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생활이 어렵지는 않았어요. 소심하기는 한데 왕따나 학폭은 당하지 않았어요. 친구들이 제가 원에 산다는 걸 걸 모르게 했어요. 버스 타면 한 정거장 전에 내렸어요. 형들도 다 그렇게 했어요. 대물림이라고 해야 하나? 원 생활이 군대 같았어요. 나이 많은 형들 앞에서는 무조건 조용해야 하고. 눈치 봐야 하고, 기분 맞춰야 하고. 심부름은 반드시 막내가 해야 하고. 형들에게 단체 기합 받고. 그리고 예전에는 주말에 꼭 교회를 가야 했어요. 어릴 때야 한 시간 예배 보고 간식 주면 그게 좋아서 받아오고 했죠. 중학생 되니까 애들 불만이 터진 거예요. 교회 사람들과 싸우면서 안 나갔죠. 그때 게임에 빠져 있을 때인데 저도 교회 나가기 싫었죠. 중학교 3학년 때 주말 예배 무조건 참석이 없어졌어요.
친구들은 너를 정자슈퍼에 사는 아이로 알았다. 버스에서 내린 친구들이 제 갈 길을 가고, 버스가 출발하면 시설로 간다. 정류장에서 시설까지는 한 정거장이다. 때로는 집으로 가는 가장 먼 길이기도 하다. 시설에서 생활하는 아동들은 ‘우리 집’이라 부른다. 사춘기가 되고 퇴소를 앞두고 나서부터는 아이들 떠드는 소리조차 거슬린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집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때가 되니 나왔을 뿐이다. 결혼하지 않은 자식이 늙어가는 부모와 한집에 사는 일은 어떤 상황이든 눈치가 보이는 일이다. 적당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는 없지만 근근하게 버티었고 견디는 중이다. 이 세계에 편승하고 싶지 않았으며, 세상 모든 이들이 한 곳 만을 향해 가는 것은 아니라고 믿었다. 다만 해가 지면 돌아가 두 발을 뻗고 쉴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에 나는 안도했다.
집은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곳이다. 독립이든, 자립이든, 결혼이든 말이다. 다만 너가 있던 시설은 정상(?) 가족이 거주하는 집과 다를 뿐이다. 우리는 늘 세상의 정상이라는 범주와 시선에 흔들린다. 평범한 가정, 보통의 집, 꾸준하게 월급을 가져다주는 직장. 평범과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것조차 어려운 세상을 지금 우리는 살고, 살아내며, 살아가고 있다.
대학은 원래 사회복지학과를 가려고 했어요. 원에서 담당 샘이 가지 말라고. 이유는 모르겠어요. 거기 별로 안 좋다고. 그나마 게임 좋아하니까 컴퓨터공학과로 간 거죠. 그런데 입학하자마자 코로나가 터져서 2년 동안 줌이나 강의 녹화된 거 듣고, 가끔 행사나 시험 볼 때 학교 가는 게 전부였죠. 3학년 되어서 학교에 갔어요. 4학년 1학기 때까지 기숙사에 있었어요. 저는 원에서 오래 살았잖아요. 다른 학생들은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샤워하고 잠을 자는 게 익숙하지 않으니까 낯설어하는데 저는 잘 적응했어요. 샤워실에서 아무렇지 않게 씻고 그랬죠. 오히려 밥 먹는 일이 조금 어려웠어요. 학생 식당이 맛이 없었어요. 편의점에서 많이 사 먹었어요. 미팅도 안 해 봤어요. 동아리도 별반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안 들어갔죠. 대학 생활은 팀플레이로 발표하고, 교수님 앞에서 개인 발표해 보고, 그런 게 기억에 남아요. 잘하는 사람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저는 엄청 긴장했거든요. 제가 낯가림이 심해요. 친한 사람하고는 괜찮은데.
나와 너는 친한가? 아니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원래는 자신의 이야기조차 하지 않는데 오늘은 그나마 말을 많이 한 것이라 한다. 너의 침묵을 손으로 만지며 질감을 느낀다. 말랑하지만 푸석하고, 꺼끌 거리기도 하다가 부드럽기도 하다. 나의 바람은 너의 이야기를 계속해 듣고, 수긍하며 때로는 함께 욕을 해주고 싶다. 너는 답변만 했고, 내 눈치를 보기도 했으며, 형들에게 맞기 싫어서 도망 다녔다는 어느 대목에서 맞장구를 쳐줘야 할지 나는 모른다.
침묵이 그렇다.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말을 해야만 서로의 관계가 해소되는 경우도 있다. 하고 싶지 않은 말에는 자신의 열등감과 옹졸함, 두려움이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말하게 되면, 입 밖으로 나온 말이 대사가 아닌 문장이 되어 타인과 나에게 화살처럼 박힐 것 같은 두려움에 떤다. 차라리 침묵을 택하는 것이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다.
너는 중학교 3학년 때 사춘기가 왔다.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피시방에 갔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을 한다. 막차를 타고 돌아온다. 샘에게 지청구를 들었다. 너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이다. 시설에서 외출 제한 시간이 불만이라고 말한다. 오후 4시 30분까지는 들어와야 한다. 고등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하면 제한 시간을 풀어준다. 형들은 고깃집이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너는 하기 싫어 안 했다. 왜 하기 싫었는지 나는 물어보지 않는다.