고에 넣습니다. 배탈이 난지도 모른 채 아침 기차를 타기 전 서둘러 말았던 김밥입니다. 얼마 전 김밥이 먹고 싶었다는 말이 생각나서입니다. 비록 드시지 못할 테지만 다시 가져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돌아가는 3시간 20분의 여정 동안 상할 것이 분명하니까요. 다행히 남동생이 김밥을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맵지 않게 두부조림을 하고 어머니가 드실 죽을 끓입니다. 냉장고 고기는 그대로 둔 채 오래된 깻잎지과 두부조림, 김치를 꺼내 혼자 밥을 먹습니다. 이상합니다. 눈물이 납니다. 허리가 아픈 어머니가 싱크대에 기대어 설거지하는 모습, 잘 보이지 않는 눈을 비비며 텔레비전 볼륨을 계속 올리는 모습이 없습니다.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만 요란하고 집안 공기는 서늘합니다.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 밖에는 택배 내려놓는 소리, 엘리베이터 문 열리는 소리가 분주합니다. 어머니의 숨 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집안을 휘둘러 봅니다. 문득 부모님이 모두 없는 시간을 상상합니다. 슬픔이 슬픔을 잠식하는 장면입니다. 어디에선가 듣거나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고아가 된다고 말이죠. 이렇게 생각하니 뭐 그럭저럭 견딜만해집니다.


가족은 참 이상합니다. 없으면 허전하고, 있으면 당연하다 생각합니다. 그뿐인가요. 가족이니까 애정도 나누고, 온기도 나누고, 돈도 나누고, 쏟아지는 기대에 부응도 해야 합니다. 가족은 조금 친밀한 타인들의 관계 아닐까요? 반드시 혈연으로 묶인 가족을 이야기하는 시대가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우리 모두 알고 있음에도 인정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지요. ‘가족이니까’로 엮이는 무수한 감정의 굴레들 말이죠.


독서 모임에서 만난 한 여성의 말이 생각납니다. 어릴 적 자영업을 하는 엄마, 아빠가 부끄러워 학교 앞에서 만난 엄마, 아빠를 외면했다고. 아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족의 모습은 이러합니다. 아침이면 아빠가 넥타이를 매고 서류 가방을 들고 출근하고, 엄마는 꽃무늬 앞치마를 두른 채 계란프라이와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차리며 아빠를 배웅합니다. 사이좋은 남매가 가방을 메고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현관을 나서는 모습이었다고요.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가족의 모습이지요. 과연 우리 모두 이렇게 살고 있나요? 그게 정말 흔한 가족의 모습일까요? 그 이야기를 하던 여성은 결혼해 아이를 낳고 보니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더군요.


어쩌면 그래서, 저는 지금이 좋습니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갑니다. 어른이 된 아이는 아주, 잠깐, 자주, 평범한 일상에 진저리를 치기도 합니다. 가족이 반드시 희망일 이유도 작아집니다. 어른이 된 가족은 각각의 영역에서 삶이 주는 멀미를 견디며,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의 안부를 묻는 관계가 되어갑니다. 그래도 문득 원초적 감정으로서의 가족을 향한 허기가 어두운 밤처럼 몰려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맑고 투명한 소주잔을 찰랑거리며 다시, 가족에 대해 생각하는 밤입니다.


지수 씨의 오늘 밤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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