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난한 아이

by 김보리

너는 나와 눈을 한 번도 마주치지 않는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얼굴을 30도 정도 돌린 채 테이블을 응시하고 있다. 이야기를 나눴다기보다는 일방적인 질문과 답이 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나는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게임에 환장했던 것 같아요. 게임이 왜 좋냐고요? 이를테면 일반인들이 레크리에이션 하면서 점수도 오르고 쾌감을 느끼는 것과 비슷해요. 내가 원하는 대로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고, 판타지나 시뮬레이션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같이 하면 더 재미있고. 현실 세계를 접할 수 있는 요소가 게임밖에 없으니까. 핸드폰 있기 전까진 컴퓨터로 많이 했어요. 주말에는 오전 9시부터 저녁 먹기 전까지 할 수 있어요. 컴퓨터실이 있었는데 샘들이 안 열어 주면 못했죠. 고장 난 컴퓨터가 반이어서 형들 눈치 보며 했어요. 그래서 고정석이 있어요. 핸드폰은 중학교 2학년 가을에 아버지가 사줬어요. 그때가 아버지와 마지막이었어요.


제가 2001년생인데 3살에 보육원에 왔다고 하더라고요. 기억 안 나요. 두 분이 이혼하면서 저는 보육원에 왔고 엄마 얼굴도 몰라요. 아버지는 거의 분기별로 한 번 와서 저 데리고 큰집에 갔어요. 점점 연락이 뜸해지면서 지금은 연락하는 가족 없어요. 번호도 모르고 하고 싶지도 않아요. 부모 원망하죠. 왜 이혼해서 나를 이런 곳에 처박아 놓았을까, 나는 왜 가난할까. 뭐 그런 생각?


너는 ‘가난’을 말한다. 순간 강지나의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돌베개, 2023)가 떠오른다. 작가는 빈곤은 더 이상 저소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빈곤은, 특히 세대를 이어 빈곤이 대물림되는 문제는 사회 전반에서 구조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노동 가치보다 자산 가치가 훨씬 높은 불평등한 경제구조를 기반으로, 50퍼센트에 육박하는 나쁜 일자리가 임금 불평등을 형성하면, 경쟁과 선별 위주의 교육 제도가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부실하고 편협한 복지 제도가 안전망으로서의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데서 빈곤 대물림은 구조화되고 있다.”


청춘이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던 그때, 난 나의 가난을 위무 삼았다. 내 앞에 그려질 어떤 미래도 없었고, 텅 빈 주머니에도 불안하지 않았다. 적어도 함께할 미래는 아니었지만 생각을 나눌 동지들이 있었다. 소련과 동구권에 변화의 바람이 몰려오면서 뿔뿔이 흩어진 우리는 각자의 삶을 쪼개어 자신만의 선명한 생활권을 만들어내느라 바빴다. 동지라 자칭했던 사람들 중 한 선배는 두 번 결혼했고, 다른 동기는 아이 셋 뒤치다꺼리로 매일이 전쟁이었으며, 또 어떤 후배는 남편의 병간호로 지쳐갔다. 시간이 더 지나 사람들과도 점점 연락이 뜸해졌다. 모두가 허겁지겁 일자리를 구해 허기짐을 해결하고, 적당한 때 결혼하고, 가족이 살 집을 구해 이리저리 이사 다니며 흰머리가 나는 줄도 모르고 살아왔다.


나는 그 시간을 혼자 버텨왔다. 나 역시 이곳저곳 이사를 다니면서 내일의 안위를 걱정하는 동안 나의 가난은 조금 더 두터워졌다. 오늘의 빈곤이 내일의 안식을 줄지도 모른다는 허망한 생각에 사로잡히면서. 너의 가난과 나의 그것이 다르지만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너는 알까?


너는 어느 지점에서 가난을 생각했을까. 21년을 살았던 아동양육시설에서, 학교에서, 학교 밖 세상에서, 복지 안전망 밖에서 너는 틈틈이, 지속적으로, 꾸준하게 가난을 느끼는 걸까? 시설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가난한 아이로 낙인 된다. 세상의 시선은 가난하니 도와줘야 하는 아이다. 나는 너를 도와줄 방법을 알지 못한다. 빈곤은, 가난은, 삶을 조롱하듯 우리를 끝없는 노동의 세계로 내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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